한애자의 소설-<딱새의 성> 제20회

영자가 말하는 별장으로 가는 길은 도심을 벗어난 경기도 이천 부근이었다. 그곳은 조용하고 낭만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전원적인 풍경이다. 현관엔 장미꽃 울타리로 둘러져 있었고 넓은 정원에 하얀색 테이블과 몇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거실로 보이는 내부로 향하자 중앙에 확 트인 큰 홀이 있고 바닥은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저쪽 오른쪽 출입구는 각 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 건물을 보면서 호텔을 압축해 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회랑의 그 각 실의 방을 열어 보았다. 방은 다섯 개의 방이 맞서서 총 열 개의 방이었고 크기는 이십 평 정도다.

우선 영자가 지시한대로 침대커버를 걷어서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그 커버에는 하얀 오물이 공통적으로 말라붙어 있었고, 이상한 냄새가 배어 있었다.

곧바로 바닥을 청소하였다. 그들이 피운 담배꽁초가 휴지통에 수북이 쌓여 있다. 휴지통을 비우려고 뚜껑을 열었다. 그곳에는 버려진 예쁜 엽서가 눈에 띄었다.

‘내 사랑하는 장미는 기사를 찾아 헤맨다. 그대의 빛나는 육체는 나를 목마르게 한다. 가시에 찔려 죽는 한이 있어도 말 탄 기사의 꺾음을 기다리며 오늘은 미지의 당신만을 그리워하며…….’

인영은 그들의 모임이 로맨스적인 부부애를 표현하는 상류사회의 색다른 문화로 여겼다. 여유 있는 풍요 속에서 모든 것이 허락된 부유층으로 짐작되었다. 갑자기 상대적인 빈곤감이 압박해 왔다.

이 건물의 구조가 좀 특이하였다. 건물 중앙의 넓은 파티 홀에 회랑을 따라 2인용 침대가 들어선 방인데 방은 창가에 커튼을 길게 드리우고 있어 밀폐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왠지 향수와 담배연기로 몽롱하게 하는 탁한 공기가 아직도 구석구석에 배어 있었다.

복도 쪽의 출입구 쪽의 창가나 출입문에 휘장의 커튼을 두르고 있었고 그 반대쪽의 창문은 모두 야산의 숲 속과 접해 있어 그 정경이 볼 만하였다.

영자로부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지시받고 인영은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설거지를 하며 월급봉투와 보너스를 두툼하게 해주는 영자가 고마웠다.

 

그 후 세 번인가 그 뒤처리를 하던 어느 날이었다. 현관에 들어서자 오른쪽 복도 끝에서 사람의 인기척이 들렸다. 저번에도 너무 취하여서 인영이 도착하자마자 그때야 일어나서 옷을 챙기고 차를 몰고 이천을 빠져 나가는 자들이 한두 명은 있었다. 바로 그런 사람이겠지 하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각 방으로 침대 커버를 걷으려 하였다. 그때 오른쪽 둘째 칸의 방에서 숨을 죽이며 말하는 남자의 음산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아니, 다리를 좀 더 섹시하게…….”

“이 자세는 아주 획기적일 거야. 호호호…….”

여자의 요사스런 웃음소리가 고요한 숲 속에 퍼졌다. 그들은 무슨 사진작가나 영화 장면을 찍는 듯 남자는 포즈와 그에 대한 지시를 하는 분위기였다.

“이것이 잘만 팔리면 한탕하고 우리는 해외로 여행을 가는 거야.”

“하하하……. 옳지. 자, 됐어!”

신음하는 쉰 소리가 들렸다. 인영은 재빨리 부엌싱크대 쪽으로 몸을 숨겼다. 전신이 떨렸다. 잠시 후에 여자는 머리가 헝클어지고 노출된 어깨에 키스마크가 짙게 찍힌 모습으로 현관으로 나오고 있었다. 남자는 주방 싱크대 쪽으로 힐끗 쳐다보았다. 아마 커피를 먹고 싶은 그런 표정이었다. 순간 인영과 눈이 마주쳤다.

“아! 관리인 마담!”

눈을 찡긋하며 시덕거리며 손을 흔들었다.

“뭐야, 그 숙맥이잖아! 춤도 못 추고…….”

“저 모닝커피 두 잔 부탁해요!”

남자가 인영을 찬찬히 훑어보며 말하자 여자는,

“차 안에서 마실 수 있게 종이컵에 두 잔 줘요!”

입을 삐죽거리며 인영을 차갑게 쏘아보며 여자는 주차장 쪽으로 앞서 향하였다.

“저런 뭐가 저리 급해서…….”

급히 커피를 타서 그 남자에게 내밀었다. 남자는 커피를 받으면서 오른쪽 손등을 의도적으로 살짝 스쳤다. 인영은 끔찍하여 눈을 감았다. 그는 음흉스런 미소를 보내며 곧 여자의 뒤를 았다. 잠시 후 숲 속 오른 쪽 주차장에서 검정색 승용차가 서서히 빠져나갔다. 차 안의 남자는 여자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등을 쓰다듬고 있었다. 남자는 살짝 뒤를 돌아보고 인영에게 손을 흔들며 눈에선 괴괴한 불꽃이 튀었다. 인영은 사라져가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공포가 밀려왔다. 소름이 확 끼쳤다. 아침공기는 싸늘하며 안개가 더욱 짙어만 갔다.
haj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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