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의 소설-<딱새의 성> 제21회

별장에서 돌아온 인영은 클렌징을 하고 모처럼 거울 앞에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얼굴에 잡티가 많이 생겼고 눈가에 다크써클이 진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삼십대의 밝고 싱싱한 모습은 사라졌고 이제는 세상의 풍파에 찌든 눈빛이었다. 체념과 의연함과 함께 현실성 있는 현명함의 모습이다.

혼자서 두 아이를 양육하기는 힘든 일이다. 뚜렷한 직장, 안정된 직장도 없다. 앞으로도 계속 영자의 필요한 잡부의 일을 하게 될지 모른다.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듯 기본적인 생존에 관계된 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인간은 참으로 비참해진다. 영자의 배려로 월급봉투는 꽤 두터워지고 있다.

인영은 일의 목적과 사회에 기여하는 그런 직업적 자긍심을 가지고 싶었다. 공장에서 라면을 포장한 여공의 손에 의해 맛있는 라면을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사회에 참여하는 어떤 보람을 느끼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을 느낄 수 없었다. 그 모임은 사치스런 파티 그 이상의 어두운 면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 돈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모임을 통해 피로나 스트레스를 풀고 새로운 활기를 찾을 수 있겠지. 그렇다면 나는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데 기여하고 있나? 그들은 모두 다 사회의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니까. 의사나, 사장님이나, 공무원도 섞여 있었다.’

합리화하며 프로정신을 가져본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영 꺼리고 편치 않은 구석이 있다. 그때마다 오직 경제적 이유로 차단해 버렸다.

‘난 배고픈 사람이다. 배고픈 자에게는 빵이면 된다. 영자는 나의 구원이야. 요즘처럼 일자리 얻기 힘든 세상에서 그처럼 편하게 일하면서 후한 대접을 해주는 건 영자의 특별한 배려다.’

결국 삶의 빈곤은 그곳에서의 성희롱의 공포도 까맣게 잊어버리게 하였다.

 

밖에선 가느다란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정의식이 몹시 보고 싶었다. 휴대전화를 꺼내 그의 전화번호를 누르려 하다가 떨리는 손을 거두었다. 그에게서 연락오기를 기다렸다. 그리웠다.

다음날 영자로부터 휴대전화가 울렸다.

“매번하는 것처럼 방마다 침대커버를 다 걷어서 세탁소에 맡겨. 그리고 다음 주 크리스마스이브 때 큰 파티가 있을 거야. 그날은 일손이 많이 필요해. 일찍 와서 음식도 시켜 놓고 홀에 파티장 분위기로 꽃도 꽂아 놓고 실내 장치도 함께 해 줘.”

영자는 계좌번호에 크리스마스 특별 보너스를 입금시켰다고 덧붙였다.

“준비가 다 되면 쌍둥이들이 기다릴 텐데 일찍 돌아가도 돼. 청소는 그 다음날에 하면 되고. 그럼 먼저 가서 수고해 줘!”

인영은 크리스마스 특별 보너스에 가슴이 벅찼다. 이제는 거부 할 수 없는 그에게 고용된 시녀라는 것을 씁쓸하게 새겨보면서…….

 

회랑처럼 늘어선 개인 밀실로 영자의 남편과 다른 여자가 남자의 손에 허리가 둘러 진 채 비틀거리며 들어갔다. 영자는 방금 영자의 남편과 함께 들어간 그 여자의 남편과 함께 개인 밀실로 사라졌다. 현관에서 쌍쌍이 들어올 때, 인영은 영자의 남편을 보았던 것이다. 저들은 분명히 출입구에서 부부의 모습이었는데 서로 다른 밀실로 사라졌다. 그들은 지난번에 파티 홀에서 춤을 추며 같이 붙어 다녔던 두 사람이었다. 몇몇은 파티 홀에서 보았던 멤버들이었고, 새롭게 보이는 남자도 몇 명 보였다.

인영은 불쾌하고 어두운 얼굴을 하며 빨리 이곳을 떠나가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뭔가 음산한 분위기였다. 한숨을 쉬며 잔뜩 쌓인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려고 건물의 뒤편 창가 쪽에 위치한 음식물 쓰레기통에 다가섰다. 그때였다.

“호호호…….”

간드러지게 웃는 어디선가 낯익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쓰레기통이 있는 모서리를 돌아 왼쪽 방이었는데 인영의 눈에 영자의 나체가 비쳐왔다. 그 숲 쪽에는 사람이 없다고 안심하였는지 그들은 밝게 불을 켜고 있었다.

영자는 등 뒤로 남자와 어깨를 같이하고 춤을 추듯 비틀거렸다. 아마 땀이 나서 더워서인지 언제나 회색 회장으로 밀폐되었던 베란다 창문이 살짝 열려져 있었다. 인영은 구석으로 순간적으로 바싹 몸을 붙였다.

잠시 후 인영은 숨을 죽이고 집중해서 나체가 된 영자와 함께하는 남자를 살펴보았다. 영자의 남편이 아니었다. 그는 언젠가 자신에게 커피를 부탁하며 음흉하게 자신을 훑어보던 전문대 교수였다. 성희롱을 즐기는, 인생의 깊이가 없는 성숙하지 못한 애송이 같은 오십대의 남자였다.

“당신만을 영원토록 사랑하고 싶소. 당신뿐이오!”

여자를 호리는 기술은 노련하였다. 영자는 그 남자의 속삭임에 도취되었다.

“당신이 최고야!”

언제나 ‘최고’ 소리를 들으며 자라온 영자에게 이 같은 찬사는 황홀할 정도였다. 가엾은 영자는 안달하며 마치 그에게 진정한 사랑을 받고 싶어 하듯 갈구하는 몸짓이었다. 인영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짓누르며 가까스로 주방 쪽으로 향하였다. 그들의 디저트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과일을 깎아서 모양을 부리고 쟁반에 커피 잔을 얹었다.
haj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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