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의 소설-<딱새의 성> 제22회

 

“모임이 밤새도록 진행되니까 디저트는 주방에 준비해두고 일찍 귀가하도록 해. 쌍둥이들이 엄마를 기다릴 텐데!”

영자의 배려의 말이 떠올라서 빨리 돌아가고 싶었지만 조금이라도 섭섭하게 일처리를 하고 싶진 않았다. 마음이 혼란스럽고 거북하였다. 좁은 통로에서 어느새 내려왔는지 영자의 웃음소리와 함께 작은 불빛이 새어 들어왔다. 거실의 넓은 홀은 이상한 신음소리와 음산한 분위기다. 인영은 새어 들어오는 불빛 사이로 거실을 내다보았다.

‘아!’

인영은 가슴이 조여 오고 숨이 막히는 듯하였다.

‘설마, 영자가……. 그럴 수가……. 난 그것도 모르고 열등감으로 움츠러들며 살아왔다. 저 정도의 위치와 특권을 가졌으면 삶도 그러하리라 여겨왔다. 아! 영자가……. 아!’

인영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들은 모두 잘생기고 멋진 선남선녀들이다. 사회에서 많이 배우고 신분의 특혜를 받은 부류다. 그런데 무엇이 부족하여 서로를 탐닉하는 것일까. 저들은 나에게 없는 ‘부부’라는 온전한 가정의 성을 가졌다. 그런데 그 성을 무너뜨리는 괴이한 유희를 벌이고 있었다. 한 사람이 빠진 공간을 메우기 위한 나의 고뇌와는 달리, 저들은 완벽한 온전한 성에 구멍을 내고 있다! 이건 너무 불공평하다!


눈물이 계속 쏟아졌다. 영자의 눈동자는 허공을 향해 초점 없이 멈춰있었다. 그것은 생명이 없는 박제된 사망의 눈빛이었다. 우리의 최고는 지금도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최고를 향하고 있고, 자신은 뒤처진 낙오자인지 모른다. 인영은 학창시절 영자 곁에서 미술도구를 챙겨주고 물감의 붓을 깨끗이 빨아서 건네주며 기대했다.

‘그 붓으로 세상을 멋지게 그려 보렴!’

여성 리더가 되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용감히 싸워줄 잔 다르크와 같은 그런 인물! 학벌이나 재산이나 모든 것에 나보다 우월하여 대단할 줄 알았는데…….

영자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와르르 무너졌다. 이해할 수 없었다. 슬픔과 절망의 눈물이 계속 흘러 내렸다. 그들은 여전히 각자의 쾌락의 보자기를 풀어놓고 흥정하고 있었다. 어둠의 시간은 깊어갔다.

인영은 재빨리 주방으로 돌아와 몸이 아파서 먼저 간다는 간단한 메모를 남기고 뒷문의 샛길로 뛰쳐나왔다. 현기증이 나고 숨이 막히는 듯 어지러웠다. 그것은 광란의 밤이었다.

 

거실의 시계소리가 뚝딱거렸다. 욕실에서 들리는 듯 물방울 소리가 신경을 거슬렸다. 영자는 전날 부부모임에서 만난 형석이라는 남자를 생각하여 보았다. 매번 바뀌는 상대에 대해서 더 깊이 알 필요는 없었다. 남편에게 자신의 섬세함이 언제나 무시되었다.

영자는 심한 모욕을 느꼈다. 이 남자와는 정말 행복해지고 싶었다. 남들 앞에서도 그 행복을 전시하고 자랑하고 싶었다. 사교모임의 정체모를 여자들처럼 쾌락의 도구로 다루는 듯한, 존재의 모호함에 빠져들었다.

그날 밤 분명히 자신의 남자와 함께 밀실로 키스하며 함께하던 그 여자, 스포츠 사를 경영한다던 CEO라 하는 삼십대 여자의 뒷모습이 더욱 괴롭게 하였다.

“아휴, 난 말이야. 꽃미남이 좋아!”

혀가 꼬부라지도록 취하여 비틀거리면서 형석의 가슴에 밀착하여 안기며 그녀의 목덜미를 키스하면서 쓰러지는 듯 사라졌던 그 두 사람! 그들은 서로의 삶의 권태를 해결하는 방법, 삶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단기적인 동지였다.

형석은 자신의 첫사랑의 남자와 많이 닮았다. 이혼의 상처로 외로워서 애정에 굶주린 듯 형석의 사랑의 포로가 되었다. 그와 막상 결혼하게 되자 그 환상적인 분위기와 낭만은 깨어졌다. 그의 눈은 아편하는 몽롱한 환각 상태였고 얼굴은 속물근성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는 자신을 거칠게 다루었다.

‘뭐? 우리는 만족한 행복한 부부라고! 기가 막혀!’

할 수 없이 그의 시나리오에 따라 연기를 하였던 자신이 비굴하고 미웠다.

“개새끼! 개자식!”

영자는 오열하듯 고개를 내저으며 전신이 부들부들 떨렸다. 모든 것이 무너졌다. 계속되는 허탈감 속에 지금껏 견뎌 온 것은 최고를 꿈꾸는 사업에 대한 열정이었다. 형석과의 허탈감을 잊어버리기 위해서 더욱 돈 버는 사업에 전전하였다.

영자는 스스로 결코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버티었으나, 결국 외로움은 쾌락을 탐닉하게 하였다. 그것은 ‘황금을 낳는 오리’로 자신의 몸값을 높이며 최고의 완벽한 여자, 영자를 존중해주고 최고를 알아주는 임에 대한 탐닉이었다.

자신과 접촉한 남자는 모두 지치고 지친, 삶의 한 골목에 다다랐다. 그들 역시 공허와 삶의 권태로 가득 찬 가엾은 존재들이었다. 영자 자신이 기댈만한 아늑한 공간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들에겐 오직 쾌락과 오락으로 인이 박혔다.

이 남자를 만나고 저 남자를 만나며 일락에 빠졌지만 더욱 지치고 공허하였다. 그 고독은 사교모임이 끝나고 나면 더욱 깊어만 갔다. 내면의 고독을 감추기 위해서 쾌락의 잔치에 참여해야 하는, 사교모임은 결국 이것을 더욱 드러낼 뿐이었다.

haj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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