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연재 - 한애자 장편소설 모델하우스제1회

만남

꽃샘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쌀쌀한 날씨다. 운동장에서는 축구하는 학생들의 함성과 함께 봄의 전주곡이 울리는 듯 생동감을 재촉하고 있다. 담장의 노란 개나리가 봄단장을 도와주고 교정의 화단의 나무들은 정맥에 푸른빛이 감돌며 봉우리가 맺혀 이제 곧 만개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학생들을 호령하며 지도하고 있는 체육교사가 모자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학생들을 구령하고 있다.

“좌우 대열로 모여!”

우르르 학생들이 재빠르게 모여 들었다. 구령하는 체육교사는 어깨가 떡 벌어진 다부진 체격이다. 사십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데 상당히 눈에 띄는 미남형이다. 특히 햇볕에 적당히 그을려진 구릿빛 피부는 건강미가 흐르고 약간의 구레나룻처럼 턱 주위를 감도는 수염은 원시적인 생명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는 야성미 있는 터프한 스타일로 여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하다.

학교 뒤뜰의 담벼락 주변에도 개나리로 단장 되어 있다. 교직원 식당 입구에서는 구수한 토장국 냄새가 풍겨왔다. 삼삼오오 떼를 지어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니 담벼락의 벤치에 앉은 두 여교사는 이제 막 식사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모양이다.

▲ 학교 담벼락에 노란 개나리가 피었다.

“전근 오신 소감이 어떠세요?”

그야말로 전형적인 여교사 스타일처럼 단발머리에 말쑥한 정장을 한 민지선이 물었다.
“좋아요! 무엇보다 저기 정 선생님의 따뜻한 배려로 낯설지 않고 잘 적응하고 있어요!”
애춘은 저 운동장의 중앙에 보이는 정세원을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 눈빛은 매우 반짝이
며 생동감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바로 민 선생님을 만나서 매우 기뻐요!”

애춘은 지선을 바라보며 웃었다.

“저를요?”

“선생님을 처음 본 순간 다른 사람에게 느낄 수 없는 그 무엇을 느꼈습니다. 언니 같고 고요하며 힘이 있는 어떤 분위기랄까….”

그것은 너무 뜻밖이었다. 전근 온 후, 모든 교사에게 인사 소개를 하고 지정된 자신의 자리를 돌아와 앉았을 때였다. 중앙의 연구부 자리에 위치한 한 여교사가 애춘의 시야에 확 들어왔다. 모두들 새 학기 준비로 분주하여 삼삼오오 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좀 어수선하고 소란스런 분위기였지만 유독 고요함과 잠잠함 가운데 한 여교사의 인상과 분위기는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마치 삼국지에서 장비가 유비를 처음 보았을 때, 그를 섬기고 그와 어떤 끈끈한 유대를 예감하는 것과 같은, 왠지 자신의 주인으로 섬기는 것이 영광스럽게 느껴지는 그런 감정이었다.   

 “그래요? 저를 그렇게 보아주시다니 뜻밖이군요!”

“장 선생님도 저의 관심을 끌었어요!”

그들은 서로의 첫인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다음은 누가 선배가 되냐에 서두가 바뀌기 시작했다.
“올해 나이가 몇이죠?”

자신도 모르게 처음 대하는 대화인데 마치 오래된 친근감을 느끼며 선뜻 상대방의 나이를 묻는 무례함에도 불구하고 입을 열었다.

“벌써 마흔 둘이예요”

“아! 정말입니까? 저는 삼십대 초반 정도로 생각했는데요!”

자신보다 두 살이나 위였다. 자기보다 어린 사람에게 언니 같고 포근하다는 소리가 우스워 보였다.

“네, 정말입니다. 사람들은 모두들 삼십대로 보인다고 하죠! 저는 그런 소릴 들으면 살맛이 난다니까요. 한 살이라도 젊게 보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젊게 보인다는 말에 흥분하고 있으니 나이가 들긴 들었나 봐요!”

젊게 보인 것은 애춘의 패션이 언제나 캐쥬얼한 차림이었고 신세대풍의 옷을 과감하게 입고 다녔기 때문이다. 가까이서 바라본 애춘의 얼굴은 자연스런 조화보다 인위적으로 손을 댄 듯, 그 얼굴이 많이 훼손되어 지쳐보였다. 그것은 목선의 주름과 눈가의 주름이 여실히 나이를 보여 주고 있었다. 애춘의 얼굴에 쓸쓸한 표정이 스쳤고 그녀의 시선은 수업을 끝내고 운동장에서 체육실로 들어서는 정세원을 흘끔거리며 붙잡고 있었다. 정세원은 멀찍이서 지선을 보자 얼굴을 붉히며 미소를 지었다. 점잖은 선비풍의 모습이었다. 그는 애춘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엷은 보랏빛 정장에 앞 가리마를 한 지적이고 깔끔한 지선에게 사려 깊음과 충만한 여성미를 느끼며 설레고 있었다. 그녀의 넓은 이마가 시원스럽게 지성미를 더해 주었다. 애춘은 숏 컷트에 짧은 청미니스커트에 빨강색 비스코스재질의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마스카라를 진하게 치켜 올려 눈썹이 강하게 보였다. 인형처럼 치켜든 속눈썹이 체육실에 집착하며 수없이 깜박였다. 그 눈동자는 어딘가를 불안스럽게 떠돌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보고 삼십대로 보인데요!”

다시 한 번 되풀이 하여 자랑스럽게 뽐내듯 말하였다. 그것은 애교도 아닌 단순한 어린아이와 같은 유치한 목소리였다. 애춘은 그 말을 한 번 더 뇌이면서 건너편 체육실에 머문 시선을 거두고 지선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그때 가까이서 바라 본 그녀의 얼굴에 감추어진 주름이 여실히 드러났다.

haj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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