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천만 관객 돌파한 영화에 계약서가 없다?

▲  영화 <7번방의 선물> 포스터.
영화 <7번방의 선물>은 따뜻한 영화였다. 정신지체를 가졌다는 이유로 누명을 쓴 아빠 용구(류승룡 분)의 딸(갈소원 분) 사랑이야기. 여기에 흉악범들이 용구와 딸의 만남을 성심껏 도와준다니. 현실에선 전혀 있을 법하지 않은 내용으로 1280만 명의 관객을 웃기고 울렸다. 
 

역시 영화와 현실의 괴리는 클 수밖에 없는가. 현재 <7번방의 선물>은 공동 제작사 간 수익 배분 문제로 법정 다툼 중이다. 지난 1월 2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부장판사 이정호)는 해당 작품의 제작사인 화인웍스(피고) 측이 공동 제작사인 씨엘엔터테인먼트(원고)에게 약 46억 원의 금원을 지급하라고 1심 판결을 내렸다.
 

결국 돈이 문제다. 대흥행으로 <7번방의 선물>이 벌어들인 돈은 약 914억 원. 투자배급사 (NEW)와 극장 측 수입 등을 제외한 나머지 비용을 가지고 제작사끼리 다투고 있다. 여기에 다수의 언론은 출연 배우인 류승룡, 정진영, 박신혜 등이 받을 러닝개런티(손익분기점을 넘었을 때 배우들에게 출연료 외에 수익금의 일부를 추가 지급하는 금액)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과연 이게 전부일까? <오마이스타>는 해당 사건의 판결문을 입수했다. 문제의 본질은 배우들이 받아간 돈이 아니었다. 현재 한국 영화의 공동 제작 시스템에 대해 원고와 피고는 물론이고 판사마저 풀지 못한 큰 숙제가 있다는 게 핵심이었다.  
 

① 공동 제작 계약서가 없다? 제작사의 공동 제작 범위 넓어지나

 
▲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첫 장면. 실 제작사인 화인웍스와 함께 공동 제작사로 씨엘 엔터테인먼트의 이름이 함께 등장한다.
 

'원고는 <7번방의 선물> 제작 사업을 공동으로 경영하고, 위 사업으로 인한 수익 또는 손실을 50:50으로 배분하는 내용의 동업 약정을 체결하고(후략)' Vs. '피고는 영화 제작 사업에 관한 동업 약정을 체결한 사실이 없고, 단지 원고의 부탁으로 향후 원고의 영화 제작에 도움을 주기 위해 호의로 이 사건 영화의 크레디트에 원고를 제작자로 등제해 준 것에 불과하며(후략)'
 

공동 제작을 명시한 계약서가 없다는 게 분쟁의 핵심이다. 공동 제작사로 협업했다면 분명 양측의 의무와 권리가 담긴 계약서가 있었겠지만, 주장이 엇갈린다. 법원 역시 판결문을 통해 '(대외적으로 조합 관계가 나타나진 않지만 원고는 피고의) 내적 조합원임이 성립된다', '원고가 (투자사의 신뢰를 얻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피고의 영화 제작을 위해 출자의무를 이행했다' 등의 이유로 사실상 원고가 영화 제작 과정에 깊이 참여했다고 판단한다.
 

원고 주장대로 계약서가 있었다면 명쾌하게 판결할 수 있었을 터. 애초에 분쟁 역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여러 정황 근거를 들며 법리를 설명한다. 공동 제작과 관련한 계약서는 존재하지 않았음을 유추할 수 있는 지점이다. 
 

이 내용에 대해 한 영화제작자 A씨는 "판결도 제작 과정도 상당히 이례적"이라 평했다. 그는 "캐스팅, 제작비 유치 등 여러 형태로 실제 제작사에 다른 회사들이 공동 제작사로 결합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이런 경우는 흔하지 않다"고 전했다. 또 다른 제작자 B씨 역시 "법원이 계약서가 명시되지 않은 관계를 인정했다는 건 공동 제작의 범주를 넓히는 사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전했다.
 

② 영화 제작 중 피고가 쓴 돈은 원고의 돈도 있었다?
 

'피고는 원고에게 이 영화의 주요 소재인 만화 '세일러문'의 저작권 관련 법률 자문을 의뢰했고 원고는 이를 수행했다. 그러나 피고는 원고에게 자문비용을 전혀 지급한 바 없다(중략), 제작비로 사용되는 채권을 가압류 당하자 원고는 피고에게 8월경 3000만원을 송금했다(중략), 원고는 2012년 12월경 피고의 자금 지원을 요청받고 피고 명의 계좌로 950만원을 송금했다, 피고는 2012년 11월부터 2013년 2월까지 원고 명의 법인카드를 사용하고, 그 카드 대금을 일부 변제하기도 했다'
 

<7번방의 선물>의 촬영이 시작된 날은 2012년 4월 3일, 종료된 날은 2012년 11월 1일이다. 판결문대로라면 피고는 영화 제작 당시 채무를 변제하는 데 원고의 돈을 썼고, 제작 이후에도 원고의 협조를 받았다. NEW가 투자한 영화의 순 제작비는 38억 원이고, 실 제작사인 피고는 이를 이용해 분명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별개로 피고는 원고의 자금을 통해 영화 제작을 위한 환경을 조성했다. 법원 역시 이런 이유로 원고가 영화 제작 과정에 상당 부분 기여했음을 인정했다.
 

앞서 언급한 계약서 문제와 비용 처리 문제를 정리해보자. 실 제작사와 동업하는 다른 회사가 캐스팅을 돕든, 출자금을 대주든 계약 내용에 따라 향후 공동 제작 관련한 비슷한 분쟁이 늘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 투자사 관계자는 "그간 배우 매니지먼트 회사가 자기네 배우를 출연시키는 조건으로 공동 제작에 참여하거나, 신생 제작사가 연륜 있는 제작사와 손을 잡는 경우 등 여러 공동 제작 형태가 있었는데 (계약서 없는) 구두 계약의 공동 제작을 어디까지 인정해줘야 하는지 의문"이라 우려를 표했다.
 

③ 제작사들의 침체기 암시 "거대 자본 너무 무비판적으로 받았다"

 
▲  영화 <7번방의 선물>의 한 장면.
 

'피고와 이환경 감독이 2007년경부터 2010년 4월까지 시나리오 초고를 완성했음에도 그로부터 약 1년 5개월이 지난 2011년 9월까지도 투자 계약이 체결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중략), 원고의 부탁을 받고 원고의 최대주주인 OO사는 NEW의 대표이사에게 원고와 피고가 공동 제작하는 영화에 투자할 것을 적극 검토해 달라고 수차례 전화했었다'
 

이 대목에서 실 제작사인 피고는 독자적으로 영화를 만들 수 없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피고는 2004년 설립해 올해로 11년 차를 맞이한 중견 제작사다. 흥행 감독으로 손꼽히는 <명량>의 김한민 감독, <댄싱퀸>의 이석훈 감독이 대중적 인기를 얻기 직전 피고와 작업한 이력이 있는 만큼 선구안도 좋았다. 하지만 피고의 <마음이2> <챔프>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2011년 즈음엔 위태로운 상황을 맞았다.
 

따라서 이번 분쟁은 작품 한 두 편의 흥망에 따라 제작사의 운명이 갈리는 현실을 증명하는 사례기도 하다. <7번방의 선물>은 대형 배급사인 CJ E&M, 롯데엔터테인먼트 등에서 투자를 거절한 뒤 NEW가 나서서 거둔 작품이다. 국내에선 중소규모에 해당하는 38억 원짜리 상업 영화 한편이 탄생하기 위해서도 대형투자사의 투자가 절실함을 시사한다. 
 

이 대목에 영화제작자 C씨는 "투자의 절실함은 10년 전에도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최근에 벌어지는 이런 분쟁의 근본 원인은 제작사들이 자초한 면도 있다"며 "2000년대 들어 재정난에 허덕이던 제작사들이 (영화로 눈길을 돌린) 대형 투자사들의 돈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게 결국 제작사의 자생력을 서서히 잃게 한 패착이었다"고 자책했다. 거대 자본을 투자한 기업들이 영화 제작 과정 전반에 간섭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요즘이다. 결국 제작비 마련에 대한 반성적 사고 없이, 돈받기에 바빴던 제작사도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법정에서는 해결하지 못할 근본 문제 중 하나다.
 

④ 배우의 개런티 문제...결국 상생의 노력이 필요해

  
▲  영화<7번방의 선물> 언론 시사회 당시 현장.
 

'원고는 이 영화에 출연한 류승룡의 출연 기본료는 3억 원, 러닝개런티는 손익분기점 달성시 초과 관객 1명당 100원으로 약정하였고 (중략) 배우 정진영의 출연 기본료는 2억 원, 러닝개런티는 손익분기점 달성시 1명당 50원으로 약정하였고 (후략)'
 

말 많았던 러닝개런티 문제다. 계약서에 따라 언급된 배우들은 해당 금액을 수령했다. 판결문에 나온 배우들 기본 출연료를 근거로 박신혜, 오달수, 정만식, 김정태, 박원상 등 주요 배우들의 출연료까지 더하면 대략 8억 원의 돈이 출연료로 사용됐다고 유추할 수 있다. 순제작비 대비 약 20% 수준이다.
 

이 내용에 영화제작자 B씨는 "영화 흥행이 배우에 따라 좌우되는 부분이 크기에 몸값이 올라가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문제는 제작비 안에서의 비중"이라 지적했다. C씨 역시 "미국이나 일본 배우의 출연료가 한국의 몇 배라고 하지만 제작비 대비 배우들 개런티가 10%를 넘지 않는다"며 "일부 매니지먼트들이 영화의 규모는 고려하지 않고 절대적인 금액만 맞춰달라고 요구하는 현실이고, 최근 들어 영화 수익에 대한 지분을 요구하는 일도 늘고 있다"고 토로했다. 30억 원짜리든 100억 원짜리든 배우 쪽에서 제작사에 요구하는 금액은 같고, 여기에 더해 보너스까지 줘야한다는 뜻이다.
 

통상 투자사와 제작사간 수익 배분은 6대4 정도다. 여기서 계약 내용과 조건에 따라 최대 8대2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7번방의 선물>의 투자배급사 NEW는 914억 원이라는 총매출에서 134억 원을 피고에 배분했다. NEW는 극장 비용(50%), 마케팅 비용, 배급료 등을 제외하고 약 350억원을 챙겼다. 나름 6대4의 비율을 지킨 셈. 결국 제작사끼리 정해진 파이를 가지고 싸우는 꼴이 된 것이다. 파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배우 개런티 역시 제작사의 부담인 만큼 상생을 위한 합리적 방안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매년 2억 명의 관객이 극장을 찾는 시대다. 연매출도 2조원을 넘어서 호시절이라 할만하다. 그런데 영화를 만드는 이들 중 행복하다 말하는 이가 많지 않다. 천만 관객 돌파 영화마저도 이처럼 고개를 숙인다면, 과연 어느 창작자가 기꺼이 열정과 창의력을 바치겠는가. 판사도 풀 수 없는 미스터리다.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