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경 김향기 시인천지개벽 앞에서
 

하루는 낮과 밤이 서로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하루는 낮이 있어 밤이고 밤이 있어 낮이다.
밤은 음이고 낮은 양이어서 음양이다.태양 아래 낮은 모든 것이 드러나는 밝음의 세계다.
달빛 아래 밤은 모든 것이 형체를 숨기는 어둠의 세계다.
이병주 작가는 달빛에 젖으면 신화가 되고 햇빛에 드러나면 역사가 된다고 했다.

사람들은 대개 드러난 역사에 주목하지만, 그 역사를 태동케 하는 것은 신화다. 낮은 화장한 얼굴로 움직이는 동적인 세계지만,
밤은 화장을 지운 맨 얼굴로 잠적하는 정적인 세계다.

나무로 치면 밤은 땅 속의 뿌리와 같고 낮은 밖으로 드러난 줄기와 가지와 잎과 같다. 뿌리는 깊은 어둠 속에서 꿈꾸며 영양분을 빨아들인다. 그 뿌리가 밖으로 드러나게 되면

줄기와 가지와 잎은 말라죽는다. 나무 자체가 존립할 수 없게 된다.
모순같은 순리고 순리같은 모순이다. 

정권이라는 나무, 정치조직이라는 나무도 마찬가지다.
밤의 신화가 있어야 낮의 역사가 이뤄진다.
밤의 신화가 없는 정권은 없다.

그런데 이 밤의 신화라는 것이 이제껏 대개 음모의 신화였다.
판 밖의 비선에 의해 이뤄지는 음모.
이 음모를 지켜낼 수 있는 것이 또한 정치력이고 조직력이었다.

이러한 정치력, 조직력이 와해되면 정권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

이제까지의 모든 정권이 아슬아슬한 밤의 신화, 비선의 음모를 간직해왔다.
사람들은 어쩌면 이것을 묵시적으로 용인해왔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인간 자체가 야누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든 모순적 순리 혹은 순리적 모순을 뒤엎는 사태가 벌어졌다.
박근혜 정권의 날개 없는 추락이 바로 그 사태다.

화장이 지워진 정권의 민낯이 까발려진 것이다. 밤의 신화와 음모, 비선의 실체가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언론의 칼춤이 신바람을 탔고, 민심에 도저한 불길이 붙었다. 정치권은 블랙홀에 빠졌다.

누구도 끌 수 없는 불길이고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블랙홀이다.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이 사태는 어쩌면 천지개벽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박근혜 정권은 멈출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천지개벽의 제물이 된 것이다.

그 제물을 놓고 지금 언론재판, 여론재판, 법정재판이 한창 펼쳐지고 있다.
과연 이 재판정에서 누구는 슬퍼 울고 누구는 기뻐 웃을 것인가.

천지개벽이란 어느 한 편의 좋고 싫음, 선과 악까지도 넘어 모두에게 적용되는 쓰나미와 같은 것이 아닐까. 밤낮이 뒤바뀌는 것과 같은 사태가 아닐까.
밤다운 밤, 낮다운 낮으로 하루를 살아 참다운 신화와 역사를 이어가라는 것이 천지개벽의 의미가 아닐까.

이 천지개벽 앞에서 우리는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민족을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천지개벽을 성찰의 자세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공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구를 향해 돌을 던지기 전에
과연 무엇이 자유이고 정의인지 엄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천지개벽을 존재론적으로 봐라봐야 하는 이유다. 

사후의 영계에서 발가벗은 실체로 살아야 하는 것처럼 과연 우리는 여기 이 땅에서 발가벗고 거리에 나설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야누스의 가면을 벗고 만인 앞에 설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한 점 의혹 없는 투명사회에 살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윤동주의 서시를 담담하게 읊조릴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용서하고 사랑하고 하나 되는 길을 갈 수 있을까.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질문이지만 우리는 여기에 답을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본심과 양심이 원한 바, 천지개벽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참다운 민심이 원한 바, 천지개벽이기 때문이다.
-산경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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