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경 김향기 시인천지개벽 앞에서(2)  -가공스런 언론권력의 쇄신이 필요하다

잠을 자다가 깨어나 묵상한다. 비 내리는 산길을 걸으며 기도한다. 한강변을 달리며 물어본다. 지금 내가, 우리가, 이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느냐고. 그러나 밤의 신도, 우람한 산도, 유장하게 흐르는 강도 아무 답변이 없다. 오래 전에 신은. 하나님은 사디스트인가?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제 자식들이 이 지구촌에서 이토록 전쟁과 빈곤 속에 피 흘리고 굶주리고 있음에도 침묵하고 계시다니.

지천명을 마감하는 연륜에서 바라보니 역사와 인생역정이 반드시 사필귀정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선과 악이, 밝음과 어둠이 서로 꼬이고 뒤틀리면서, 때론 심각하게 왜곡되면서 흘러가도 역사는 말이 없다는 것을. 아니, 선과 악의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는 것을. 그러니 본심과 양심을 좇는다는 것이 때론 얼마나 무모하고 무의미하며 어리석은가, 신과 역사를 들먹이는 자들이 얼마나 가증스러운가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 위에서 소소한 일로부터 천지개벽에 이르기까지 파도치는 역사 속에서 어제처럼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삶 속에서 차가운 이성의 머리로 기자적 시각을 갖고, 또한 동시에 뜨거운 가슴으로 시인적 시각을 갖는 것이 가능할까. 그러고자 애쓰는 마음으로 세 차례의 역사적 현장을 바라보자. (수다한 현안 가운데 한가지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보았다.)

지난 12일 광화문 시위인구는 경찰 추산 26만이었고, 주최 측 주장 80만, 100만 하다가 100만으로 기정사실화 됐고 언론도 100만으로 일사분란하게 보도했다. 당시 100만이란 수는 현장에서 느끼기에 참으로 경이로운 충격이었다.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 그리고 내자동은 걸음을 옮기기도 힘들 정도의 시민 물결이었다. 19일에도 자전거를 외곽에 묶어두고 현장을 둘러보았다. 비전문가의 시각이니 일단 12일의 100만을 기준으로 볼 때 1/4~1/3 정도라고 느껴졌다. 그러니까 25만~35만 정도라 느꼈는데 다음날 언론은 60만으로 보도하면서 이를 증명하느라고 지하철 티켓을 산정하는 등 애를 썼다.

어제 26일도 오후 7시 전후하여 집회현장을 둘러보았다. 12일을 기준으로 비교하여 느끼는 밀집도는 7/10 정도 즉 70만 정도였다. 오후 9시 뉴스를 보자니 경찰 추산 26만(지방 5만), 주체 측 160만(지방 30만)으로 보도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27일 방송과 인터넷 포탈 보도는 역대 최다 150만(지방 포함하여 200만)으로, 외신도 이를 받아 보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기자적 시각으로 느끼는 것은 첫째, 12일의 100만 집회는 시민과 언론도 다들 놀랬다는 것, 둘째, 19일 집회는 예상을 한참 밑도는 인원이었다는 것, 당시 수능학생이 참가하여 200만까지 참가한다는 예단 기사도 있었고, 경향신문 18일자 사설은 거의 수능생 참가를 독려한 격문에 가까웠다. 셋째, 19일과 26일의 인원이 상당히 부풀려져 왜곡됐다는 것. 신문과 방송, 종편 등 모든 언론보도는 19일을 60만으로 기정사실화 하고, 26일 치러질 집회를 200만으로 예단하면서 이를 위해 선동적 선정적 보도와 사설과 토론을 쏟아냈다.

다시한번 물어본다. 어리석은(?) 질문이지만 주체측은, 언론은 왜 100만도 안 되는 것을 150만(전국 200만)이라고 부풀려야 할까. (물론 나의 체감적 계산이 틀릴 수도 있지만, 보도의 의도성을 두고 지적하는 것이다.)

정말 가공스런 언론의 위력이 아닐 수 없다. 세 차례 민심촛불의 엄청난 분노의 함성을 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언론은 사실보도에 그 생명력이 달려 있다. 사실 보도 없이 진실보도란 사상누각이다. JTBC(손석희)의 태블릿 PC 보도로 촉발된 박근혜 정권의 기막힌 실정에 대한 모든 언론의 협공은 가히 언론혁명이라 부를 만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언론 보도 행태라는 것이 마녀사냥식 의혹, 예단, 선정, 선동적인 것으로 이어졌다. 아니면 말고식의 오보도 대량 생산되었다.
박근혜를 죽이기로 목표를 세워놓고 경쟁적인 까발리기, 신상털기식 보도가 이어진 것이다. 민노총 소속 좌파가 됐던 종북이 됐던, 아니면 순수 정의파가 됐던 한 목소리를 내는 기자들과 언론의 보도에 국민은 흥분했고 분노했다. 통제되지 않는 광기의 언론은 이제 민심의 눈치를 보며 자극적인 기사를 만들어내는 경쟁에 복무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여기에는 언론사 구조의 복잡한 세력관계와 지향성이 얽혀 있다. 정치권이 그렇듯이.

물론 그 과정에서 박근혜 정권의 명백한 실정과 국정농단이 백일천하에 드러난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왜곡된 민심이라고 말할 수 없다. 최순실 가짜 대역을 백에 95명이 사실이라고 믿어버린 민심이라 할지라도 역사는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니까. 그래서 이 민심을 정파적으로, 이념적으로 이용해 먹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시민혁명이고 명예혁명이고 천지개벽이라고 하는 것이다(믿고 싶은 것이다!!)

추악한 정치셈법이 작용하여 소급입법으로 만들어진 5.18특별법, 그리고 너무나 많은 원혼들의 아우성으로 법적, 역사적 사실과는 달리 그 위상이 바뀐 4.3항쟁에 대해서도 수용해야 하는 것이 우리 역사의 모순적 순리인지 모른다. 게다가 지금 친일논쟁과 국가 정통성 논쟁은 시작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는 국정교과서를 공개하기도 전에 폐기처분하라는 첨예한 역사의식으로 남남갈등을 겪고 있다. 과연 언제면 너와 내가, 남과 북이, 우리 한민족이 공감할 솔로몬의 역사 판정이 나올 수 있을 것인가.
그럼에도 소망을 갖는다. 역대 선거를 치를 때마다 ‘절묘한 표심-민심’이라 했는데 이러한 민심-천심이 작동될 것이라는 믿음!

어쨌든, 이건 아니다, 이게 나라냐, 이게 대통령이냐 하는 민심의 절규는 결과적으로 정당한 것이며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모두에게 쓰나미와 같이 덮쳐오는 것이다.

문제는 이 민심의 외침이 오늘은 박근혜를 향해 있지만, 그 누구에게도, 여야 모든 정치 지도자와 북한 김정은에게도 공히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민심의 외침은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나아가 이땅에 사는 한민족 모두에게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이 도저한 민심의 촛불 정신은 천지개벽을 추동할 수 있다.

한민족이 장차 통일을 이루고 미래 세계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늘 천지개벽을 이뤄야 한다. 낮과 밤이 뒤집어지듯이 기존의 부정과 부패 비리, 비정의와 비민주의 모든 관습적 의식과 행태가 무너져 내려야 한다. 조국통일이 되기 전에 썩은 남한이 먼저 뒤집어져야 미친 북한을 포용하여 함께 살 수 있다. (그 첫 번째가 언론 개혁이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죽기보다 힘든 혁명이다. 저마다 존재의 구속성과 당파성으로부터 해탈해야 하는 이 혁명, 천지개벽이라니!
ㅡ산경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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