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산김덕남, 前 원불교 문인회회장죽음의 연마  
 
 
요즘 눈이 너무 침침해 글을 잘 쓸 수 없습니다, 아마 이번 <덕화아카데미창립식>과 저의 졸저 <사람아, 사랑아!>의 출판기념회가 끝을 내면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며칠 정양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결국 해가 꼴깍 넘어갈 시간이 다가온다는 얘기이겠지요. 그럼 그 해가 꼴깍 하는 때, 죽기 1초전의 느낌은 어떤 것일까요? 
 
그 충격의 임사(臨死)실험 14단계를 소개한 사람이 있어 한 번 알아봅니다. 중국 정부계의 정보 포털사이트 중국 망(차이나 넷)은,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Raymond A.Moody박사가 임사(臨死)체험자 150명의 증언을 근거로 작성한 '임사(臨死)체험'을 소개했습니다. 
 
박사는 체험자의 대부분이 비슷한 체험을 한 것에 착안해, 임사(臨死)상태에서 다시 의식을 찾을 때까지의 과정을 순서대로 14개 항목으로 정리했습니다.
  
     1. 죽음의 선고가 들린다.
 
     2.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편안하고 유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3.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4. 돌연 어두운 터널 속으로 끌려들어 간다.
 
     5. 정신이 육체로부터 벗어나, 외부로부터 자신의 신체를 관찰한다. 
 
     6. 아무리 구해 달라고 소리쳐도,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다.
 
     7. 시간 감각이 없어진다.
 
     8. 시각과 청각이 굉장히 민감해 진다.
 
     9. 강한 고독감이 엄습한다.
 
     10. 지금껏 알고 지낸 여러 사람들이 나타난다. 
 
     11. '빛의 존재'와 만난다.
 
     12. 자신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13. 앞으로 나가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14. 다시 살아난다. 
 
기사에 의하면, 죽기직전 자신의 삶에 대한 평가가 내려지는데, 판단기준은 자신이 얼마나 돈을 벌고 출세를 했는지가 아니라 ‘한 평생 타인에게 얼마나 사랑과 온정을 함께 나누었는가?’ 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삶의 가장 큰 두려움이자 숙제가 바로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세계 인류의 50%이상인 이슬람, 카톨릭, 기독교, 불교, 원불교 그 외 모든 종교 교도들은 사후세계가 존재함을 믿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죽음에서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원히 산다고 하고, 불가에서는 죽은 다음에 여섯 종류의 다른 세계로 윤회(輪廻)하며 환생한다고 합니다. 
 
그중에 지옥과 극락도 있고 짐승, 수라(修羅), 다시 사람으로도 태어난다고 하기도 하지요. 또 유교에서는 몸은 죽어서 땅으로 흩어지고 혼은 허공중에 머물다 서서히 흩어진다고 합니다. 어쨌든 유신론자나 무신론자나 영혼의 존재는 대체로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몸은 유한한 것이고 죽어서 지수화풍(地水火風) 4대(四大)로 썩고 흩어지는 것은 불변의 사실입니다. 그래서 죽음은 단지 낡은 옷을 벗어버리고 새 옷을 갈아입는 것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우리의 사후세계의 참 모습 일까요? 
 
세상에 이것을 확실히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또한 우리 삶의 영원한 숙제이겠지요. 그러나 자연현상을 좀 더 깊이 관찰하면 죽음의 의미를 더 명확히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들 우리의 몸을 소우주(小宇宙)라고 말합니다. 우리와 우주자연은 별개가 아니라는 뜻이 아닌가요?  
 
우리들 삶의 지혜는 대부분 자연현상에서 깨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무들이 봄에 새싹을 틔우고, 여름에 짙푸른 녹음을 이루며, 가을에 아름다운 낙엽과 탐스러운 열매를 맺습니다. 또한 겨울에 잎이 지고 땅에 떨어져 썩어 흙으로 돌아가며 다시 봄에 새로운 생명을 싹틔웁니다. 이러한 순환은 지구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반복 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자연의 사계절과 흡사함을 알 수 있습니다.  
 
봄에 태어나서 여름에 왕성한 청년기를 지나 가을에 완숙한 장년기를 보내고 겨울에 황혼기와 죽음을 맞이합니다. 자연의 사계절이 반복해서 끊임없이 순환하듯이 우리의 삶도 나고, 자라고,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을 반복하며 영원히 이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을 동전에 비교하면 동전의 앞면은 삶이고 뒷면은 죽음이라 할 수가 있겠습니다. 따라서 죽음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이며,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아닐까요?  
 
그리고 죽음이란 과연 어떤 상태일까를 잠깐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오늘과 내일을 이어주는 것이 편안한 잠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금생(今生)과 내생(來生)을 이어 주는 것이 바로 죽음이지요. 따라서 죽음은 편안한 잠과 같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고 영원한 삶의 일부이며, 새로운 삶을 위한 준비기간입니다. 
 
죽음을 또 다른 삶으로 그리고 새로운 삶을 위한 편안한 안식(安息)으로 받아들이면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슬퍼할 이유가 없어질 것입니다. 죽음도 나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진리의 사랑이며 축복으로 여겨 감사하게 받아들이면 담담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관(棺) 속에 누웠을 때 어떤 기분일까요? 어떤 사람이 관 속에 들어가 본 적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죽음 체험 과정’이었습니다. 그 체험을 하려고 사람들이 줄을 선다고 합니다. 관 속에 들어가려고 말입니다. 기분이 묘했다고 합니다. 관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사람마다 눈물을 글썽거렸다고 하네요. 
 
‘아, 이런 거구나. 죽는다는 게! 바깥세상의 어떤 것도 이 안으로 가지고 들어올 수는 없구나.’ ‘숨을 거두었으니 이 몸도 곧 썩겠구나. 그럼 무엇이 남을까? 아, 그렇구나! 마음만 남는구나. 그게 영혼이겠구나!' ‘잘 살아야겠구나. 그래야 죽어서도 잘 살겠구나.!'  
 
어떻습니까? 죽음도 이렇게 연마하는 것입니다. 생사연마는 수행을 통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습니다. 그게 해탈(解脫)이고 열반(涅般)입니다. 이 경지라야 죽을 때 종종걸음을 치지 아니하고 의연하게 다녀 올 수 있을 것이 아닌지요!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