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 장편소설 모델하우스제15회

자각

요정과 같은 그녀에게 정세원은 단번에 사랑을 느꼈고 그녀도 정세원을 사랑 했었다. 미녀의 사랑을 받을 만큼 충분한 미남자였다. 지선이 그 첫사랑의 여인과 매우 닮은 외모였지만 두 여인의 내부적인 기질은 매우 다른 성향이었다. 무용수인 그녀는 날개처럼 마음껏 자신의 마음의 나래로 뛰노는 자유주의였다. 사랑도 많았고 늘 무대에서 껑충거리고 뛰놀듯 인생도 그러했다. 오직 자신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상대를 가까이 하였고 예술가의 예민한 감성 때문인지 쉽게 사랑에 빠지고 쉽게 변심하는 그런 기질이었다. 그녀의 단순함이며, 부와 화려함과 사치스러운 허영은 정세원에게 버겁고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정세원은 신중하게 자신과는 먼 여자라는 것을 냉철하게 파악하였다. 자신이 채였다는 그 상실감으로부터 방패막이가 되도록 미리 자연스럽게 헤어졌던 것을 현명하게 여겼다. 정세원은 하얀 피부에 찰랑거리는 단발머리의 민지선을 대할 때면 그녀의 청초한 아름다움이 뇌리에서 아른거렸다.

“어서 오세요”
정세원은 연구부장의 옆 자리에 다가가 앉았다.
“거, 요즘 정 선생님 신수가 훤해 보이는군요!”
김정숙은 미남인 그를 반가이 맞아들였다. 그리고 정성껏 녹차를 타서 대접했다.
“아, 감사합니다. 연수 성적 많이 확보하셨지요?”
“뭐 끝이 있나요. 교장 되기가 이렇게 고달파서야 되겠어요?”
“그냥 평교사로 열심히 학생들과 생활하다가 정년퇴임하는 것도  훌륭하다고 봅니다.”
“거 교장 되려고 학생들 가르치는 것에 소홀하고 윗사람에게 알랑방구하며, 잘 보이려 할 필요도 없고 얼마나 편합니까!”
“네, 맞아요. 학생들에게 열심이고 인기가 있는 선생님들은 별로 승진에 관심이 없지요. 그렇게 사시는 분들을 대우해 주어야 할텐데요…!”
대화 중에 그의 시선은 바로 맞은편의 민지선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의 유일한 민지선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가 교무실에 들어오면 민지선과 정반대의 끝자리에 자리 잡은 애춘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되었다. 정세원이 들어서면,
“어서 오세요”
사뭇 들뜬 기분으로 그를 맞이했다.

그러나 정세원은 애춘에게 관례적인 안부 인사로 지나치며 투명한 표정이었다. 거기엔 일체의 농담이나 춘심이 섞이지 않았다. 애춘은 자신에 대한 세원의 냉담함이 야속했다. 그는 미리 여자로서 침투할 것을 상쇄하듯 하였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지선에게 가끔씩 오래 머무는 것을 보았을 때, 애춘은 많은 것을 감지했다. 그녀가 애달파 하듯 그도 민지선에게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짐작을 못하지만 애춘만이 그 암호를 해석하고 있었다. 테니스 대회 때의 지선을 향한 시선, 자신은 단 한 번도 그런 눈길을 받아보지 못했다. 정세원은 지나가다가 우연히 지선과 마주치면 얼굴이 상기되어 활짝 웃었다. 그것은 사랑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의 미소였다. 그때마다 지선은 약간 상기되어 미소로 답했다. 자신에게 보내는 그 눈빛에 보답하는 예의라고나 할까. 그러다가 관례적인 표정으로 변하여 그냥 스치는 지선을 훔쳐보았다. 자신이라면 사랑의 눈빛에 들떠서 정세원의 어깨에 오르고픈 흥분과 격앙으로 몸을 떨었을 것이다. 거기다 차를 한잔 사 드린다든지, 술을 사달라고 하든가 애교와 교태를 한껏 부렸을 것이다.

지선은 바람이 불어도 요동치 않는 고요함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 것에 초연할 수 있는 지선에게 신비함을 느꼈다. 마치 그녀 내부에는 어느 누가 돌을 던져도 구멍이 나거나 무너지지 않는 든든한 성벽을 가진 집이 건축되어 있는 듯했다. 처음으로 자신과 지선의 다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곧 수치심이 몰려왔다. 획기적인 변화였다. 그 동안의 숱한 애정행각의 광란은 매우 대담했으며 주위 눈치나 체면도 살피지 않았다. 오직 애춘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성들에게 미끼로 고급요리와 술을 제공하며 외로움을 달랬다. 남자들은 그녀의 핸드폰의 호출에 여지없이 모여들었고 그녀는 유일한 공주가 된 것처럼 황홀함에 심취되곤 하였다. 
 haj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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