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산 김덕권, 원불교 문인협회전회장강희맹의 도자설

 

일원대도(一圓大道)에 입문한지 삼십 여 년에 이르렀습니다. 처음 들어와서는 듣느니 보이느니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고요? 제가 살아왔던 세계와는 180도 다른 세계였기 때문입니다. 싸우고 빼앗고 속이는 살풍경의 세계에서, 서로 돕고 주고 이끌어주는 아름다운 세계를 보았기 때문이지요. 그로부터 정말 일직 심으로 달려왔습니다.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직 진리를 깨치고 수행하며 실천하는데 총력을 기울였거든요.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진리>가 무엇인지,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진리>가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자 엉덩이에 뿔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큰 진리나 깨친 듯이 거들먹거렸지요. 주위 동지들한테 손가락질도 당하고, 스승님으로부터 눈총도 많이 맞았습니다. 그러나 벼도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든가요? 이제야 비로소 도반과 동지와 세상을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할지가 조금 보이게 된 것 같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것이 수행입니다. <정신수양(精神修養)> <사리연구(事理硏究)> <작업취사(作業取捨)> 이 삼학수행(三學修行)을 연마하여 삼대력(三大力)을 길러 불보살의 위에 오르는 일은 끝도 없고 한도 없는 것 같습니다. 꼭 <강희맹(姜希孟)의 훈자오설(訓子五說)>에 나오는 ‘도자설(盜子說)’이 적합한 예화(例話)인 것 같습니다. 이 예화를 우리 [덕화만발]의 <석봉 조성학 님의 한류와 글> 방에 실려 있어 인용합니다.
 

사숙재(私淑齋) 강희맹(1424∼1483)은 조선 전기의 문신입니다. 이 ‘도자 설’은 도둑 부자(父子)의 이야기를 통해 도 공부(道工夫)도 스스로 지혜를 터득해야 도학의 경지를 높일 수 있다고 당부하고 있는 한문 수필입니다.
 

도둑질을 일삼고 있는 자가 일찍이 자기 아들에게 도둑 기술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세월이 가자 아들은 자기 기술이 아버지 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도둑질을 하러 갈 때면 늘 아버지보다 앞서 들어갔다 나올 때는 뒤에 나왔으며, 가볍고 천한 것은 버리고 무겁고 귀한 것만 골라 가지고 나왔습니다.
 

또 아들도둑은 귀와 눈이 밝아 먼 곳에서 나는 소리도 잘 들었고, 어두운 곳에서도 먼 곳을 잘 살필 수 있었지요. 그러자 다른 여러 도둑이 그의 능력을 칭찬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아버지에게 자기 능력을 자랑합니다.
 

“소자가 아버지 보다 기술은 모자라지만 힘은 더욱 쓸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 지혜는 겸손한 자세로 배워야 이룰 수 있고, 또 그 지혜는 스스로 터득한 것이라야 더욱 훌륭한 경험이 되는 거야. 그런데 너는 아직까지 그런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어!”
 

“도둑이야 재물을 많이 훔쳐 오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보세요, 소자가 아버지와 함께 도둑질하러 가면 늘 아버지보다 더 많이 훔쳐오지 않습니까? 뒷날 소자가 아버지 나이가 되면 아마 보통 사람들이 도달하지 못하는 특별한 경지에 이를 겁니다.” “그렇겠지. 네가 만일 나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군대가 아무리 삼엄하게 경계하는 영(營)이라도 들어 갈 수 있고, 또 아무리 깊이 감추어 둔 물건이라도 찾아 낼 수 있을 거야.
 

그러나 백 번 잘하다가도 한번 실수하면 패가망신하는 실패가 뒤따르는 법이야. 그러니 물건을 훔치는 도중에 어쩌다가 탄로가 나 붙잡힐 지경이 되면 상황을 보아 도망쳐 나오는 기술을 스스로 체득하지 않으면 안 돼. 내가 보기에는 너는 아직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했어.”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 말을 승복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밤 도둑 부자는 도둑질을 하러 어느 부잣집에 숨어 들어갔습니다. 곧 이어 아들은 보물이 가득 차 있는 창고의 자물쇠를 따고 들어갔지요. 아버지는 아들이 들어간 창고의 문을 잠그고 그 문을 덜커덩 덜커덩 흔들었습니다.
 

그러자 곤히 잠을 자던 주인이 놀라 달려 나와 도망치는 아비도둑을 쫓았습니다. 그러나 붙잡을 수 없게 되자 주인은 돌아와 창고를 살펴봅니다. 주인은 곳간의 자물쇠가 채워져 있음을 확인하고는 안심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잤습니다.
 

그때 창고 안에 갇혀 있던 아들 도독이 빠져 나올 궁리를 하다가 손톱으로 창고 문짝을 박박 긁으면서 ‘찍찍’ 하고 늙은 쥐 소리를 냈습니다. 그러자 방에 들어갔던 주인이 속으로 중얼거립니다. ‘제기랄 쥐가 창고에 들어가 곡식을 다 축내는구나.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지.’
 

주인은 초롱불을 들고 와 자물쇠를 열고 창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아들 도둑이 문을 밀치고 도망쳐 나왔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도둑이 들었다고 소리쳤지요. 집안 식구들이 모두 몰려 나와 그의 뒤를 바싹 따라갔습니다. 도둑은 거의 붙잡힐 지경이 되었습니다.
 

아들도둑은 그 집 마당 안에 파 놓은 연못 둑을 타고 도망치다가 큰 돌 하나를 집어 물속에 던지고는 몸을 날려 뚝 밑으로 숨었습니다. 뒤따르던 사람들은 도둑이 물속으로 몸을 던진 줄 알고 모두 연못만 들여다보았습니다. 이 틈을 타서 도둑은 그 부잣집을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아들도둑은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원망하며 말했습니다.
 

“새나 짐승도 자식을 사랑하고 보호할 줄 아는 데 아버지는 어찌하여 자식이 붙잡히도록 일부러 자물쇠를 잠갔습니까?” 아버지는 대견하다는 듯 아들을 보며 말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네가 도둑으로 독보(獨步)적 존재(存在)가 되었구나. 사람이 남에게 배울 수 있는 기술은 한계가 있지만 스스로 터득한 것은 무한히 응용할 수 있기 때문이지.
 

특히 위급한 처지를 당해 임기응변(臨機應變)으로 위기를 모면함으로써 경험이 넓어지고 지혜가 발전하는 거야. 내가 너를 위험한 경지에 빠트린 것은 닥쳐올 위험을 미리 구제하려는 것이었어.” 어쨌든 도둑이란 남에게 몹쓸 짖을 하는 사람이지요. 그런데도 이렇게 그 기술을 스스로 터득한 뒤에야 능히 천하에 짝할 사람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도인이 도덕을 닦아서 불보살의 경지에 오르려는 큰 서원(誓願)을 이루려는 사람이 대충대충 해서야 어느 세월에 도를 이루고 중생을 제도(制度)할 수 있겠는지요? 우리 저마다 큰 뜻을 세우고 달려가는 덕화만발가족입니다. ‘강희맹의 도자 설’ 같이 올 한 해도 죽기 살기로 달려 서원을 달성해야 하지 않을 까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6년, 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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