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시양비론

우리 맑고 밝고 훈훈한 카페 [덕화만발]에는 '4대강령(四大綱領)'이 있습니다. 덕화만발 가족은 누구나 이 강령을 한 번 보시고 그 정신을 세상에 널리 전파하시면 참으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덕화만발 4대강령>
 

              

               1. 덕화만발은 사회의 공기(公器)이다.
 
               2. 덕화만발은 가족 모두가 주인이다.
 
               3. 덕화만발의 주인은 다음 네 가지의 강령을 지킨다.
 

         

          -. 우리는 맑고, 밝고, 훈훈한 낙원세상을 지향한다.
 
          -. 우리는 편협한 종교, 이념, 정치를 배격하고 중도를 지향한다.
 
          -. 우리는 서로 돕고 이끄는 상생상화의 정신을 지향한다.
 
          -. 우리는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적으로 활동한다.
 

 
어떻습니까? 우리가 이대로만 살아가면 싸울 일이 없을 것 같지 않은가요?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심각한 분열상을 나타내며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 좁은 땅덩이에서 크게는 남북으로 갈라지고, 남쪽에서는 동서로 그리고 진보와 보수로, 촛불과 태극기로 갈라져 마주보고 달리는 전차처럼 죽기 살기로 싸웁니다.

그런데 이 분열상은 꼭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닌 모양입니다. 이웃나라 중국의 지역감정도 보통이 아닙니다. 특히 산동인(山東人)들의 지역감정은 아주 심각하다고 하네요. 예로부터 중국 사람들은 ‘십리를 가면 삶의 방식이 다르고, 백리를 가면 풍속이 다르며, 천리를 가면 인간의 감정이 다르다’고 합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왕왕 자신과 고향이 다르면 다르다는 이유하나로 공연히 타 지역 사람들을 싫어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산동사람들은 하남성(河南省) 사람과 동북3성(東北三省)사람들을 가장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산동인은 적어도 그들과 혼인도 안한다고 합니다. 물론 동북사람들도 저희들끼리만 결혼하고 싶어 하지요.

산동사람들은 하남사람들을 신의를 안 지키는 사람이라고 매도하고, 동북사람들을 잔꾀만 부리고 만사에 성실하지 않다고 흉을 봅니다. 그 대신 동북사람들은 산동사람들을 표리부동하고 엉큼한 사람들이라고 매도하지요. 이렇게 그들이 서로 아옹다옹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노릇인가요?

이 광대한 중국대륙에서 일어나는 종족 간, 지역 간의 불화나 지역감정을 저의 짧은 식견으로 다 살펴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례를 보고 자금 중국의 종족간이나 지역갈등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결국 이런 지역갈등이나 종족간의 갈등을 가지고는 어느 나라나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닐까요?

율곡(栗谷) 이이(李珥 : 1537∼1584)선생의 ‘양시양비론(兩是兩非論)’이 있습니다. 양시(兩是)는 둘 다 옳다라는 뜻이고, 양비(兩非)는 둘 다 옳지 않다라는 뜻이지요. 사전적 의미로 양시론은 맞서서 내세우는 두 말이 모두 옳다는 주장이나 이론이고, 양비론은 맞서서 내세우는 두 말이 모두 틀렸다는 주장이나 이론입니다.

불교에서는 극단을 떠나 한편에 치우치지 않는 올바른 행법을 중도(中道)라고 합니다. 유(有)나 공(空)에 치우치지 않는 진실한 도리 또는 고락의 양편을 떠난 올바른 행법을 중도라고 하는데, 이를 실천하는 방법을 팔정도(八正道)라고 합니다.
 

유교의 중용사상(中庸思想)은 난해(難解)하여 이해하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중(中)은 양극(兩極)의 합일점이고, 용(庸)은 영원한 상용성(常用性) 즉,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이(程)는 “치우치지 않는 것을 중이라 하고, 바뀌지 않는 것을 용"이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중(中)은 공간적으로 양쪽 끝 어느 곳에도 편향하지 않는 것인데 비하여 용은 시간적으로 언제나 변하지도 바뀌지도 않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요
 

그리고 원불교에서도 ‘불편불의(不偏不倚)하고 과불급(過不及)이 없는 원만행(圓滿行)’을 주요 교리로 삼는데, 이 원만행이 바로 중도인 것입니다. 즉, 중도는 ‘정의롭게 하는 것, 또는 가장 타당한 방향을 취하는 것’을 말함입니다.
 

이율곡이 당파 싸움을 보면서 당쟁은 나라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며 “세상에는 둘 다 옳고, 둘 다 그른 경우가 있다. 지금 두 파의 싸움은 나라와 백성을 도무지 생각하지 않으니 둘 다 그른 경우이다. 마땅히 화해해야 옳은 일이요, 한 편만을 고집하면 두 편의 사이를 더욱 벌리는 결과밖에 안 된다”고 설파하였습니다. 이것이 양시양비의 논리인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의 세태는 어떠한가요? 모든 곳에서 극과 극을 달리고 있습니다. 광화문에서는 촛불민심이 거리를 뒤덮고, 대한문에서는 태극기의 물결이 하늘을 가리고 있습니다. 진보와 보수의 행동과 논리는 극명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과실로 인해 지엄한 탄핵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헌법재판소의 판결만 남아 있지요.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어서 이 기막힌 싸움을 끝내야 합니다.

우리는 냉철한 이성과 뜨거운 가슴으로 세상을 구하지는 못해도 세상을 바로 볼 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극과 극만 있을 뿐 중도는 찾아보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어쩌다가 우리 사회가 이렇게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진 사회로 몰락해 버렸는지 정말로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더 심각한 것은 양진영을 아우르고 이해와 협력을 도출할 수 있는 중도 · 중용 중화의 논리가 이젠 비난받는 세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도’ 아니면 ‘모’ 내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극단주의는 이제 없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맑고, 밝고, 훈훈한 낙원세상을 지향한다./ 우리는 편협한 종교, 이념, 정치를 배격하고 중도를 지향한다./ 우리는 서로 돕고 이끄는 상생상화의 정신을 지향한다./ 우리는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적으로 활동한다.」
 

우리 이 ‘덕화만발 4대강령’을 바탕으로 양시양비론이 아닌 상생상화(相生相和)의 길을 가야 하지 않을 까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1월 23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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