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진인
 

 
며칠 후, 제 왼쪽 눈에 백내장(白內障) 수술을 한다고 해 어제 안과에 가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돌아 왔습니다. 앞으로 어떠한 경우라도 제 몸을 위하여 수술 같은 것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이번 백내장 수술을 안 하면 더 이상 *덕화만발*을 쓸 수 없다고 하기에 할 수 없이 수술에 응하기로 마음을 냈지요.

 
불가(佛家)에는 무위진인(無位眞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도를 닦는 마음이 뛰어나서 지위를 달 수 없을 만큼의 경지에 오른 참된 도인을 말합니다. 또 모든 미혹(迷惑)함과 깨달음을 초월한 인간의 궁극적인 진실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요.

 
이 말은 당(唐)나라의 선승(禪僧)인 임제의현(臨濟義玄 : ?~867)의 가르침에 나오는 화두(話頭)입니다. 임제스님이 법상(法床)에 올라 말씀하셨습니다. “붉은 몸뚱이에 한 사람의 무위진인(無位眞人)이 있다. 항상 그대들의 얼굴을 통해서 출입한다. 아직 증거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잘 살펴보아라.”
 

 
그때에 한 스님이 나와서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무위진인(無位眞人)입니까?” 그러자 임제스님이 법상에서 내려와서 그의 멱살을 꽉 움켜잡고 “말해봐라. 어떤 것이 무위진인(無位眞人)인가!” 그 스님이 머뭇거리자 임제스님은 그를 밀쳐버리며 말했지요. “무위진인이 이 무슨 마른 똥 막대기인가?” 라고 하시고는 곧 방장실(方丈室)로 돌아가 버리셨습니다.
 

 
당나라 때 대시인 백낙천(白樂天 : 772~846)이 도림선사(道林禪師 : 741~824)를 찾아가서 “불교의 대의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선사는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는 것”이라고 답하셨지요. 그러자 백낙천이 웃으며 “그런 것은 어린애도 다 아는 게 아닙니까?”하고 반문을 했습니다. 선사는 “비록 세 살 먹은 어린애도 다 알지만 여든 먹은 노인도 행하기 어렵지요.”라고 하셨습니다.

 
또 “불기자심(不欺者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철(性徹 : 1912∼1993) 대종사께서 해인사 백련암에서 삼천 배를 수행한 불자들에게 좌우명으로 직접 쓰셔서 내려 주신 글이라고 합니다. 이 뜻은 자기가 부처인줄 모르고 자기를 속이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자기가 부처인줄 모르니 자신을 속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또한 좀 더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죄의식 없이 최대의 죄악인 남을 속이고. 또한 자신까지 속이는 행위를 계속 반복해 왔습니다. 죄 짓는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살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즉, 자기 자신이 ‘무위진인’임을 모르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남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고, 자기가 부처인줄 모르는 것이 어찌 죄가 아닐까요?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가 ‘무위진인’인 것을 아예 모르는 사람이고, 둘째는 자신이 깨달으면 ‘무위진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도 행하지 못하는 사람이지요. 그러나 이런 인식들도 잘못된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현실 이대로가 극락이며, 보이는 만물이 모두가 부처이기 때문입니다. 꼭 깨달아야만 부처이고 깨닫지 못한 것은 부처가 아닌 생각은 크게 잘못된 견해라는 얘기이지요. 사람이 닦아서 변하여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고 사람 그 자체가 부처인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 ‘불기자심’의 참 뜻이 인 것입니다.

 
그리고 ‘불기자심’의 또 다른 해석은 자기에게 정직하라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정직하라는 뜻도 결국 ‘자기를 바로 보라’는 의미입니다. 자기를 바로 보면 자기가 부처인 것을 알게 됩니다. 본래로 이미 다 갖추고 있는 무한의 생명과 모든 공덕(功德)과 복덕(福德)을 완벽하게 구비한 스스로를 보게 된다는 뜻입니다.

 
자기가 부처이면 다른 모든 이들도 부처입니다. 내가 부처이고 남들도 부처로 보일 때, 현실 그대로가 바로 극락이요 천당입니다. 누구든 자신의 것 외에 밖으로 구하지 않고, 밖의 것을 집착하지 않는다면 이미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완전무결한 부처님이요, 무위진인인 것입니다.
 

 
이렇게 ‘불기자심’은 거짓말 하지 말라는 의미도 있지만 세상에서 가장 큰 죄인 자기가 부처인줄 모르는 사람을 일깨우는 말입니다. 즉, 자기가 ‘무위진인’ 인 것을 깨닫게 해주는 말이지요. 서가모니부처님이 열반하시기 전에 아난존자에게 말씀 하신 내용 중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들은 마땅히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아야지 다른 것을 등불로 삼지 말아야 한다. 자신에게 귀의(歸依)하고 법에 귀의하지 다른데 귀의하지 말라.”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자등명법등명’의 설법이지요. 그렇습니다. 불가의 수행은 어디까지나 스스로 하는 자력수행입니다.

 
물론 신앙적인 방편에서 본다면 불보살에게 귀의하고 의지하는 의타적(依他的)인 요소가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깨달음의 성취는 자기의 수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불교에서는 이를 ‘자 타력병진’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자 등명’은 자기 자신의 본마음이 부처이니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본마음, 즉, ‘자기를 바로 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고 또한 그 속에 ‘무위진인’이 내포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불기자심’의 또 다른 해석은 자기에게 정직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자기에게 정직하라는 뜻도 결국 ‘자기를 바로 보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자기를 바로 보면 자기가 부처인 것을 알게 됩니다. 본래로 이미 다 갖추고 있는 무한의 생명과 모든 공덕과 복덕을 완벽하게 구비한 스스로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부처이면 다른 모든 이들도 부처라는 것입니다. 내가 부처이면 남들도 부처로 보일 때, 현실 이대로가 바로 극락이요 천당이지요. 그래서 누구든 자신의 것 외에 밖으로 구하지 않고, 밖의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이미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완전무결한 부처님이요 무위진인인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제 우리 모두가 부처님이요, 무위진인임을 깨치셨는지요! 그렇다면 유무(有無)를 초월하고 생사를 자유로 하는 ‘무위진인’이 이 나이가 되어서 어디가 조금 아프다고 쪼르륵 병원으로 달려가 째고 꿰매고 하는 그런 덧없는 짓은 말아야 하지 않을 런지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2월 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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