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불교 문인협회장 김덕권칼럼뒷담화 

 

‘뒷담화’라는 말이 있습니다. 뒤에서 서로 말을 주고받는 행위를 말하지요. 영어로는 ‘Backbite’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뒤에서 물어뜯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험담이 가벼운 흉보기로 끝나던가요? 대개 뒷담화가 과장을 거쳐 나중에는 분명히 사실과 다른 없던 이야기까지 나오고 결국 중상모략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뒷담화는 실로 무서운 것이지요. 오죽하면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된다.” 하셨을까요? 그래서 우리 덕화만발 가족은 누구나 뒷담화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카페라는 우리 집이 더욱 맑고 밝고 훈훈해지기 때문이지요.
 

이 뒷담화로 나중에 문제가 커지면 “에이, 가벼운 농담으로 한 말인데 뭘 그걸 가지고 그래?!” 하면서 책임에서도 벗어나려 합니다. 참 고약한 일이지요. 2012년 11월 LG경제연구원이 내놓은「직장 내 가십, 가볍게 넘길 대상 아니다」라는 보고서를 보면, 직장인의 41%는 회사에서 뒷담화가 갈수록 늘어난다고 발표했습니다.
 

뒷담화의 주 메뉴는 직장 상사입니다. 직장 내 뒷담화에 참여하는 이유로는 응답자의 31%가 ‘회사 · 타인 관련 정보 확보’를 들었습니다. ‘뒷담화를 통한 감정 분출 · 스트레스 해소(24퍼센트)’는 그다음이었습니다. 또한 ‘동료 간 친밀감 형성’과 ‘나의 불만을 타인이 알아주길 원함’도 각각 16퍼센트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2014년 영국 맨체스터대학 심리학 연구진은 실험을 통해 “유명인을 대상으로 한 험담과 뒷담화가 계속되는 이유는 해당 행위가 일반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시켜주는 주요 수단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 기본적으로 뒷담화는 일정 단체의 구성원들이 특정 대상에 대한 비판을 함께 하면서 친목과 단합을 유지하려는 사회적 욕구에 기반 한다고 했습니다.
 

특히 유명인들을 대상으로 한 뒷담화가 많은 이유는 그만큼 자신이 사회적인 관심과 폭넓은 공감대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뒷담화를 하는 중에는 더러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의 평판을 왜곡하기도 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대화하는 순간에는 대개 뒷담화의 주인공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보다 현재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대와 친해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990년대 초반까지도 이 뒷담화는 ‘뒷다마 깐다’는 비속어로 쓰여 왔습니다. 그러다가 가 차차 ‘뒷담화’로 순화되어 정착해버렸습니다. 원래 담화라는 단어는 ‘이야기’ 내지는 ‘대화’, 혹은 정치적인 발언 등에 가까운 의미였습니다.
 

그렇다면 뒷담화는 필요악인가요? 아니면 만악(萬惡)의 근원인가요? 옛 부터 우리나라에는 ‘나라님도 없는 자리에서는 욕도 하는 법’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좋은 씹을 거리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가능한 한 뒷담화는 자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뒷담화의 현장이 발각되었을 때 뒷감당도 힘들 뿐더러 그 사람과의 관계가 뒷담화 전으로 돌아가긴 매우 힘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뒷담화는 돌고 도는 법입니다. 만약 우리가 누군가의 뒷담화를 하고 있을 때 다른 누군가가 우리의 뒷담화를 하고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누군가가 ‘ㅇㅇ이 너 뒷담화하더라’ 라고 뒷담화 당사자에게 말해버리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SNS가 발달되면서 직장 상사가 블로그나 메신저의 뒷담화를 알아차리고 뒷담화하는 직원을 잘라버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쨌든 어지간하면 뒷담화는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뒷담화를 오래 지속하다 보면 ‘이 사람은 내가 없는 자리에서도 내 험담을 쉽게 하겠지’ 라는 인식을 줘서 신용을 잃게 됩니다. 즉, 사람들이 뒷담화 하는 사람을 불신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뒷담화하는 사람과는 상종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입니다.
 

옛날에 어떤 임금이 총애하는 신하에게 “네 소원 한 가지를 말해 보거라. 꼭 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머리 좋은 이 신하는 “그렇담 전하의 ‘귀 냄새’만 맡게 해주서!”라고 조아렸습니다. 임금은 신하의 청이 다소 엽기적이긴 하지만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그 신하는 모든 고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금의 귀에 코를 가까이 댈 수 있었습니다. 다른 신하들은 그만이 임금에게 무지막지한 최강 뒷담화를 하는 실력자로 알게 된 것이지요. 그 후, 모두들 그에게는 감히 대들지도 아니 꼼짝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 나라는 뒷담화 술수 꾼 하나 때문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꼭 지금 우리나라의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 이런 것이 아닐까요?
 

뒷담화는 이렇게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뒷담화는 ‘불평하고 싶은 인간의 단순한 본능적 욕구’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꼭 물처럼 약한 곳을 찾아 표면을 살피다가 끝내 침투할 곳을 찾아내는 특징이 있는 이 뒷담화는 여론을 곡해하고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기 십상입니다.
 

사람이 서로 사귀는데 그 좋은 인연이 오래가지 못하는 것은 대개 이 뒷담화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서로 유념(有念)할 자리에 유념하지 못하고, 무념(無念)하지 못할 자리에 무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유념할 자리에 유념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방면으로든지 은혜를 입고도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조금 서운하다고 의리 없이 뒷담화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념할 때에 무념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방면으로든지 남에게 은혜를 베푼 후에 보답을 바라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또 그 은혜 입은 사람이 혹 나에게 잘못하는 일이 있을 때에 전에 은혜 입혔다는 생각으로 더 미워하고 뒷담화를 일삼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좋은 인연이 도리어 원진(怨瞋)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덕화만발 가족은 누구나 유념할 자리에는 반드시 유념하고, 무념할 자리에는 반드시 무념하여 서로 사귀는데 그 좋은 인연이 오래가게 할지언정 그 인연이 나쁜 인연으로 변하지 않도록 특히 뒷담화를 조심하고 주의해야 하지 않을 까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사기 2017년, 원기 102년 2월 17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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