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 장편소설 모델하우스제25회

고향의 연인
그녀는 모든 사람의 시선을 주목받기 위해 우선 균형 있는 몸매 가꾸기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아침 일찍 일어나 어김없이 호수공원의 조깅 코스를 달리기 시작했다. 미명의 공기를 상쾌하게 마시며 혜란은 자신과의 대화를 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오직 전진이다.’

달리는 것, 그것이 인생이 아닌가! 한때 지독한 우울증에 사로잡혀 죽고 싶도록 어둠에 갇혔던 나날들, 그것은 무덤이었다. 심장이 멈추고 피가 돌지 않는 굳어버린 시체와 같은 것이었다. 공허와 배신과 저주의 나날들이었다. 혜란은 뛰면서 자신의 왼쪽 팔을 살폈다.

‘차라리 죽자.’

문구용 칼날로 자신의 팔에 살 속을 헤집어 가며 써 넣었던 지난날의 흔적이었다. 분노가 너무 커서 아픔도 몰랐었다.

석양이 지는 계단 밑에서 저 아늑한 하늘을 바라보며 늘 슬프게 엄마를 그리워하며 울었다.

“아앙, 아앙…!”

“이년! 빨리 안 그쳐!”

계단 한쪽의 모퉁이에서 먼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를 부르며 울고 또 울었다. 너무도 엄마가 보고 싶고 그리워 일주일에 한 번씩은 긴긴 울음소리가 그 일대를 메아리쳤다.

“화냥끼 있는 년! 저보다 어린 총각과 눈이 맞아 피붙이도 버리고 떠난 짐승 같은 년!”

할머니는 거친 욕설로 엄마를 증오했다.

“엄마 데려와! 데려 와아…, 보고 싶단 말이야…!”
“야! 닥치지 못해!”

할머니는 드디어 빗자루를 들고 마구 때리려 했다.

“그만 해요!”

회사에서 돌아온 아버지였다.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다고…!”
“지 새끼 버리고 떠난 그년! 어디 잘사는가 보자. 에이 천벌 받을 년!”
아버지는 오랫동안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딸애를 바라보았다.

“아빠, 엄마 돌아오라고 해. 빨리 돌아오라고! 아빠가 찾아오란 말야…!”
“………!”

아빠는 말없이 여자아이의 흩어진 머리를 추켜 올려주며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껴안아 들어 올리고 아이의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자, 이제 씻고 저녁먹자!”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워주던 자상한 아버지였다. 그런 날 다음에는 아버지는 언제나 술을 잔뜩 먹고 돌아와 잠을 자곤 했다. 그 후 간암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마저 몸져눕게 되어 소녀 가장으로 살아왔던 자신이었다.

지독한 생활고로 어느 날 15세의 소녀는 자신의 동맥을  끊어 죽고 싶었다. 차라리 죽자. 그 때 홀연히 들이닥친 고모의 손에 가까스로 살아난 자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꽃밭을 죽음의 동산으로 만들었다. 목을 매고, 동맥을 끊고, 한강에 투신자살하고, 좌절한 학생도 기업인도 연예인들도….

이슬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스스로 사라져갔다. 그것은 순간이었다. 혜란은 고개를 흔들며 마음을 잡았다.
 
그래! 뒤돌아보지 말자, 아무도 원망하지 말자! 뛰자. 그래 달리자!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전진뿐이다. 숲속의 나무들을 스치며 지나갔다. 새로운 신선함이 가슴을 적시었다. 뒤돌아보지 말자. 오직 앞으로 앞으로 전진이다. 전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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