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하우스제27회

캥거루 신드롬

채성은 고등학교 다닐 때 학생들 사이에서 문학 소년으로 불리었다. 어머니의 모성애적 결핍증세가 결국 책을 벗 삼게 했다. 책은 그를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탈출구이며 구원이었다. 그런 그의 습관은 이해력과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주어서 고등학교 3학년 때 성적이 부쩍 향상되었고 최고의 명문대를 수석으로 합격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그가 우수한 성적으로 경영대학에 입학하게 되자 장흥은 자신의 친구의 아들인 채성을 알아보고 일찍부터 자신의 집에 자주 초대했다.
 
이제 여중생이 된 애춘은 채성을 ‘오빠’라 부르면서 잘 따르고 좋아했다. 애춘의 어머니 이종례는 공부에 취미가 없고 밖으로 나돌기만 하는 애춘을 위해 채성에게 영어 과외 수업 가정교사로 한 집안에 두는 것을 좋아했다. 거의 매일 채성과 마주하며 식사도 같이하고 한 생활공간에 갇히게 되었다. 여름방학 때면 가족끼리 피서를 함께 하고, 바닷가에서 파격적인 애춘의 수영복 차림은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누이처럼 자연스러웠다. 채성은 그저 철없는 동생으로 여겼지만 애춘은 자신의 남편감으로 여겨 재잘거리고 졸라대었다. 채성은 그런 말광량이의 졸라댐이 때론 지나치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오빠 우리 저 쪽으로 가요!”
파라솔 안에서 사춘기 계집아이가 선글라스를 쓰고 투정을 부렸다. 채성은 그녀가 원하는 대로 말없이 모래가 많은 곳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애춘은 채성에게 모래로 자기 몸을 보이지 않게 덮어달라고 졸랐다. 채성은 두 손 가득히 모래를 모아 그녀의 몸에 퍼부었다. 그러나 자꾸만 흘러내리며 좀처럼 덮여지지 않았다. 마침내 채성은 지쳐서 짜증을 냈다.
“에잇, 이제 그만하자!”
그는 파도가 몰아치는 해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직 조금만 더….”
채성은 파도가 부딪치는 먼 바닷가를 바라보며 대답하지 않았다. 갈매기가 자신의 마음을 아는지 구슬프게 울부짖었다. 채성은 너무도 외로웠다. 자신과 진정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며 살 수 있는 친구 같은 여자,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포근한 여자, 그런 여자가 곁에 있다면 얼마나 자신은 행복할 것인가! 파도가 세차게 발목에 와 부딪쳤다. 그것은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후려치듯 찰싹거렸다. 햇볕은 따갑게 모래사장을 뒤덮고 있었다. 토라져 있는 애춘은 이종례에게 달려가 하소연 할 듯 여겼으나 의외로 잠잠했다.


채성이 대학 졸업반이 다 되어 갈 무렵 장흥의 집에서 나와 거처를 옮겼다. 그는 학교 근처에서 하숙을 시작했다. 여고생이 된 애춘은 밖에서 만나는 걸 즐기는 듯 줄기차게 자신을 찾아오고 오빠라 부르고 따라 다녔다.
“오빠 이 머리 모양 어때? 오드리 햅번 그 스타일이지?”
애춘은 미장원까지 채성을 데리고 와서 부산을 떨었다. 그것은 채성이 제일 싫어하는 여자의 짧은 머리였다. 여자의 근본을 잘라낸 것처럼 풍부한 모정과 사랑과 감성을 절단한 듯한 그런 머리를 채성은 싫어했다. 채성은 길고 풍성한 머리를 늘어뜨린 여자를 보면 자신도 모르게 아찔할 정도로 여인의 매력을 느꼈다.

채성의 마음과는 아랑곳없이 장흥은 애춘의 배필로 채성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종례 역시 총명하고 잘생긴 채성을 사윗감으로 탐내었고 애춘에게 채성을 꽉 붙들 수 있도록 은밀하게 조종하기도 했다. 애춘의 그런 행동들은 이종례의 교육방법에서 오히려 문제가 되었다. 이종례는 애춘이 어릴 때부터 자기방식에 따라 모든 진로를 결정하고 처리했다. 스키장, 미장원, 백화점, 공원 등등…. 자신이 애춘의 취미도 선택하고 만들었다. 옷도 딸의 취향이라기보다 이종례가 골라서 입혔다. 이 같은 이종례의 애춘에 대한 교육의 방향은 커다란 비극을 초래하게 되었다. 딸을 공주마마로 떠받들고 지나친 과잉보호가 문제아를 만들었다.

그 결과 애춘은 안타깝게도 사회적응능력의 결핍, 자립심, 염치, 정절…, 개념형성에 실패하였던 것이다. 심리적 증후군으로 ‘받아야만 행복’에 익숙해져 있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행복을 위해 존재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모두 자신에게 주목하고 희생해야 하고 자신만을 사랑해 주어야 한다는 애정도착증이 형성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남자를 향한 사랑에 그 갈증의 농도가 짙어졌다.〈어느 남자이고 나 애춘을 사랑해 주어야 한다. 나를 거부하는 자는 공주를 노엽게 하는 것이다. 난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 남자를 결코 용서할 수 없다!〉이렇듯 도식화되었다. 이는 이종례로부터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종례는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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