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부부의 정
 

 
인연(因緣)이란 무엇일까요? 인연은 원인을 의미하는 불교 용어입니다. 인(因)은 결과를 낳기 위한 내적인 직접적 원인을 의미하고, 연(緣)은 이를 돕는 외적인 간접적 원인을 의미하지요. 직접적인 원인으로서의 인과 간접적인 원인으로서의 연을 구별할 경우, 예를 들어, 씨앗은 나무의 직접적 원인인 인이고, 햇빛 · 공기 · 수분 · 온도 등은 간접적 원인인 연입니다.

고타마 붓다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연으로써 생겨나고 인연으로써 소멸하는 연기(緣起, 산스크리트어: nidna)의 이법(理法)을 깨우쳤다고 합니다.《아함경(阿含經)》에서는 인간이 미망(迷妄)과 고통의 존재임을 12인연으로써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경의《삼세인과경(三世因果經)》에 보면 겁(劫, kalpa)이라는 시간의 단위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천지가 한 번 개벽(開闢)하고 다음 개벽이 시작될 때까지의 시간을 뜻하는 것이지요. 1000년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낙숫물이 집채만 한 바위를 뚫어 없애거나, 100년에 한 번씩 내려오는 선녀의 옷자락이 사방 40 리의 바위를 닳아 없애는 시간, 혹은 사방 40 리의 철성(鐵城)에 겨자씨를 가득 채우고 100년에 한 알씩 꺼내 다 비워질 때까지를 겁이라고 합니다.
 

그럼 그 겁의 긴 세월 속에 우리는 어떻게 지중한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것일까요?

「500겁의 인연은 옷깃 한번 스칩니다./ 1천겁의 인연은 한 나라에 태어납니다./ 2천겁의 인연이 되어야 하루 동안 길을 동행합니다./ 3천겁의 인연은 하루 동안 한 집에서 잠을 잡니다./ 4천겁의 인연이 있어야 한 민족으로 태어납니다./ 5천겁의 인연이 되어야 한 동네에 태어납니다.
 

그리고 6천겁의 인연이어야 비로소 하룻밤을 둘이 같이 잘 수 있습니다./ 7천겁의 인연은 부모와 자식의 인연이 됩니다./ 8천겁의 인연이어야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됩니다./ 9천겁의 인연은 형제자매가 됩니다./ 1만겁의 인연은 되어야 스승과 제자가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 덕화만발 가족의 인연은 과연 몇 천 겁의 인연이 될까요? 우리들의 만남은 정말 소중합니다. 그 중에도 부부의 인연은 말 할 수 없이 큽니다. 저와 가까운 친지 한 분이 보내온 애틋한 한 부부의 사랑이야기가 있어 전합니다.

【내겐 형님이라 부르는 이웃이 있다. 어느 따듯한 봄 날 어디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어디를 다녀오세요? 라고 물으니 집사람 성묘를 다녀오는 길이란다. 오늘도 그의 손에는 팥죽이 들려 있다. 아내가 생각나서란다. 형님은 10년 이상을 홀로 거동도 못하고 치매에 반신불수로 누어만 있는 아내를 위하여 비가 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 한 결 같이 아내 곁에서 지내기를 10년, 피치 못해 아내 곁을 잠시 떠나는 경우라도 집에 오는 길에는 항상 그의 손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따끈따끈한 팥죽이 들려있다.
 

그러면서 항상 하는 말은 거동이 불편한 아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며 그런 세월이라도 길었으면 좋으련만 벌써 아내가 죽은 지 1년이란 세월이 지났단다. 그리고 몹시 안타까워한다. 만약 자기가 그 지경이 되었어도 아내도 그렇게 하지 않았겠느냐며 애써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천사가 있다면 그런 사람이 천사가 아닐까? 그런 힘든 세월을 살았던 형님을 보노라면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며, 아마도 형님에겐 끈임 없이 솟구치는 눈물샘이 마를 날이 없었겠구나 생각했다. 세월은 그렇게 빨리 흘러갔다. 우리는 사는 동안 많은 것을 느끼고 있다. 과연 부부란 무엇이며, 사랑은 무엇이며, 정이란 또 무엇이더냐?
 

그리고 나이 먹고 병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젊은 날에는 사랑 하나만으로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젊은 날의 사랑은 한 때는 활화산처럼 강렬하게 폭발하기도 했지만, 그 사랑도 세월의 풍파 속에 삭으러드는 재처럼 까맣게 흔적만 남겼다. 때로는 허전했다. 그러나 정은 세월이 흐를수록 토실토실 알토란같이 여물어 간다. 그래서 정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익어가는 것인가 보구나!
 

세월이 흐를수록 형님처럼 알토란같은 정을 쌓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수 십 년 간 정 이란 이름으로 마치 이것이 당연한 것처럼 부부애를 키워왔고, 사육시켜 왔고, 길들여 왔다. 참으로 잘 한 일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생각은 점점 키워나가야 한다. 매달리는 정은 진정한 정이 아니다. 이제 매달리는 정이 아닌 진정 아껴주는 정으로.....
 

황혼이란 이름을 빌려 서로 아껴주고, 보듬어 주며, 아스라이 떠오르는 정으로 거듭나리라. 이제 비록 몸은 옛날 같지 않아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지만 정 만은 형님을 닮아 황혼이지만 우뚝 솟구치는 그렇게 통 큰 질긴 정을 만들고 싶다.】
 

어떻습니까? 과연 제가 그분의 경우를 당하면 아내를 위하여 그런 정성을 다할 수가 있을까요? 오늘 아내에게 ‘덕화만발’ <덕인회>를 위한 <카톡방>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만들어 보지 않은 일이라 못하겠다고 쫑알거립니다. 스위시를 만들 정도의 인터넷 고수가 “예 알았어요. 만들어보지는 못했지만 한 번 애써 볼게요.”하면 될 것을 왜 그리 말이 많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이쿠! 이것 참!” 한 번 멈추면 될 것을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한 말 한 것이 못내 후회가 되니 이를 또 어찌하면 좋을까요? 마누라가 없으면 한 순간도 꼼짝을 못하는 주제에 큰소리를 치고 말았으니 이제 무엇으로 이 난관(?)을 돌파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네요.

우주의 진리는 원래 생멸(生滅)이 없이 길이 돌고 도는지라, 가는 것이 곧 오는 것이 되고 오는 것이 곧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는 사람이 곧 받는 사람이 되고 받는 사람이 곧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은 만고에 변함이 없는 상도(常道)입니다.
 

그런데 제가 남편이랍시고 아내에게 성질을 부린 과보(果報)는 또 어떻게 받아야 할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오늘 점심에 맛난 팥죽을 쑤어 주어 맛나게 먹었습니다. 8천겁의 인연이 부부연이고, 부부의 정입니다. 조금만 뜻에 맞지 않아도 큰소리치는 이 못된 버릇을 어찌하면 좋을 까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3월 21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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