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 김덕권(길호) 합장지혜보검
 

 
보검(寶劍) 중의 제일인 지혜보검(智慧寶劍)이 있습니다. 흔히 마음을 지혜의 칼이라 합니다. 또 취모 검(吹毛劍)이라고도 하지요. 취모 검은 가느다란 털을 칼날에 대고불어도 그대로 잘린다는 보검을 이릅니다. 즉, 인간의 모든 번뇌(煩惱)를 잘라내는 지혜를 비유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을 바로 쓰면 활인검(活人劍)이요 마음을 잘 못 쓰면 사인 검(死人劍)이라는 얘기입니다.

지혜(智慧)란 사물의 이치나 상황을 제대로 깨닫고 그것에 현명하게 대처할 방도를 생각해 내는 정신의 능력입니다. 그걸 불가(佛家)에서는 미혹(迷惑)을 끊고 부처의 진정한 깨달음을 얻는 힘을 말하지요. 지혜는 이치를 빨리 깨우치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지식에 의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로 사리(事理)를 분별하며 적절히 처리하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지혜를 갖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공공의 이익과 평화를 가져올 수 있어야 진정한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혜란 우직하고 스스로 바보가 될 줄도 알고, 바보임을 인지(認知)하고 사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계산 잘하고, 바보짓을 할 수 없는 똑똑한 사람은 결코 지혜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똑똑한 사람은 손해는 보지 않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지도 어루만질 줄도 모르고, 마음을 얻지도 내어주는 것도 못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똑똑한 사람은 성공은 할지 모르지만 온전하고 깊은 사랑이나 행복은 찾아 누리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온전한 사랑이나 행복은 바보 같고 미련한 수고와 인내 속에 맺고 영글어 피는 것 아닐까요? 지혜 있는 사람은 똑똑하지만 계산이나 저울질은 자신이 바보처럼 손해 보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혜로운 사람이란 손해를 보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손해를 볼 줄 아는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물론 손해만 보는 것은 진짜 바보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행복이나 사랑은 계산과 저울질로 사는 인생에서는 피어나지 못합니다. 이익(利益)을 좇는 것이 똑똑함이고, 유익(有益)을 찾는 것이 지혜입니다. 다산(茶山) 정약용이 이르길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머리 좋은 사람은 자신의 머리만 믿고 소홀하게 공부한다. 막힘없이 글 잘 쓰는 이는 자신의 재주에 마음이 들뜨기 쉽다. 배우고 바로 깨닫는 사람은 공부를 대충 하니, 그 깨달음이 오래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옛날에 임금님이 한 분 있었습니다. 임금님은 애꾸눈에다가 외다리며 난장이었지요. 어느 날 왕은 그 나라에서 제일가는 화가를 불러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습니다. 화가는 미리 왕의 의중을 헤아린답시고 다리 둘에 두 눈을 똑바로 뜬 보통 키의 초상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왕은 이를 보고 우롱당한 듯한 느낌이 들어 그 화가의 목을 베었습니다.

그 다음에 불러온 화가는 이 소문을 들은지라 사실대로 그렸습니다. 애꾸눈에 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난쟁이 모습 그대로였지요. 이번에도 왕은 모욕감을 느껴 그 화가의 목을 베었습니다. 세 번째로 불러 온 화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나갈 궁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그는오랜생각끝에말을 타고 총을 겨누어 사냥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다리 하나는 말의 반대편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고, 목표물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 눈 하나는 감을 수밖에 없으며, 허리를 굽히고말을타고있었기때문에 난장이도 자연스럽게 정상인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왕은 이 그림을 보고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는 앞의 화가들에게는 없는 지혜와 자비를 드러내었기에 죽지 않고 그림도 성공시킨 것이지요.

그럼 지혜보검은 어떻게 얻는 것일까요? 그건 우리가 정신을 수양하고, 사리를 연구하며, 일을 할 때 취(取)하고 버리기(捨)를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면 되는 것입니다. 이를 우리는 삼학공부(三學工夫)라하고, 이 공부를 통해 얻은 힘을 삼대 력(三大力)이라 하며 바로 이것이 지혜보검인 것입니다.
 

첫째, 정신수양(精神修養)입니다.
 

정신이라 함은 마음이 두렷하고 고요하여 분별 성(分別性)과 주착 심(住着心)이 없는 경지를 말합니다. 그리고 수양이라 함은 안으로 분별성과 주착 심을 없이하여 밖으로 산란하게 하는 경계(境界)에 끌리지 아니하여 두렷하고 고요한 정신을 양성함을 이름입니다.

둘째, 사리연구(事理硏究)입니다.
 
사(事)라 함은 인간의 시 · 비 · 이 · 해(是非利害)를 말함이요, 이(理)라 함은 곧 천조(天造)의 대소 유무(大小有無)를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대(大)라 함은 우주 만유의 본체를 이름이요, 소(小)라 함은 만상이 형형색색으로 구별되어 있음을 이름이지요. 또한 유무(有無)라 함은 천지의 춘 · 하 · 추 · 동 사시 순환과, 풍 · 운 · 우 · 로 · 상 · 설(風雲雨露霜雪)과 만물의 생 · 로 · 병 · 사와, 흥 · 망 · 성 · 쇠의 변태(變態)를 이름이며, 연구라 함은 사리를 연마하고 궁구함을 이름입니다.
 

셋째, 작업취사(作業取捨)공부입니다.
 
작업이라 함은 무슨 일에나 안 · 이 · 비 · 설 · 신 · 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작용함을 이름이요, 그리고 취사라 함은 정의는 취하고 불의는 버림을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 삼대력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엄청난 수행(修行)이 따르지 않으면 지혜보검을 얻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수행법으로『일상수행의 요법, 정기훈련과 상시훈련법, 염불법(念佛法), 좌선법(坐禪法), 의두연마(疑頭硏磨), 일기(日記), 무시선(無時禪) 무처선법(無處禪法)』등을 닦고 또 닦는 것이지요. 이렇게 하면 우리는 삼대 력을 얻어 마침내 불보살의 위에 오르고 지혜보검을 손에 쥐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 생령을 제도(制度)하고 원하면 원하는 대로 이루고 살아 갈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지혜 있는 사람은 자기를 낮추고 삽니다. 그래서 언제나 조금은 밑지고 살고, 무조건 베풀며, 세상을 위해 맨발로 뛰는 것입니다. 지혜보검! 얻기가 쉽지 않지요? 그러나 닦고 또 닦으면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그것 한 번 얻어 마음껏 휘두르다 가면 어떨 까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4월 7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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