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 칼럼니스트후안무치 법꾸라지
 

어제 4월 25일이 ‘법의 날’이라고 합니다. 우연히 인터넷을 뒤지다가 <모르쇠>라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풍자와 해학으로 엮은 트로트 노래입니다. 그 가사 또한 여간 재미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 그 가사를 음미해 보시지요!

<모르쇠>
 

「몰라요 모릅니다. 기억이 안 납니다./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본 적도 들은 적도 만난 적도/ 통화한 일도 없습니다./ 일곱 시간 행적도 올림머리 사연도/ 나는요 모릅니다. 정말 몰라요./ 내 이름은 법꾸라지/ 나는 뻔뻔 모르쇱니다

 

몰라요 모릅니다. 기억이 안 납니다./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본 적도 들은 적도 만난 적도/ 통화한 일도 없습니다./ 보안 손님 이름도 불법 미용 시술도/ 나는요 모릅니다. 정말 몰라요/ 내 이름은 후안무치/ 나는 철판 모르쇱니다./ 나는 뻔뻔 모르쇱니다.」
 

흔한 트로트가 아닙니다. 노래를 듣다 보면, 최근 국민들의 울화통을 터지게 했던 장면들이 머리에서 하나 둘씩 떠오릅니다.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회 청문회에서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해 ‘모르쇠’로 일관한 증인들에 대한 송곳 같은 풍자가 쏟아집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우병우 민정수석을 향해 “내 이름은 법꾸라지, 나는 뻔뻔 모르쇠”라며 직격탄을 날립니다.
 

이 노래 ‘모르쇠’를 작사 작곡한 유지성씨는 “블랙리스트에 오르더라도 문화예술인으로서 할 일이라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유지성씨는 노래를 부른 권윤경씨의 남편으로, 아내와 함께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었습니다. 유지성씨와 권윤경씨는 이 노래를 발표하고 “가사를 고치라는 협박과 모욕까지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말이 있습니다. ‘뻔뻔하고 부끄러움이 없다’ ‘낯가죽이 두꺼워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뜻이지요. 후안무치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옛날 하(夏)나라 계(啓) 임금의 아들인 태강은 정치를 돌보지 않고 사냥만하다가 끝내 나라를 빼앗기고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의 다섯 형제들은 나라를 망친 형을 원망하며 번갈아가면서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그 노래 중 막내가 불렸다는 노래에「萬姓仇予, 予將疇依. 鬱陶乎予心, 顔厚有(만백성들은 우리를 원수라 하니, 우린 장차 누굴 의지할꼬. 답답하고 섧도다, 이 마음, 낯이 뜨거워지고 부끄러워지누나)」이 대목에 나오는 후안(厚顔)이란 두꺼운 낯가죽 을 뜻하는데, 여기에 무치(無恥)를 더하여 ‘후안무치(厚顔無恥)’ 라는 말로 쓰이게 된 것이지요.

 

《논어(論語)》<위정편(爲政編)>에서도 법의 가치를 표현한 말이 나옵니다. ‘법제로써 백성들을 인도하고 형벌로써 규제한다면, 백성들은 법망에서만 벗어나면 수치심을 느끼지 못한다. 덕으로써 백성들을 인도하고 예로써 규제한다면 백성들은 수치심을 알게 되고 감화를 받게 된다.(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나라의 통치란 법과 형벌로 하지 않으면 통제할 방법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보편적인 상식에서 벗어나 법과 형벌보다는 덕과 예로 백성들을 보살펴줄 때 인간이 수치심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백성들이 덕과 예에 감화되어 아름다운 질서를 회복하는 세상이 된다는 공자(孔子)의 이 말씀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공자가 가신지 2,50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도 예와 덕에 감화되어, 부끄러운 수치심을 지닌 사람은 찾기가 어렵습니다. 이제 대부분 인간의 심장에는 털이 났나 봅니다. 잡초가 무성하여 아무리 못된 짓을 행하고 아무리 큰 죄악을 저지르고도 전혀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고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조차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얼굴에다 철판을 깐 후안무치의 인간이 아니고는 높은 지위에 오르지도 못하고, 고관대작의 직책을 얻을 수도 없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아무리 큰 범죄를 저지르고도 죄를 지은 일이 없다고 끝까지 부인하다가 용케 법망에서만 빠져나가면 만사가 해결되었다고 여깁니다. 죄를 짓고 잘못을 느끼며 부끄러움을 못 이겨 사죄하고 반성하여 뉘우침을 보이는 사람은 아예 없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저 하나라의 태강 때처럼 세상에는 덕과 예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오직 ‘법꾸라지’라고 불리는 인간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덕과 예도, 도(道)와 의(義)도 사라진 오늘입니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재물과 권력만 추구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재물을 얻고 권력을 쥐게 되면 만인의 존경을 받고 큰소리치며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수치심이 사람의 마음에서 사라진지 오래라는 말씀입니다.

 

온갖 부정으로 부귀영화를 누리고 악행을 저지르며 국정농단에 깊이 관여하고도 법의 허점을 악용하여 구속을 면하는 법꾸라지들이 버젓이 행세하는 세상입니다. 얼굴이 두껍고, 수치심을 모르는 인간들이 사라져야 비로소 법의 정의가 실현되는 법의 날이 되지 않을까요?
 

법의 날은 법을 준수하는 마음을 갖게 하고 법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 위하여 제정된 대한민국의 기념일입니다. 매년 4월 25일이지요. 1953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법의 지배를 통한 세계평화대회’에서 모든 국가에 ‘법의 날’ 제정을 권고하기로 결의하자 대한민국도 1964년부터 법무부 주관으로 시행하기 시작한 날입니다.

 

그런데 법의 날을 맞는 법조인들의 심정이 매우 착잡하다고 합니다. 법을 집행하는 검찰이 놓인 궁색한 처지 때문입니다. 후안무치한 법꾸라지들의 횡행이 몰고 온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릅니다. 그 결과 검찰은 개혁대상인 적폐(積弊)세력으로 전락했습니다. 대통령 후보들이 공통으로 제시하는 공약이 검찰 개혁입니다. 국민 대다수도 검찰 개혁이 필요하다고 인정합니다. 정치권력의 영향 아래서 자유롭지 못했던 검찰이 자초한 면이 크지 않을 런지요?
 

세상에는 네 가지 큰 은혜가 있습니다. 바로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은혜이지요. 원불교에서는 이 네 가지 은혜를《사은(四恩)》이라 부르고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모십니다. 이 네 가지 은혜를 믿고 신앙하고 실행에 옮길 때, 이 땅에 후안무치 법꾸라지들은 사라지고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낙원이 오지 않을 까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4월 26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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