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 장편소설 모델하우스제45회
 

꽃과 나비
 

아침부터 밖은 봄비가 부드럽게 내리고 있었다. 교정의 화단엔 목련꽃 빛깔이 선명하게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목련을 보며 문득 애춘은 혜란의 미모가 떠올랐다. 분명 남편이 꺾고 싶은 만족한 아름다운 꽃이었으리라. 아름다운 몸매와 매력적인 얼굴이 늘 자신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애춘은 여전히 혜란과 똑같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하고 싶은 백조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혜란의 외모가 남편 채성이 선호하는 여인이라는 것, 그래서 세밀하게 그녀의 몸의 곳곳을 연구하여 성형으로 완성하고 싶어졌다. 애춘은 회사 주변에 맴돌며 자가용 안에서 깊은 선글라스를 쓰고 황혜란이 남편과 함께 있는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았다.

그 동작과 얼굴표정, 어떤 때는 사람을 사서 그녀의 뒷모습과 옆모습을 찍어오게도 했다. 이렇게 외모에 열중하다 보니 어느덧 자신이 그렇게 변한 듯이 황홀했다.



모두가 퇴근한 교무실이었다. 애춘은 자리에서 일어나 2층으로 통하는 복도 쪽으로 서서히 이동했다. 미술실은 언제나 자신이 골몰하는 작업실이었다. 미술실기 시간에 이곳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비너스 석고 흉상이 마지막 모아진 더운 빛을 받으며 이마에 머물고 있었다. 창밖으로 그 얼굴이 기울어져 있는 듯했다. 매일하는 수업 시간도 이제 이력이 났다.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내용을 하루에도 대여섯 번을 되풀이 하는 생활!

매일 퇴근 후〈아카데미〉의 모임도 이제는 권태를 느끼기 시작했다. 함께 만나는 사람들도 더 이상 새롭고 참신한 것이 없었다. 권태롭고 무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과 함께 하면서도 하품은 연거푸 계속 나오고 있지 않은가!

애춘은 새로 구입한 커다란 이젤 앞으로 다가갔다. 붓대를 들고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꾸 황혜란의 얼굴이 붓대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다시 까만 유화물감으로 지우고 그 위에 흰색을 덧칠했다. 다시 캔버스를 교환했다.

붓대는 어느 여인의 누드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혜란의 겉모습만 보았을 뿐인데 마치 모델이 지금 서 있는 것처럼 그녀는 숨 가쁘게 진행되었다.

붓대는 하체부터 움직였다. 잘록한 S라인의 허리 부분은 그녀의 탐스런 유방을 받쳐주고 있었다. 허리 라인에서 둥그스름한 히프가 탄력 있게 몸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그녀 또한 두 눈이 옆으로 길게 찢어지듯 그 얼굴에서 남자를 잡아먹을 구조였다. 자신의 눈은 옆으로 길지도 않았다.

너무도 단순하고 멍해 보이는 눈망울이다. 할일이 없어 하품을 하는 무료한 시간에는 소의 커다란 눈망울처럼 게으르고 멍하게 껌벅이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어느덧 날씬하게 쭉 뻗은 종아리…, 혜란의 얼굴만이 미완성이었다.

그녀가 남편과 불륜을 저지르는 이유는 단지 사랑만이 아닐 것이다. 채성을 홀려 그의 사업을 송두리째 자기 것으로 하고자 하는 꽃뱀일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튼 얼굴의 윤곽을 일단 달걀형의 미인형으로 잡아 놓고 잠시 붓대를 놓았다.

창밖은 벌써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이제〈아카데미〉의 모임을 좀 보류하고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다. 애춘은 다시 그림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황혜란의 누드화냐,

자신의 누드화냐는 이제 얼굴에 따라서 달라지게 되어 있다. 결국 애춘은 그 누드화 주인을 자신의 얼굴로 했다.

그러나 몸매는 황혜란의 몸매였다. 동그랗고 단순한 눈매, 작고 도톰한 입술, 고양이상을 하고 있는 여자였다. 고양이 상의 여자! 늘 주인의 사랑에 목말라하며 재롱을 떨고 주인의 어루만짐을 받는 고양이상! 어느덧 화폭에는 싱싱한 애춘의 누드화가 완성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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