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산김덕권 칼럼니스트 사주팔자

어느 분이 사주팔자(四柱八字)가 너무 기구하여 그런지 이 굴레를 벗어날 방법이 업겠느냐는 질문을 해 오셨습니다. 허허! 제가 역술인도 아니고 사주팔자를 알 턱이 없습니다. ‘점쟁이’들은 인간은 사주팔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고, ‘풍수쟁이’들은 인간의 길흉만사가 모두 터에서 비롯한다고 말합니다. 누구 말이 맞을까요?

사주팔자를 쉽게 풀이하면 4개의 기둥과 8개의 글자를 말합니다. ‘사주(四柱)’, 즉 4개의 기둥은 자신이 태어난, <년, 월, 일, 시>를 말하고, ‘팔자(八字)’는 8개의 글로 태어난 <연, 월, 일, 시>에 배당된 글자가 각각 2자씩 여덟 자라서 팔자라고 하지요. 결국 사주와 팔자는 같은 말이라고 하네요.

만약 오늘 2017년 5월 31일 저녁 6시에 태어난 아이가 있다면, 아이의 사주는 2017년(정유), 3월(계묘), 29일(임술), 오후6시(기유)가 됩니다. 그래서 이 아이의 사주를 정리하면, 丁酉(년주)/ 癸卯(월주)/ 壬戌(일주)/ 己酉(시주)/와 같은 사주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8글자가 이 아이의 팔자인 것이지요.

그럼 사주팔자는 고칠 수도 없고 변할 수도 없는 것일까요? 일반적으로 사주팔자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숙명, 곧 어떤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는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말합니다.

숙명(宿命)이란 인간이 북한에서 태어날 수도 있고, 미국에서 태어날 수도 있고, 한국에서 부잣집의 외아들로 태어날 수도 있고, 가난하고 나쁜 환경의 가정에서 태어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건 숙명이고 피할 수 없는 필연(必然)입니다. 어쩔 수도 없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지요.

그런 반면에 운명(運命)이라는 것은 태어나면서 부터 도시와 농촌 등 자연환경도 있고, 부모님을 시작으로 일생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도 접하게 되는 인간환경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아(自我), 즉 ‘나’를 아무렇게나 내버려 두기도 하고, 좋은 친구와 사귀기도 하고, 훌륭하고 스승을 만나 보람된 삶을 사는 경우도 있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세상을 비관하며 사는 일생도 있습니다.

이렇게 운명은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속죄하고 남을 배려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라는 모든 일이 이루어지도록 열과 성을 다한다면 지성이면 감천(至誠感天)으로 모든 것이 뜻대로 이루어져 운명이나 팔자를 고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 팔자를 고치는 ‘팔자타령’이 있습니다. 학창시절에 하루는 국어선생님이 아무 말도 없이 칠판에 여덟 팔(八) 자를 크게 쓰셨습니다. “이게 무슨 글자인가요?” 한 학생이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팔자(八字)입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八자 앞 획을 길게 늘어뜨렸습니다. “선생님, 八자가 나쁩니다.” 이번에는 뒤 획도 길게 늘어뜨렸습니다. “선생님, 八자가 늘어졌습니다.” 이번에는 늘어뜨린 것을 지웠습니다. “선생님, 八자가 좋아졌습니다. 八자가 좋습니다.” 그제야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여러분! 사람팔자는 이렇게 내 마음대로 고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팔자타령을 하다니요?” 혹 팔자를 고치려는 노력도 아니 하고 팔자타령만 하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이와 같이 사주팔자나 운명은 고정 된 것이 없습니다. 다만 고칠 수 있는 것입니다.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났다는 것은 잘못된 운명론에 사로잡힌 결과입니다.

운명론은 주역사상(周易思想)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역은 인간의 생로병사와 자연만물의 사계(四季)에는 별자리의 이동과 지구를 중심으로 한 오행(五行)의 경로에 따라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사상입니다. 그럼 그 사주팔자를 고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첫째, 스스로 타락 심을 내지 아니하고 꾸준히 향상해 가는 것입니다.
사주팔자나 운명은 없습니다. 아니 고칠 수 있는 것이지요. 나도 불보살이 되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며 지성여불(至誠如佛)의 정신으로 신앙과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둘째, 견실한 신성(信誠)과 신근(信根)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천만 역순(逆順)경계에 흔들림 없는 믿음의 뿌리를 세우는 것입니다. 부처도 조사(祖師)도 다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는 누구이고 나는 누구냐 하고 분발하는 것이지요.

셋째, 인생의 스승을 만나는 것입니다.
나 이상의 도덕을 갖춘 스승을 만나 친근 공경하며, 숭배 신봉(信奉)하며 계속 정진하는 것입니다. 공자님은 세 사람이 걸어도 그 가운데 스승이 계시다고 하셨습니다.

넷째, 나만 못한 근기(根氣)를 항상 포용하는 것입니다.
세상엔 나만 못한 사람들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포용 보호하여 나 이상이 되도록 인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화(敎化)요, 제도(濟度)입니다.

다섯째, 계속 적공(積功)하는 것입니다.
공부와 서업에 대하여 스스로 만족하지 않고 항상 부족한 생각으로 계속 적공하는 것입니다.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파는 것입니다. 감로수가 나올 때 까지 적공하고 또 적공해야지요.

여섯째, 만족하고 베푸는 것입니다.
가진 것에 만족을 하는 것입니다. 탐욕은 금물입니다. 언제나 스스로 만족하고, 부족한 이웃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보시 이상의 공덕은 없습니다. 조금은 바보 같이 살고, 무조건 베풀며, 세상을 위하여 맨발로 뛰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여섯 가지만 실행하면 반드시 팔자를 고치고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이 40이 넘어서야 이 법을 만나 팔자를 고친 사람이 바로 저 김덕권 입니다. 죽기 살기로 실행하는 것입니다. 가다가 아니 가면 아니 감만 못합니다. 방심하지 않는 데에 성공이 있습니다. 원(願)은 큰 데에 두고, 공(功)은 작은 데부터 쌓는 것입니다. “운명아 비켜라! 내가 간다.” 사주팔자쯤이야 여반장(如反掌)이 아닐 까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5월 31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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