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하우스제47회

꽃과 나비

심정수는 휘몰이 시간이 스쳐 지나자 자신에게 ‘사랑’없이 행하는 이 행위에 대해 문득 비참함을 느꼈다. 몇 명의 여자를 꼬드겨 깊은 섹스를 해봤지만 말초적 쾌락뿐 사랑과 애정은 더욱 멀어져 갔다. 그 중 어느 한 여자의 영혼과도 만나지 못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런 행동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후회를 반복하면서 또 그 행동에 빠져 들곤 했다. 한 마리의 호랑나비가 되어 꽃의 담즙을 빨고 있는 자신이 정말 꽃의 아름다움 때문인지 반문했다.
그 꽃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정사가 끝나면 늘 혼란스런 상태였다. 자신과 관계하고 나면 여자들은 모두 등을 돌렸다. 자신을 혐오하고 피하기 시작했다. 장애춘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상했다. 섹스는 사랑의 절정의 열매이어야 하고 그것을 통해서 남녀의 사랑을 확인한다고 하던데….

그 많은 여자들은 단 한 번으로 수치심과 함께 자신에게 떠나 사라져갔다. 아, 외롭다! 가정을 이탈한 자에게 주신 형벌이란 말인가! 왜 간음하지 말라 하였는가! 그것을 지금 깨닫는 것 같았다. 친구 목사가 늘 자신에게 말하듯 하늘이 정해준 질서를 이탈할 경우 그것은 인간에게 다시없는 불행의 연속이라고 했던 말을 기억했다.
아! 외롭구나…!
허무함과 혼란스런 감정이 그를 덮쳤다. 어느 때까지 이렇게 깊고도 깊은 고독 속에 갇혀 헤매야 하는가! 허무하고 싸늘한 자책이 두 남녀의 가슴에 스쳤다. 애춘은 천천히 일그러진 머리와 몸을 가다듬으며 옷을 주워 입었다.
“으흑흑….”
“남편하고는 아직도 별거 중인가?”
“………!”

심정수 역시 좀 숙연해졌다.
“나 역시 마누라를 버렸지. 친구인 목사가 그러더군. 아내나 남편을 버린 자는 자기 자신의 피와 살을 버린 자라고! 그 말이 맞는 것 같소. 겉으로는 내가 고민 없이 세상을 즐기는 것 같이 보이겠지만 나의 피가 마르고 살점이 떨어지는 듯한 고통 속에 살고 있소. 자신의 근본을 버렸으니 그게 바로 형벌인 것 같소. 이제 이 짓도 그만둬야지 하고 결심을 해도 중독이 든 것처럼 여전히…!”
심정수는 조용히 출입문을 열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의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응시하며 애춘은 석고처럼 꼼짝할 수 없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아주 강한 호랑나비가 자신을 삼켜버리고 떠난 것 같았다. 애춘은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서서히 교정에 있는 자신의 자가용에 몸을 실었다.

어느덧 봄비가 부슬부슬 흩날리고 있었다. 밤안개가 어둠을 감싸고 있었다. 서서히 집 쪽으로 핸들을 돌리며 애춘은 채성과 혜란의 정사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그들도 이 같은 허무한 정사를 반복하고 있을까! 그렇지는 않은 듯싶었다. 그들은 계속 다정하며 사랑하고 있는 듯하였다. 채성과의 합일된 정사는 무엇일까. 그와 한 번의 결합이 없었던 비정상적인 삶임에도 불구하고 왜 자신은 아직도 그를 사랑하고 있을까! 그러면서도 미묘한 쾌감을 느꼈다. 그것은 나도 너처럼 방종하며 다른 사내에게 몸을 허락했다는 복수심이었다.
밤안개 속에 운전을 조심스럽게 하며 서서히 이동했다. 거리의 길목 쪽에서 두 연인이 팔짱을 끼고 어디론가 하염없이 걷고 있었다. 혼란스런 애춘은 이상하고 야릇했다. 그 경멸하던 남자가 자신의 호랑나비였다니! 애춘은 심정수만큼은 피하고 싶었었다.

그를 자신과도 너무 닮은 속물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와 몸을 섞었다. 아! 사랑 없이도 인간은 그 행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여자의 몸을 기분 좋게 하는 기술을 섭렵한 고단수였다. 가슴에서는 그를 혐오하고 밀쳐내고 있었으나 자신의 굶주린 육체는 그를 끌어안고 있었다. 수치심이 밀려왔다.
애춘은 자신이 꽃과 나비를 여러 색깔을 혼합해 덧칠하여 탁하게 그렸던 것이 원인이라 생각되었다. 혜란의 여체를 그려가는 동안 자신의 육체에 불이 들어오며 달아오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왜일까! 오랫동안 굶주린 사람이 음식을 보면 덤벼들듯 본능적인 발동인가, 아니면 자신의 뜨거운 몸을 주체할 수 없어 아무한테나 몸을 허락하는 갈보란 말인가! 애춘은 심정수만큼은 정말 피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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