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운

▲ 전 원불교문인협회장, 칼럼니스트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세 가지 운(運)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운은 갑자기 또 우연히 찾아오지 않습니다. 간절히 바라고, 준비하며, 마음속에 관심을 늘 가지고 집중하고 있을 때 찾아오는 것이 운일 것입니다.

 

그 운을 우리는 운명(運命)과 숙명(宿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운명은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일체를 지배한다고 생각되는 초인간적인 힘입니다. 그리고 숙명은 날 때부터 타고난, 정해진 운명을 말하지요. 그러나 운명은 인간의 힘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가난은 노력여하에 따라 벗어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운명은 내가 만들고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 1536~1598)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원흉(元兇)이지요. 그러나 우리나라로 보면 철천지원수 같은 사람이지만, 일본 쪽에서 보면 희대의 영웅입니다. 그는 미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느 날, 그 히데요시가 점쟁이에게 갔습니다.

 

점쟁이가 그의 손금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지요. “당신은 손금이 안 좋아서 출세를 못 하겠소.” “손금이 어디가 안 좋다는 말인가요?” “손금이 이어져야 하는데 당신 손금은 가지가 끊어졌소.” “어디까지 손금이 이어져야 좋은 손금인가요?” 점쟁이는 손금이 이어져야 하는 곳을 알려 주었습니다.

 

히데요시는 이 말을 듣자마자 칼로 자기의 손바닥을 찢어서 손금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이렇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정도면 됩니까? 이 정도면 나도 출세할 수 있겠지요?” “나도 출세할 수 있다! 운명아 비켜라!” 결극 그는 미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마침내 난세(亂世)를 통일한 불세출의 영웅이 된 것입니다.

 

인간의 운(運)에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천운(天運)이요, 둘은 지운(地運), 셋은 인운(人運)입니다. 천운(天運)은 하늘이 내려준 운으로, 나의 부모 형제, 성별(性別)등, 바꿀 수 없는 숙명을 말합니다. 그리고 지운은 타고난 재능을 말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천운과 지운을 잘 타고 났어도 마지막 인 운이 막히면 인간의 삶이 힘들어진다고 하네요.

 

인 운은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인 운을 풍요롭게 가꾸기 위해서는 천운과 지운을 탓하거나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부모를 탓하고 시대를 탓하고 직장을 탓해서 해결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천지와 부모를 탓하고, 시대를 탓하며, 동포(同胞)를 탓하고 법률(法律)을 탓하면 올 운도 돌아섭니다. 왜냐하면 얼굴에 불평불만이 가득한 사람에겐 운도 좋아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인생은 운명이 아니라 선택입니다. 굳이 세상과 발맞춰 갈 필요가 없습니다. 제 보폭대로 제 호흡대로 가는 것입니다. 늦다고 조바심을 내면 안 됩니다. 눈치 보지 말고 욕심 부리지 말고 천천히 가는 것입니다. 사는 일이 욕심 부린다고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형태가 공존합니다. 다양성이 존중될 때 아름다운 균형을 이루고, 내 운도 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인 운으로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아무리 힘들더라도 좋은 인연으로 끝을 맺는 것입니다. 그럼 좋은 인연이란 무얼 말하는 것인가요? 시작이 좋은 인연이 아닌 끝이 좋은 인연을 말합니다. 시작은 나와 상관없이 시작되어도, 인연은 어떻게 마무리 하는가는 나 자신에게 달렸기 때문입니다.

 

그 인연을 지키는 법이 있습니다.

 

첫째, 존중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을 고유의 인격체로서 존중해주어야 마음을 열 수 있는 것입니다. 아주 어린 아이조차도 자신을 존중하는지 아닌지를 100% 직감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성인은 불문가지(不問可知) 아닌가요?

 

둘째,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나의 마음을 전달하기 전에 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원하는 것과 내가 주고자 하는 것을 일치시킬 수 있습니다.

 

셋째, 꾸준한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일회성 관심은 무관심보다 서글픕니다. 잠간 신경을 쓰다가 이내 무심한 것은 상처를 남기기 쉽기 때문입니다.

 

넷째, 그 ‘인연’ 자체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주었거나, 무엇이 되어 주어서가 아닙니다. 그냥 내 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내 인생이 얼마나 풍부해졌는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인연’ 자체에 감사하는 것이지요.

 

다섯째, 배려하는 것입니다.

보는 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좋아할 수 있으며, 좋아하는 만큼 배려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면 선연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여섯째, 바라는 바가 없어야 합니다.

정신 육신 물질과 사랑을 주고서 대가를 바라면 안 됩니다. 조건 없이 주는 것입니다. 무상보시(無相布施)가 최고의 공덕인 것입니다.

 

일곱째, 칭찬과 격려를 하는 것입니다.

좋은 일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힘들고 지쳤을 때, 실패하고 좌절했을 때, 다치고 병들었을 때, 초조해하고 불안해할 때, 격려가 난관을 이기는 유일한 힘인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인연만큼 소중한 것이 없습니다. 교만(驕慢)이 많으면 사람을 잃고, 겉치레가 많으면 진실을 잃는 것입니다. 사람을 잃으면 세상을 버림이요, 진실을 잃으면 나를 버림이나 마찬 가지입니다. 결국 인생의 세 가지 운은 인간관계에 상생 상화(相生相和)하는 선연을 맺어가는 데에 달린 것이 아닐 런지요!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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