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벽하리만큼 평온한 표정과 자세로 주차를 마치고 차에서 나온 스님은 옆에서 흐느끼던 한 제자에게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부을 것을 일렀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성냥을 그어 몸에 불을 질렀다.
[뉴스프리존=김현태]1963년 6월 11일 오전 10시, 베트남 사이공 중심가 도로 한복판에 틱꽝득(釋廣德) 스님이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젊은 승려가 꽝득 스님의 몸에 휘발유를 쏟아붇자 스님은 손수 성냥을 켜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다. 순식간에 화염은 온몸을 뒤덮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스님은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합장한 채 육신을 불태웠다.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젊은 스님과 시민들은 엎드려 기도를 올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 충격적인 장면은 AP통신 사진기자에 의해 해외로 타전되어 서구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수많은 사진 중엔, 그 자체로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해 우리 마음 깊숙이 각인되는 이미지가 있다. 한계를 뛰어넘는 인간의 강인한 의지를 보여주는, 보는 이의 가치관마저 뒤흔드는 베트남 전쟁 당시 찍힌 승려 틱 꽝 득(Thích Qung c)의 소신공양 사진을 들 수 있겠다.

7세 때 출가해 수행과 포교에 힘썼으며. 평생 31개의 사원을 건립·수복한 고승이다. 고령의 나이에 소신공양을 한 것은 응오딘지엠 정권의 독재와 부패, 불교 탄압에 대한 강력한 저항의 표시였다. 미국을 등에 업은 응오딘지엠은 친인척을 요직에 등용하고 잔혹한 폭정을 일삼았다. 특히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국민의 90%가 불교도인 베트남에서 불교를 압살하려 했다. 운명의 그날, 참혹한 항거를 목격한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핼버스탬(David Halberstam)은 도저히 제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날 이후, 이 소리 없는 절규의 광경은 평생토록 그의 마음 속에 남았다. 
▲ 당시 핼버스탬(David Halberstam)은 도저히 제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날 이후, 이 소리 없는 절규의 광경은 평생토록 그의 마음 속에 남았다. 핼버스탬은 그날의 기억을 글로 남겼다."고개를 들어 다시 그 광경을 보려고 했지만, 한 번으로 족했다. 화염이 사람의 몸 속에서 뿜어 올랐다. 승려의 몸은 조금씩 줄어들었고, 머리는 시커멓게 변해갔다. 육체 타는 냄새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신체는 놀라우리만큼 빨리 타들어갔다. 내 뒤론 하나씩 모여든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난 너무나 큰 충격에 사로잡힌 나머지 울 수도, 뭔가를 적을 수도, 물을 수도, 뭔가를 생각할 수도 없었다 (...) 화염이 그를 집어삼키는 동안 승려는 미동 없이, 한 번의 신음 소리도 없이 완벽한 평정 속에 생명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를 지켜보며 고통을 호소하던 시민들과 사뭇 대조적인 모습으로..."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진작가 맬콤 브라우니(Malcolm W. Browne)는 이 역사적인 사건을 카메라에 담았고, 이후 퓰리쳐상을 수상했다. 틱 꽝 득의 소신공양 사진은 전 세계에 공개돼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으며,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항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록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의 데뷔 앨범 재킷에서도 이 사진을 볼 수 있다.

승려의 항거와 희생은 값을 매길 수 없는 고귀한 유산으로 남았다. 소신공양을 마친 그의 시신은 이후 화장터로 옮겨져 한 줌의 재로 변했다. 이때, 화장터의 인부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승려의 심장이 불타지 않고 그대로 남은 것이다! 오늘날, 타지 않은 승려의 심장은 강인한 저항 정신과 자비의 상징으로 남아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틱 꽝 득의 희생은 이후 강경한 정부에 압박을 넣는 계기가 되었고, 마침내 탄압을 풀고 불교 대표들을 불러 협상의 시간을 갖기에 이르렀다. 꺾을 수 없는 신념과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승려 틱 꽝 득. 수많은 피해자를 낸 베트난 전쟁의 비극 속에서 그의 아름다운 저항정신은 찬란하게 빛을 발했다. 틱이 타고 왔던 하늘색 차와 잔해를 후에(Hué) 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꽝득 스님의 열반 후 36명의 승려가 소신공양을 뒤따르는 등 극한 투쟁이 전개됐다. 결국 그해 말 미국의 묵인 아래 쿠데타가 발생해 지엠 정권은 무너졌고, 지엠도 암살됐다. 지엠의 동생이자 비밀경찰 총수였던 응오딘누의 부인 마남 누는 스님의 소신공양을 "중의 바비큐 파티"라 조롱해 세계인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꽝득 스님의 유체는 화장되었으나 심장만은 타지 않은 채 지금까지 남아 있는것 처럼, 불의와 부조리에 맞서는 현 세대에 있어, 이보다 더 뜨겁게 와 닿는 메시지는 없을 것이다.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는 수많은 의지가 모여 힘을 낼 때 비로소 흐름을 바꿀 수 있다.

kimht10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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