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연극 '체액'은 불감하지 않고서 살아남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를 다룬 작품이다. 공연 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연극으로 지난 10일 ~19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됐다. 비극이 쏟아지지만 비극을 느끼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유의미한 질문을 던졌다.
언젠가 자신이 메말라가다가 먼지처럼 부서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달리는 그는 매일 밤 다한증 남자와 역할극을 하며 이런저런 역할 뒤에 숨어 자신의 ‘불감’을 잊고자 한다. 그는 매일 밤 다한증 남자와 역할극을 하며 이런저런 역할 뒤에 숨어 자신의 ‘불감’을 잊고자 한다. 불감증 여자는 어떻게 해야 다시 한 번 스스로를 적실 수 있을까
한국문화예술위의 대표적인 신진 예술가 지원사업인 ‘차세대열전 2017!’을 통해 발굴된 신해연 작가의 작품 체액은 “뉴스를 틀면 매일 이 시대의 비극들이 쏟아진다. 그러나 몇 줄의 기사로는 도무지 타인들의 비극이 와 닿지 않는다”는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허수민 연출은 이렇게 말한다. "역할극 섹스, 스너프 필름, 폭력의 행위 등의 설정을 자극적으로 장면화하기 보다는 중화시켜 관객들이 장면을 보며 생각을 하도록 유도한다. 그럼으로써 불감증 여자가 선택하고 있는 것들이 지금을 살고 있는 인간들이 선택하고 있는 것과 별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불감증 여자를 뉴스에 나올 법한 특별한 사람이 아닌 극을 보고 있는 관객들과 비슷한 한 명의 보통 사람이라 말한다"
'체액'을 공연한 극단 즉각반응은 연극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예술가, 예술장르, 매체와 유기적인 만남으로 연극의 경계의 확장을 추구하며 함께 숨 쉬고 꿈꿀 수 있는 무대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작품 속에서 어두컴컴한 방 안과 무정한 공간인 마트 안에 자리한 인물들은 무감한 표정과 행위예술같은 몸동작을 보이기에 인물들 간의 관계를 쉽게 한 눈에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현실과 환상 속의 나, 현재와 과거 속의 나의 관계에 대해, '나'와 소통하는 주변인들과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듯한 관계에 대해 공연이 끝나갈 쯤에야 겨우 알아차릴 수 있다. 때문에 극 속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허나 현실에서도 속마음을 표정으로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고 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평생에 걸쳐 이어가기에 체액 속 이야기가 현실과 외따로 돌아가는 이야기라 할 수는 없다.
물질만능의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는 인간의 생활을 풍요롭게 영위하기 위한 물질과 관계들이 이어진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사회 속 시스템에 완벽하게 적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전혀 적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저마다의 상처와 슬픔과 고통을 안고 지내며 저마다의 방법으로 스스로를 방어하고 있을 뿐이다. 체액 속 여자는 순수한 기쁨이라 할 수 있는 ‘오르가즘’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어 할 뿐이다.
눈물을 흘리고 땀을 흘리며 끊임없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자극적이고 한 눈에 들어오는 타이틀로 여러 매체에서 단순 반복되는 뉴스들 속에서 살고 있는. 그런 우리와 여자는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작품 '체액'은 너무나 많은 설명과 변명을 요구받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자신의 감각을 잃지 말고 부서지면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따스함 속에서 살아가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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