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 장편소설 〖모델하우스〗제60회

방문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집착하는 스토커 기질이 또 발동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애춘은 냉철하게 이성적이 되려고 했다.

‘아니다, 이제는 집착이 아니라 나의 모델이야!’

그에게만큼은 자신의 자존심이나 개성이 주장되지 않았다. 오직 배우고 싶었다. 진심에서 우러나왔기 때문이다. 민지선을 만나고부터 언제나 어둠 속에 모호하게 갇혀 지내며 텅 비어진 내부의 집에 뭔가 보람되고 값진 것들로 채워지고 밝아지는 듯했다. 민지선은 이제 차림을 다 마치고 식탁에 애춘과 마주 앉았다.

“다 준비됐어요. 어서 드셔요. 차린 것은 별로 없지만….”

애춘은 추어탕의 국물을 한 수저 입에 떠 넣었다. 구수하니 감칠맛이 돌고 맛이 좋았다.
“역시 한식은 속을 편안하게 해주고 소화도 잘되어서 최고라니까!”

애춘은 자신이 아침에 빵에다 버터를 바르고 우유 한 잔으로 식사를 하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쉽게 대충 살아온 자신의 삶의 자취가 안타깝게 여겨졌다. 반찬은 깍두기와 콩조림, 두부조림, 풋고추조림, 호박전과 현미잡곡밥이었다. 추어탕은 무시래기를 넣어서인지 구수하며 맛이 있었다. 깍두기도 적당히 잘 익었고 무가 와삭거리며 맛이 있었다. 두부전도 기름이 적어 좋았고 콩조림도 너무 달지 않고 적당히 부드러워 맛이 있었다. 음식은 모두 맛깔스럽고 깊은 맛이 우러나왔다.

“정말 맛있어요! 엄마가 차려준 밥상 같아요!”

음식 하나는 끝내주게 수준급이었던 친정어머니 이종례는 정말 요리사였다. 돌연사로 이종례가 사망한 후, 애춘의 식생활은 서양식으로 변했다. 안타깝게도 이종례는 그 음식솜씨를 애춘에게 전수하지 못했다. 딸의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키우리라는 왜곡된 사고방식에서 빚어진 것이었다.

“난 모든 걸 가정부 화순 댁에게 일임하고 한 번도 손수 음식을 준비해 본 적이 없어요. 있다면 아침에 커피, 빵조각에 버터 발라 먹는 것 정도죠!”

“이제 조금씩 해보세요. 요리를 하는 기쁨도 아주 큽니다. 이것저것 재료를 가지고 뚝딱거리면 어느새 먹음직한 음식이 탄생되는 게 참 신기하고도 뿌듯하거든요. 거기다가 손수 만든 음식을 가족들이 맛있게 잘 먹으면 얼마나 행복하다고요!”
“식구? 가족? 나완 상관없는 단어가 되었네요.”

단란하게 남편과 식사 한 번 해보지 못한 처량한 여자. 너무 외로워 저녁을 남선생을 불러서 흥청망청 돈을 썼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애춘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처량하게 일그러졌다.
“매끼식사를 준비하려면 꽤 시간을 소요하게 될 텐데요!”

“그것도 요령이 필요하죠. 그리고 반찬 가지 수를 많게 하지 않아요. 국이나 탕 종류를 영양가 있게 끓이고 반찬은 입에 맞는 걸로 두세 가지 간소하게 하고 있어요. 저희 송 박사님은 반찬은 세 가지 이상 내놓지 못하게 하세요.”

“역시 민 선생님은 지혜롭고 현명하세요. 아무튼 민 선생은 꽉 찬 사람이에요.”
“꽉 찬 사람?”

“텅 빈 사람, 여기 나 장애춘이죠.”
“아이, 참 농담도 잘하세요!”
“호호호….”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웃었다. 오랫동안 웃음을 잃은 애춘의 얼굴에 웃음이 찾아온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그들은 거실로 이동했다. 그런데 소파 위나 테이블 위에는 언제나 두 세권의 책이 놓여져 있었다. 애춘은 지선이 무슨 책을 읽는가 가까이 가서 책의 제목들을 훑어보았다. 그 중에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니나’의 소설책이 중간쯤 읽었는지 접혀져 있었다. 애춘은 청춘시절에 영화로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채성이 물었다.

“재미있었나?”
“끝 장면이 너무 슬퍼요. 왜 안나가 죽었을까, 미련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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