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죽어야 잘 태어난다.

▲ 김덕권 전 원불교문인협회장,칼럼니스트

평소 자신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맞닥뜨리게 된다면 너무 당황해서, 두려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 정신이 다 나갈 것입니다. 만약 죽음에 대한 준비가 없다면 자신을 병원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되면 생명을 연장하는 온갖 의료장치를 몸에 달고 통증과 싸우다가, 약물에 취해서 가족과 제대로 된 작별인사도 못 나눈 채 세상을 떠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죽는 것이 잘 죽는 것인가요? 저는 병원이 아니라 평소 살던 내 집, 내 침대에서 고요히 눈을 감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야말로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평온한 죽음을 맞이할 법력(法力)이 과연 제게 있을까요?

평온한 죽음이란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평온하게 숨을 거두는 것을 말합니다. 육체적 · 정신적 고통만 따르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그야말로 자신의 마지막 삶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진정한 최후가 아닐 런지요?

그럼 어떤 생사관(生死觀)을 가지면 좋을까요?

「사람의 생사는 비하건대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것과도 같고, 잠이 들었다 깼다하는 것과도 같나니, 그 조만(早晩)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치는 같은 바로서 생사가 원래 둘이 아니요, 생멸(生滅)이 원래 없는지라, 깨친 사람은 이를 변화(變化)로 알고 깨치지 못한 사람은 이를 생사라 하나니라.」하였습니다.

어제가 별 날이 아니고 오늘이 별 날이 아닙니다. 어제까지를 일러 거년(去年)이라고 하고 오늘부터를 금년이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죽어도 그 영혼(靈魂)이요 살아도 그 영혼인 것입니다. 그런데 죽으면 저승이라 하고 살았을 때는 이승이라 합니다. 지(地) ‧ 수(水) ‧ 화 ‧ (火) ‧ 풍(風) 사대(四大)로 된 우리의 육체는 비록 살았다 죽었다 하여 이 세상 저 세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영원불멸하여 길이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친 사람들은 인생의 생 ‧ 노 ‧ 병 ‧ 사가 마치 춘 ‧ 하 ‧ 추 ‧ 동 네 계절로 바뀌는 것과 같은 이치를 압니다. 그래서 저 생과 이생이 꼭 거년과 금년 같음을 아는 것이 원불교인의 생사관이지요. 육신의 생사는 불보살들이나 중생이나 같습니다.

그러나 불보살들은 그 거래에 매(昧)하지 아니하고 자유로 합니다. 그리고 범부중생(凡夫衆生)은 거래에 매하고 부자유한 것이 불보살과 다른 것입니다. 생사대사라 했습니다. 그 생사를 자유로 할 것인가 부자유로 거래할 것인가는 오로지 우리 자신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생사공부를 하지 않으면 죽음에 다다라 사(死)의 공포를 이겨내지 못할 것입니다.

천만다행하게도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이 지난 8월 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통과 되어 이제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번 법안에는 말기 암 환자에게만 적용되는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에이즈,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간질환 등 다른 말기질환에도 확대 적용 된다고 합니다.

‘호스피스 완화치료’란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 대상 환자 즉, 회생 가능성이 없고 급속도로 임종단계에 접어든 임종 기 환자에게만 적용 가능한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연명치료를 완화할 수 있을까요?

첫째, 환자가 의식이 있을 때입니다.

환자 자신이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명확한 의사표시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담당의사와 함께 ‘연명의료계획서’나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면 됩니다.

둘째, 환자의 의식이 없을 때입니다.

‘사전의료의향서’에서 연명치료 중단 의사를 담당의사 2명이 확인하거나, 환자 가족 2명 이상이 환자가 평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진술했을 때이지요.

셋째, 연명의료에 대해 어떤 의사를 가졌는지 추정할 수 없을 때입니다.

미성년자의 경우, 친권자가 미성년환자를 대리해서 중단여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환자 가족 전원의 합의하고 의료인 2인이 동의하면 중단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이와 같이 점점 사람들이 ‘오래’사는 것보다 ‘잘’ 죽는 것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정말로 내가 임종 기에 다다랐을 때 연명치료중단을 할 것인지, 내 가족이 연명치료중단의사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미리미리 고민할 때가 아닌지요? .

보통 사람들은 현세에 사는 것만 큰 일로 알지마는, 지각이 열린 사람들은 죽는 일도 크게 압니다. 왜냐하면 잘 죽는 사람이라야 잘 나서 잘 살 수 있으며, 잘 나서 잘 사는 사람이라야 잘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은 사의 근본이요, 사는 생의 근본입니다. 그래서 생과 사는 둘이 아닌 하나인 것이지요.

생은 자연의 이법(理法)대로 지은대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태어났으면 잘 살아야 하고, 잘 죽어야 잘 낳게 됩니다. 죽음에서 자유로울 방법은 해탈(解脫)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애착 탐착 원착을 놓고 청정한 마음과 큰 서원으로 중생계를 벗어나 불보살의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해탈한 사람에게 생사는 사시순환, 주야변천, 눈 뜨고 감음, 숨을 들이쉬고 내쉼과 같은 것입니다. 돌고 돈다는 것은 가는 것이 곧 오는 것으로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 돌고 돈다는 것은 주는 것이 곧 받는 것이므로 ‘인과보응(因果報應)’인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깨치는 것이 수행입니다. 이 수행을 통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평온한 죽음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우리 죽음에 다다라 혼비백산(魂飛魄散)하면 잘 태어 날 수 없습니다. 잘 죽어야 잘 태어납니다. 내생에 다시 태어나 이생과 같이 고통과 고난 속에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 지금부터라도 생사공부를 통해 내생을 잘 준비하면 어떨 런지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8월 23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관련기사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