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至誠)

▲ 김덕권 전 원불교문인협회장,칼럼니스트

정성(精誠)이란 무엇일까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 되고 성실한 마음이 정성입니다. 정성은 내가 하늘에 드릴 수 있는 최선이자 최고 것입니다. 그리고 정성은 내가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서 구걸하면서 살아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주체적 존재로서의 가치를 다시 회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정성이 우리의 영혼에 배이면 지울래야 지울 수가 없고, 누가 훔쳐가려 해도 훔쳐 갈수 없습니다. 마치 꽃에서 향기가 나는 것처럼 정성스러운 사람에게서는 향기가 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바람이 일 때마다 자연스럽게 좋은 향기가 퍼져 자신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정성인 것이지요.

무릇 뜻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지만 정성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하늘의 뜻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것이 사람의 정성스러움입니다. 정성스러움이 몸에 배이면 말 한마디에도,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마주잡은 손길 에서도 자연스럽게 정성이 배어나올 것입니다.

《중용(中庸)》제20장에「정성이란 하늘의 도요, 정성되게 하는 것은 사람의 도(誠者天之道也, 誠之者人之道也」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 6장에서는「정성이라는 것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요, 도는 스스로가 가게 되는 것이다.(誠者自成也 而道自道也)」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정성됨이란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루어진 것이며, 도는 누가 가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발휘된다는 뜻이지요. 정성됨은 이와 같이 우주 만물의 근본이므로 이것이 없다면 만물은 이미 존재의 의미를 잃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사물의 존재는 정성됨으로 말미암아 그 실체를 알게 되고, 또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정성됨에 의하여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덕을 닦은 군자들은 정성됨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지요.

이처럼 정성됨은 자기 자신을 이루게 할 뿐만 아니라 만물을 이루게 하는 묘약(妙藥)입니다. 그래서《중용》제 24장 <至誠如神章>에 공자님께서도 정성이 신과 같다(至誠如神) 하신 것입니다.「至誠之道, 可以前知. 國家將興, 必有禎祥; 國家將亡, 必有妖孽; 見乎蓍龜 動乎四體. 禍福將至善, 必先知之, 不善, 必先知之. 故至誠如神.」

「지성의 도를 구현한 사람은 세상일을 그것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알 수가 있다. 국가가 장차 흥하려고 하면 반드시 상서로운 조짐이 나타나며, 국가가 장차 망하려고 하면 반드시 요망스러운 재앙의 싹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런 길흉의 조짐은 산대점이나 거북점에도 드러나고, 관여된 사람들의 사지 동작에도 드러나게 마련이다. 화(禍)나 복(福)이 장차 이르려고 할 때, 지성의 도를 구현한 자는 그 원인이 되는 좋은 것도 반드시 먼저 알며, 좋지 않은 것도 반드시 먼저 알아 계신(戒愼)한다. 그러므로 지성은 신(神)과 같다고 할 것이다.」

어떻습니까? 저는 그래서 이 ‘지성여신’을 <지성여불(至誠如佛)>로 고쳐 부릅니다. 옛날에 한 무사가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그 무사는 검술을 익히기 위해 열심히 수련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무사가 하는 것이라곤 고작 목검으로 사람 배꼽 높이만 한 바위를 내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시작해서 깜깜한 밤이 될 때까지 쉴 새 없이 내리치기 한 가지 동작만 반복했습니다.

부러진 검의 높이만큼, 굳은살의 두께만큼, 무사의 마음은 더욱더 단단하고 강인해져 갔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른 어느 날, 힘껏 목검을 내리치는 순간 그 바위는 양쪽으로 쫙 갈라졌습니다. 그 무사의 항심(恒心)은 바위도 갈라지게 할 만큼 집중된 힘이었습니다. 그 힘은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이 되어 훗날 그를 최고의 무사가 되게 했습니다.

이렇듯 단단한 바위도 갈라지게 할 만큼의 집중력과 일관된 마음이 바로 <지성여불>의 정신입니다. 그깟 바위뿐이겠습니까? 흔히 우스갯소리로 “절은 절로 되고, 원불교는 원하는 대로 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원하면 원하는 대로 될 일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요? 그러나 그것이 지성의 대가(代價)라는 뜻일 것입니다.

‘지성감천(至誠感天), 충신의 혈죽(忠臣血竹), 효자의 죽순(孝子竹筍)’ 등의 옛 이야기가 다 이런 진리의 감응(感應)을 나타낸 결과일 것입니다. 성공의 비결이 참 단순합니다. 원하면 되는 것이지요. 세상에 이렇게 간단한 비법(秘法)이 왜 그렇게 어려워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먼저 서원(誓願)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서원을 목표로 지극한 정성을 들여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서원을 이루기 위한 성스러운 작업을 시작하는 데에는 세 가지 기본 실행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인생은 어려운 것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인생은 항상 어려운 것이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누구도 이 명제(命題)에서 예외는 없습니다. 다행인 것은 우리가 가장 기본이 되는 이 진실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묘하게도 삶이 한결 쉬워진다는 점입니다.

둘째, 우리의 미래모습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과거에 우리가 선택한 결과입니다. 우리는 모두 행동에 대한 선택의 자유를 갖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과거에 우리가 살아온 모든 결정의 총합(總合)입니다. 우리의 미래가 현재와 다르기를 바란다면 지금부터라도 더 나은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셋째, <지성여불>의 정성으로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수행을 가로막는 장애는 거의 없습니다. 장애가 있다 해도 대부분 우리의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는 것입니다. 서원을 향한 지극한 정성은 바로 우리의 마음에 달린 것입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 아닌가요? 원하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서원을 이루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지성’입니다. ‘지성’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 같은 것입니다. 지성이 바로 수행입니다. 수행은 지성입니다. 지성이란 ‘온갖 성의를 다하려는 참되고 거짓 없는 마음’입니다. 우리 서원(誓願)을 크게 세우고 <지극정성> <지성여불>의 정신으로 달려가면 이루지 못할 일은 없지 않을 까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8월 24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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