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 김덕권 칼럼] 자비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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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자비존인
  • 김덕권
  • 승인 2017.08.2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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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존인

▲ 김덕권 전 원불교문인협회장,칼럼니스트

자비존인(自卑尊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예기(禮記)》<곡례 상(曲禮 上)>에 나오는 이 말은 예(禮)라는 것은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라’는 뜻입니다. 원문을 한 번 살펴봅니다.

「인유례즉안 무례즉위(人有禮則安 無禮則危),

사람이 예가 있으면 편안하고 예가 없으면 위태하니

고왈 례자불가불학야(故曰 禮者不可不學也)

그런 까닭에 이르기를 예라는 것은 배우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며

부례자 자비이존인(夫禮者 自卑而尊人)

예라는 것은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것이며

수부판자 필유존야 이황부귀호(雖負販者 必有尊也 而況富貴乎)

비록 노동자나 상인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존경함이 있어야 하는데

하물며 부귀한 사람에게 있어서이겠는가」

예절의 기본은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뀐다 해도 예절의 기본 정신은 변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나의 대우가 조금만 미치지 못한다 생각하면 바로 발끈하며 난리를 칩니다. 상대의 대한배려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고 오로지 나를 중심으로 상대를 대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서로 마음이 상하게 되고 서로 거친 말이 오고가며 나중엔 주먹다짐까지 오고 가는 것입니다.

예의 기본정신은 마음과 행동을 통해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비존인인 것이지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입니다. 이 속담에서 ‘벼’는 속이 꽉 찬 사람을 뜻합니다. ‘벼가 익는다.’는 것은 사람의 인격이나 지식의 정도가 높아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자비존인’은 특히 부귀한 사람의 예의를 더 강조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핑거볼(finger bowl) 사례입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만찬에 중국 관리들을 초대했습니다. 그런데 당시로서는 서양식 식사를 해본 적 없는 중국인들은 핑거볼에 담긴 손 씻는 물이 나오자 차인 줄 알고 마셔 버렸지요.

그러자 여왕은 그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손 씻는 물에 손을 씻지 않고 같이 마셨습니다. 핑거볼에 손을 씻는 예의 형식도 중요하지만, 이에 얽매이지 않고 상대를 배려해 핑거볼의 물을 같이 마시는 마음이 바로 진정한 예이지요. 상대가 누구더라도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맹자》는 “공경하는 마음이 예이다”라고 하고, 주자(朱子) 역시 “예는 공경함과 겸손함을 본질로 한다.”고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욕심이 가득하면 차가운 연못에 물결이 끓는 듯하여 자연에 묻혀 조용하게 살아도 고요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마음이 비어 있는 사람은 무더위 속에서도 서늘한 기운이 생겨 더위를 모릅니다. 또한 시장 한복판에 살아도 시끄러움을 모르는 법이지요.

「천하만물 생어유(天下萬物 生於有), 천하만물 유생어무(天下萬物 有生於無)」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있음에서 생겨납니다. 하지만 온 세상의 모든 만물은 없음에서도 생겨나지요. 결국은 없음이 있음이요 있음이 없음이라는 말 아닌가요?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사람다운 삶을 살려면 나를 깨우치고 도심을 일깨워 나를 스스로 낮추고 살아야 합니다. 즉, 수행자는 수행의 본분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수행자의 길이란 도를 깨친 높은 스승님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티끌세상(塵世)을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하는 수행의 본분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그렇게 수행자의 본분을 지키려면 먼저 자신의 원래 본 모습을 깨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으로는 철저히 나를 낮추고, 밖으로는 혼신의 힘을 다해 남을 도와주는 것이 수행자의 본분입니다. 그렇다고 수행은 어떠한 고난을 필히 거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헛된 욕심과 잡생각을 모두 비우고, 조용히 우주만상을 관조(觀照)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은 모두가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도(道)에 들어가는 길이며 또한 이때에 비로소 내가 낮아지고 남을 알게 되는 혜안(慧眼)이 트입니다. 이렇게 삶을 삶답게 하고 일상의 허망한 생각과 무거운 짐에서 해방되는 참 자유를 누리는 방법은 나를 낮추고 숙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무지나 편견도 사라집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사물의 영원한 실체를 꿰뚫어 보게는 것입니다.

또한 자연히 옹고집이나 독단(獨斷)은 눈 녹듯 사라집니다. 쓸데없이 남과 다투거나 조그마한 일에도 안달 복 달 할 일이 없어집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낮아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도덕경(道德經)》16장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영원한 것을 알면 너그러워지고, 너그러워지면 공평해지고, 공평해지면 왕같이 되고, 왕같이 되면 하늘같이 되고, 하늘같이 되면 ‘도’같이 되고, ‘도’같이 되면 영원히 사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루를 살다 가더라도 사람답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우리는 끊임없이 성찰하고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그러는 중에 나도 모르게 진정한 나의 삶을 발견하는 것이고 도같이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닐까요? 나를 낮추며 겸손하게 되면 자연히 허물이 벗어집니다. 그리고 지혜가 가득하여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또한 분노를 삭일 줄 알아 정신이 맑아지며 삶에 여유로움이 생겨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관계에 있어서 저 사람의 환경이 좋을 때에는 아첨하고, 낮을 때에는 모멸(侮蔑)하면 소인의 일입니다. 오히려 저 사람의 환경이 낮을 때에 더욱 정의(情誼)를 잃지 않는 것이 군자(君子)의 예입니다. 이해를 따라 의리를 망각하거나 사람이 보는 곳에서 예를 행하고, 보지 않는 곳에서는 예의를 행하지 않는 사람은 예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 이해(利害)와 은원(恩怨)을 막론하고 의리와 예의를 잃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상대를 높이고 나를 낮추는 것이 ‘자비존인’입니다.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것입니다.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말 한마디로 남을 흥하게도 하고 나도 흥해가는 것이 아닌지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8월 2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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