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 김덕권 칼럼] 발분망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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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발분망식
  • 김덕권
  • 승인 2017.08.3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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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덕권 전 원불교문인협회장,칼럼니스트

발분망식

발분망식(發憤忘食)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해 내려고 끼니까지 잊을 정도로 열중하여 노력함이라는 뜻이지요.《논어(論語)》<술이편(述而篇)>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초(楚)나라 섭현(葉縣)의 심제량(沈諸梁)이 자로(子路)에게 공자가 어떤 인물인가를 물었다. 자로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 사실을 들은 공자가 자로에게 말했다. “너는 어찌 ‘그 사람됨이 어떤 일에 열중하면 끼니를 챙겨 밥을 먹는 것조차 잊고, 이를 즐거워하여 근심을 잊어버려 늙어 가는 것도 모른다.’고 말하지 않았느냐.”(葉公問孔子於子路. 子路不對. 子曰, 汝奚不曰其爲人也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

《사기(史記)》<공자세가(孔子世家)>에서도 사마천(司馬遷)이 공자를 평가한 것이 나옵니다. 「도를 배우는 데 싫증 내지 않고, 사람을 깨우쳐 주는 일을 싫어하지 않으며, 어떤 일에 열중할 때는 끼니를 챙겨 밥을 먹는 것조차 잊는다.(學道不倦, 誨人不厭, 發憤忘食.)」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공자는 자신의 공부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성실하게 열심히 일한다.’는 것 또한 공자의 발분망식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부지런하고 일에 대한 자세가 항상 한결같으며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여 몰입하는 모습이 발분망식 아닐까요? 만일 인간이 일생을 통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에서 충족감을 얻을 수 없다면 결국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 것입니다.

성실하게 열심히 일에 매진하여 목표를 달성할 때야말로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최고의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이지요. 일을 이루려고 끼니조차 잊고 분발(奮發) 노력(努力)한다는 발분망식을 보면, 수행이든 일이든 어느 한 곳에 집중하여 성실히 노력한다면 목표를 달성해내는 진정한 기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공자는《논어》전편을 통해 학문하는 구도자의 모습을 다각적인 관점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자는 학습자로서 솔선수범하는 가운데 스스로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학습의 기쁨을 자주 언급해 왔지요. 이 같은 학문에 대한 공자의 태도를 종합해 볼 때 공자야말로 학습하고 실천하는 것이 취미이자 특기였다고 간주해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요?

이와 같이 공자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헌신이 진정한 구도자의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이런 태도는 선택과 집중에서 생기는 놀라운 결단력과 집중력의 산물일 것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면 발분망식(發憤忘食)하고 낙이망우(樂以忘憂)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공자는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먹는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집중한다면 세상에 이루지 못할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기쁨으로서 근심을 잊어버리는 방법도 참으로 차원이 높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은 문제에 집중하면 문제에 빠져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대신에 근심과 걱정도 오히려 즐거움을 통해 잊어버릴 수 있다는 공자의 지혜와 슬기를 닮을 수는 없을까요?

7년 전 저는「이 메마르고 각박한 세상을 맑고 밝고 훈훈한 세상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하고 고심한 끝에 카페 [덕화만발(德華滿發)]을 만들었습니다. 마치 돈키호테 식의 만용(蠻勇)이었지요!주위의 많은 분들이 노골적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덕산 바보 아니야?’ 하고 비웃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조금 모자라는 사람 같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조금은 바보처럼 손해보고 살리라. 그리고 정신 육신 물질 3방면으로 무조건 베풀리라. 또한 세상을 위하여 이 한 몸 바쳐 맨발로 뛰리라.’ 하고 작정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7 년간을 한 결 같이 달려 왔습니다. 물론 제가 소망하는 그런 단계까지는 아직 아니더라도 이제 어느 정도 희망이 보일 정도로 우리는 발전해 왔습니다.

저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고사(古事)를 믿습니다. 우공이산이라는 말은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뜻’입니다. 어떤 큰일이라도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비유이지요. 춘추시대의 사상가《열자(列子)》〈탕문편(湯問篇)〉에 다음과 같은 우화가 실려 있습니다.

「먼 옛날 태행산(太行山)과 왕옥산(王玉山) 사이의 좁은 땅에 우공(愚公)이라는 90세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방 700 리에 높이가 만 길이나 되는 두 큰 산 이 집 앞뒤를 가로막고 있어 왕래에 장애가 되었지요. 그래서 우공은 어느 날 가족을 모아 놓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나는 너희들과 같이 저 두 산을 깎아 없애고, 예주(豫州)와 한수(漢水) 남쪽까지 곧장 길을 내고 싶은데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모두 찬성했으나 그의 아내만은 무리라며 반대했지요. “아니, 늙은 당신의 힘으로 어떻게 저 큰 산을 깎아 없앤단 말예요? 또 파낸 흙은 어디다 버리고?” “발해(渤海)에 갖다 버릴 거요.”

이튿날 아침부터 우공은 세 아들과 손자들을 데리고 돌을 깨고 흙을 파서 삼태기로 발해까지 갖다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 갔다 돌아오는데 꼬박 1년이 걸렸습니다. 어느 날 지수라는 사람이 ‘죽을 날이 멀지 않은 노인이 정말 망녕’이라며 비웃자 우공은 태연히 말합니다.

“내가 죽으면 아들이 하고, 아들은 또 손자를 낳고 손자는 또 아들을…‥. 이렇게 자자손손(子子孫孫) 계속하면 언젠가는 저 두 산이 평평해질 날이 오겠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란 것은 두 산을 지키는 사신(蛇神)이었습니다. 산이 없어지면 큰일이라고 생각한 사신은 옥황 상제(玉皇上帝)에게 호소했지요.

그러자 우공의 끈기에 감동한 옥황상제는 역신(力神) 과아의 두 아들에게 명하여 각각 두 산을 업어 태행산은 삭동(朔東) 땅에, 왕옥산은 옹남(雍南) 땅에 옮겨 놓게 했습니다. 그래서 두 산이 있었던 기주(冀州)와 한수(漢水) 남쪽에는 현재 작은 언덕조차 없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공자는 73세까지 살았습니다. 우공은 90세의 노인입니다. 저는 이제 공자보다도 오래 살았습니다. 기력이 쇠진해 갑니다. 아무래도 다리가 아파 전 세계를 맨발로 뛸 수 없습니다. 이제 조금은 바보같이, 무조건 베풀며, 맨발로 뛰는 것은 아무래도 전 세계에 산재해 계시는 우리 덕화만발 가족에게 넘겨야 할 날이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맑고 밝고 훈훈한 낙원을 만들기 위해 발분망식의 기쁨을 저와 함께 누려보는 것은 어떨 런지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8월 31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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