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아파트에도…결국엔 음성판정 안도

집콕, 방콕이란 신조어가 생겼다. 코로나 19로 모든 일상이 올 스톱이다. 이사 날짜가 갭이 생긴 둘째가 집에 와 있어서 든든하다. 마침 재택근무를 하게 되어 핑계 김에 맛있는 거나 실컷 해 먹자고 의기투합한다.

그동안 못 봤던 영화 기생충, 변호사를 보고 삼 일째 조커를 섭렵하던 날, 갑자기 관리실 방송이 급박하다. “우리 아파트 000동 00호 라인에 코로나 19 양성 환자가 나와서 엘리베이터와 계단 전체를 방역하여 미끄러우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주민께서는 모두 외출을 삼가시고, 부득이한 사정으로 외출 시에는 필히 마스크를 끼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아니, 그 000동 00호 라인이 내 라인이 아닌가. 살다 살다 이런 재난이 내 앞에 닥칠 줄을 어떻게 알았을까. 낭패감에 기가 막히고 맥이 빠진다. 그 환자 댁은 내 집 스무 층이나 위에 있다. 그 댁 하수가 내 집을 통해 내려간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선 자리가 언틀먼틀(바닥이 고르지 못하고 울퉁불퉁한 모양)하여 몸이 덜덜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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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초와 락스를 각 한 박스씩 주문해서 물 내려가는 곳마다 뿌리고 은박지로 막았다. 공기로 전염되지는 않는다지만, 환기도 조심스러워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노심초사하게 된다. 그날은 인터넷 주문한 명란을 일 층 우편함 앞에 놓고 간다는 택배 문자가 왔다.

들어오기 겁나는 고충을 이해한다. 나도 명란을 포기하고 내려가지 않았다. 이튿날 다른 택배와 함께 집 앞에 옮겨놓은 걸 보니, 택배 아저씨의 불편했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참 고맙고 성실한 분이다.

이튿날 전수 조사한 결과 그 환자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던 20층 여자가 양성으로 나왔다. 우리는 당황했다. 죽음의 공포가 어둑서니(어두운 밤에 아무것도 없는데, 있는 것처럼 잘못 보이는 것)처럼 주변에 어슬렁거린다.

천륜(天倫)이 무엇인지 큰애도 뉴스 보고 놀라서 “엄마 모시고 제주도로 피신가는 게 어떠냐?” 라고 형제끼리 상의한다. 며늘아기는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며 육개장과 갈비탕을 배송시키니 완전 전시 체제(戰時 體制)나 다름없다.

공항 가는 택시 안에서 전염될 수도 있고 기내 옆자리에 누가 앉을지도 모르니 안 가겠다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아이들은 그냥 여기서 당하는 것보다 일단 소나기나 피하자고 우긴다. 사흘간이나 설왕설래하다 결국 설득당해 짐을 꾸리고 오전 열 시쯤 나가려고 하는데, 음압병실에 있는 그 환자 둘 다 계속 음성으로 나와서 격리 해제되었다는 반가운 뉴스가 나왔다. 구청과 관리실에 다시 확인하고 짐을 도로 풀었다. 내 생애 가장 급박했던 일주일이다.

● 인터넷 쇼핑에 때아닌 중독

두 달이나 집에 갇혀 있으니 매일 인터넷 쇼핑만 한다. 인터넷 쇼핑이 재미있지만, 택배 상자 여는 재미도 쏠쏠하다. 식탁 위에 박스가 쌓이면 기분이 좋아지니 나름대로 위로가 된다. 무슨 거창한 판도라 상자도 아닌데 왜 이렇게 집착하는지 모르겠지만, 상자 열기 직전의 그 설렘은 소개팅 직전의 두근거림과 일맥상통한다.

친구가 홈쇼핑에서 옷은 사지 말란다. 외출했다가 같은 옷 입은 이가 있어서 재빨리 귀가했다는 해프닝을 전한다. 모두 집에만 있으니 홈쇼핑을 많이 하게 되겠지. 생산 소비 투자의 삼중 감소, 주가 곤두박질, 매출 반 토막 등 슬픈 해시태그 난립 중에도 성황리에 영업을 이어가는 업체도 있으니 양면성은 어디나 존재한다.

매일 행주를 삶을 수 없기에 일회용 행주와 수세미도 샀다. 제주 당근과 양배추, 남해 시금치, 강원도 감자 등 모두 택배로 받는다. 당귀 잎을 주문해서 장아찌도 담그고, 노르웨이 고등어도 주문해서 냉동실을 채운다.

오늘도 참치액과 굴 소스를 주문하고 도라지청과 사과즙 상자를 뜯으니, 차츰 인터넷 쇼핑에 중독되어가는 중년의 주부가 설핏 보인다.

● 공원 산책이 ‘유일한 운동 수단’

요가장과 수영장이 휴관이니, 공원 산책이 유일한 운동 수단이다. 처음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으나, 갈수록 산책하는 이가 많아져서 조심스럽다. 더구나 남자 중학생들이 삼삼오오 짝다리 짚고 서 있는 것이 거슬린다.

검지 중지에 담배를 끼워 팔을 둔각으로 벌리고 담배 연기를 훅 내뿜는 모습은 가관이다. 아래위로 톺아봐도 너무 어리다. 젊은 나이에 그 모습을 봤으면 타이르든지 야단을 치든지 했을 텐데, 이젠 비겁한 절충을 하며 얼굴만 찌푸린다.

공원 산책은 개학하면 나가려고 지금은 안 나간다. 벌써 달포를 못 나가니 운동 부족으로 휘뚝거리게 된다. 요즘은 집안에서 인터넷 뉴스만 본다. 유학생들이 자가 격리하지 않고 돌아다니다 양성 판정받고 민폐를 끼친다.

그들이 다닌 영업장이 줄줄이 폐쇄되고, 직원 모두 자가 격리에 들어가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정책의 실패로 코로나 정국이 몇 달을 후퇴한 거다. 처음부터 해외 입국 금지하고 강제 격리 시켰어야 할 일이다. 지구촌의 동물 중에 제일 말 안 듣는 게 인간이다. 세상을 오래 살아 인내심이 큰 주부도 흥분하여 입국 금지 하고 구속하라고 강성 댓글을 단다.

● 자부심! 선진국 대한민국의 DNA

유럽과 미국에서는 사재기가 극성이라 마트에 매대는 텅텅 빈다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일이 없다. 제주도 농산물도 주문 다음 날 배달받을 수 있고, 질 좋고 저렴한 두루마리 휴지도 언제든지 살 수 있다. 미국에서 코로나 19가 터지자 너도나도 총을 산다고 해서 의아했다.

코로나로 무법천지가 되면 내 가족을 지키려고 총을 산다니, 자유민주주의가 좋지만 저런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허점이다. 더구나 전시의 규칙에 따라 소생 가망이 적은 노인은 배제하고 젊은이부터 치료한다는 어느 나라 이야기는 씁쓸하다.

우리나라는 성리학과 유교 사상이 잔존함으로써 아직은 경로사상이 투철하여 위급한 노인부터 치료하는 시스템이다. 우리나라가 사재기하지 않는 것과 압축적 근대화로 명실공히 선진국에 진입한 것도 모두 이런 사상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 소봉(卲峰) 이숙진   - 국제펜 한국본부회원, 한국문인협회회원- 실버넷뉴스 기자 역임- 수필집 가난한 날의 초상, 해바라기의 꿈
■ 소봉(卲峰) 이숙진 - 국제펜 한국본부회원, 한국문인협회회원- 실버넷뉴스 기자 역임- 수필집 가난한 날의 초상, 해바라기의 꿈

약국에 요일별 마스크 사러 가지 않는다. 집에만 있으니 굳이 마스크가 많이 필요치 않다.

한편으론 활동하는 젊은이들에게 양보한다는 차원이지만, 코로나 정국이 오래 가니 슬슬 불안해진다.

때마침 구청에서 KF94 황사 방역 마스크 하나와 3D 입체 마스크와 교체형 패드 10매를 보내왔다. 재난 긴급 생활비 지원 신청서도 함께 보냈다. 연금수혜자라 지원대상은 아니지만, 침체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꼭 필요한 행정이다.

소상공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정치이념이 있는 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닐까. 코로나 정국이 하루빨리 마무리되어 자유롭게 나다닐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한다.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비가 그치면 봄도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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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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