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이 봄엔

코로나 19 덕분에 봄이 왔는지 갔는지 알 수가 없이 봄을 맞았습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는 방법으로 그간 평생 해 보고 싶었던 수염을 이 봄엔 길러 보았습니다. 지금 더 길러야 할지 깎아야 할지 여론을 수렴 중입니다. 봄나들이 대신 이 봄에 길러 본 저의 수염 ‘찬반’을 꾹꾹 눌러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의 카페 《덕화만발》의 <안녕 김경희 시사랑 방>의 주인 김경희 시인께서 <이 봄엔>이라는 멋진 시를 올려 주셨습니다. 한 번 감상해 보실까요?

<이 봄엔/ 김경희>

「바람이 불어 발길을 잡아도/ 이미 놓고 돌아선 마음엔/ 그림자조차 흔들림이 없습니다./ 깊이를 잴 수도 없고/ 둘레조차 가늠하기 힘든/ 그대 향한 정은/ 정녕 그 끝을 알 수 없음에/ 늪이라 허우적거리는 이 마음은/ 달처럼 차갑게 식어갑니다

보랏빛 라일락이/ 그 수줍음을 향으로 날리면/ 모르지요/ 그땐 가던 걸음 멈출지도/ 그대 닮은 들장미가 붉게 필쯤엔/ 밤하늘을 덮었던/ 하얀 그리움이 걷힐 거라고/ 또다시 믿어보는 바보입니다.

그대와 떠난 그 봄이 모른 척/ 매화 향으로 다가오더니/ 간밤엔 그리움 되어/ 꽃비로 내렸답니다./ 그대 또한 꽃비를 핑계로/ 반딧불 밝힌 길 따라 오셔서/ 여린 이 봄이 가기 전에/ 돌아서 가는 발걸음 붙잡아/ 차갑게 식은 이 마음 품어주세요.」

어떻습니까? 우리 이 봄엔 차갑게 식어가는 김 시인의 마음을 품어드리면 어떨까요? 그럼 진짜 봄 같은 봄을 맞이할 것 같습니다. 폴란드의 격언에 사계절을 여인에 비유한 말이 있습니다. 「봄은 처녀, 여름은 어머니, 가을은 미망인, 겨울은 계모」라는 말입니다.

「‘봄’은 처녀처럼 부드럽고,/ ‘여름’은 어머니처럼 풍성하고,/ ‘가을’은 미망인처럼 쓸쓸하며,/ ‘겨울’은 계모처럼 차다」는 뜻이지요. 봄 처녀가 불룩한 생명의 젖가슴을 갖고, 부드러운 ‘희열(喜悅)’의 미소를 지으면서 우리의 문을 두드립니다. ‘봄’은 세 가지의 ‘덕(德)’을 지닌다고 합니다.

첫째는 ‘생명(生明)’이요,/ 둘째는 ‘희망(希望)’이며,/ 셋째는 ‘환희(歡喜)’입니다. 그러니까 ‘봄은 생명의 계절’이라는 말이지요. 땅에 씨앗을 뿌리면 푸른 새싹이 돋아나고, 나뭇가지마다 파란 잎이 돋고 아름다운 꽃이 핍니다. ‘봄의 여신은 바로 생명의 여신’입니다. 세상에 생명이 자라는 것처럼 아름답고, 신비롭고, 놀라운 일은 없습니다.

밀레와 고흐는 ‘씨 뿌리는 젊은이’를 그렸습니다. ‘네 마음의 밭에 낭만의 씨를 뿌려라./ 네 인격의 밭에 성실의 씨를 뿌려라./ 네 정신의 밭에 노력의 씨를 뿌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봄은 희망의 계절‘입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봄바람을 ‘혜풍(惠風)’이라고 했고,/ 여름 바람은 ‘훈풍(薰風)’이라 했으며/ 가을바람은 ‘금풍(金風)’이라고 했고,/ 겨울바람은 ‘삭풍(朔風)’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봄은 환희의 계절’입니다. 그래서 코로나 19 때문에 자칫 우울감에 빠져 사회적 거리를 유지할 것이 아니라, 저처럼 생전 길러 보고 싶었던 수염이라도 길러 보며 오는 봄을 예찬해 보는 것입니다.

‘우울의 날이여 가거 라,/ 비애의 날이여 사라져라,/ 절망의 날이여 없어져라!’ 고목처럼 메말랐던 가지에 생명의 새싹이 돋아난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요? 얼어붙었던 땅에서 녹색의 새 생명이 자란다는 것은 진정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 덕산재(德山齋)> 밖 드넓은 평야에 나비가 나 플 거리고, 온갖 새들이 지저귑니다.

열어놓은 창문에 한 없이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오고, 집 앞 소공원엔 기화요초가 방긋 웃습니다. 이 자연의 대지에 온갖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사람의 머리털을 불가(佛家)에서는 ‘무명초(無明草)’라 합니다. 이 봄엔 저처럼 무명초도 밀어 버리고, 삼독오욕(三毒五慾)의 옷도 훌훌 던져 버리며, 하얀 수염도 길러 보는 신선(神仙) 놀음도 즐겨 보는 삶! 이 아니 즐거운 가요?

정산(鼎山) 종사법어 「세속에도 네 가지 기쁜 때가 있다 하거니와, 묵은 병이 절로 나은 때(宿病自解時) 얼마나 기쁘며, 널리 영약을 보시하는 때(普施靈藥時) 얼마나 기쁘며, 모든 법이 통달하게 밝아지는 때(諸法通明時) 얼마나 기쁘며, 만생이 다 귀의하는 때(萬生歸依時) 얼마나 기쁘리오.」 하셨습니다.

이 봄엔 정말 저의 두 다리가 절로 나으면 얼마나 기쁠까요? 또 영약(靈藥) 구해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보다도 모든 진리를 확연통철(廓然通徹) 하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만생이 맑고 밝고 훈훈한 세상을 만들어 가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네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4 월 23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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