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이명수 기자] 지난해 독재자 박정희를 저격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사진과 약력이 육군 홈페이지에 게재된다. 김재규 전 부장의 이름과 사진은 그가 거쳤던 부대의 역대 지휘관 명단에도 40년만이다. 그는 육군 18대 3군단장과 15대 6사단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김재규라는 이름은 오랜 세월 한국 사회에서 금기시된 이름이었다. 김재규 전 부장이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사형당한 후, 그의 가족들도 모진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가짜로 만들어진 ‘박정희 신화’가 한국사회에서 자리 잡으면서 김재규라는 이름은 계속 금기시된 채로 남았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의 막장 행각들이 낱낱이 드러나며 김재규 재평가론은 활발하게 일었다. 특히 그가 유신독재정권에 항거하던 민주세력들을 뒤에서 비밀리에 도와줬다는 점, 또 박정희와 차지철을 제거함으로써 부마항쟁 당시 킬링필드가 벌어졌을 법한 상황들을 막았다는 점 등이 알려지면서다.

사진: 이와관련하여 서영수 국민연대146NGO 의장, 박종림 월남참전전국유공자총연맹 상임대표, 류연옥 참전유공자전국부인회 회장, 정운석 80년해직중대장전국동지회는 24일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사형장) 및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능행리 산21 故 김재규 장군(전 국가정보원장) 묘역에서 ‘10·26 의인들(김재규·박흥주·박선호·유성옥·이기주·김태원)의 ‘명예회복진상규명을 위한 국민행동’ 10·26 40주기 공동 추모 행사를 개최했다.

특히 이날, 1980년 5월24일은 충일군인 독재자 박정희의 가슴을 향해 총을 쐈던 김재규 장군이 사형 당한 날이다. 김재규 장군이 사형된 지 40주년이 되는 24일 오전 11시 서대문 형무소(구) 역사관에서는 10.26 재평가와 김재균 장군 명예회복추진위원회가추최한 추모행사가 열렸다. 그동안 박정희를 살해한 김재규 장군에 대한 평가는 엇갈려 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의인(義人)이라고 호창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故 김재규 장군(전 국가정보원장) 사형장에서 '10·26 의인들(김재규·박흥주·박선호·유성옥·이기주·김태원)의 명예회복진상규명을 위한 국민행동' 10·26 40주기 공동 추모 행사에서 서영수 국민연대146NGO 의장과 인터뷰를 하고있는 주진우 기자
故 김재규 장군(전 국가정보원장) 행사장에서 '10·26 의인들(김재규·박흥주·박선호·유성옥·이기주·김태원)의 명예회복진상규명을 위한 국민행동' 10·26 40주기 공동 추모 행사에서 서영수 국민연대146NGO 의장이 10·26 40주기 공동 추모식을 주관하고 있다.[이 행사를 알리기위하여 인터뷰하는 조선의열단단장 김태현
故 김재규 장군(전 국가정보원장)을 포함한 '10·26 의인들(김재규·박흥주·박선호·유성옥·이기주·김태원)의 명예회복진상규명을 위한 국민행동' 10·26 40주기 공동 추모 행사에서 함세웅 신부.

1980년 5월20일 ‘10·26 사건’ 김재규 사형 확정

“이조시대 이래 2인 이상이 역모를 해서 성공한 사례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혼자서 골똘히 구상했다”

누구의 말일까요. 박정희를 암살한 10·26 사건의 김재규가 훗날 신문을 받는 과정에서 한 말이라고 합니다. 계획했다기엔 허술해 보이고, 그렇다고 그저 우발적이라고 보기엔 치밀한 구석이 있는 10·26 사건. 10·26의 성격과 의의 그리고 김재규의 실제 의도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다양한 역사적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40년 전 오늘(5월20일) 경향신문에는 ‘10·26 사건’을 일으킨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사형을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확정했다는 기사가 1면에 실렸습니다. 김재규를 도운 박선호 전 중앙정보부 비서실 의전과장, 이기주 전 중앙정보부 경비원, 유성옥 전 중앙정보부 운전사, 김태원 전 중앙정보부 경비원도 이날 함께 사형이 확정됐습니다. 박흥주 수행비서는 현역 군인이라 단심제가 적용돼 1심만으로 사형이 결정되었습니다.

김재규는 10·26 직후 수사·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자신을 도운 부하직원들에게는 극형이 선고 돼선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재규 스스로 “이조시대 이래 2인 이상이 역모를 해서 성공한 사례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혼자서 골똘히 구상했다”고 밝혔듯, 박선호·박흥주·이기주·유성옥·김태원 등 그 누구도 사전에 김재규와 박정희 암살에 대해 논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그저 그날 김재규 혹은 김재규의 지시를 받은 박선호·박흥주의 지시를 따랐을 뿐입니다.

1980년 5월20일 경향신문 1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0년 5월20일 경향신문 1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부하직원들에게 ‘박정희 암살’ 계획을 밝히고 지시를 했을 때 부하직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궁정동 안가에서 만찬이 있던 1979년 10월26일 김재규는 아끼던 부하직원인 박선호 중정 의전과장, 박흥주 수행비서(현역 육군대령)를 따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나라가 잘못되면 우리도 다 죽는다. 오늘 저녁 해치우겠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이어 “방에서 총소리가 나면 너희들은 경호원을 처치하라”고 지시합니다.

이때 박선호 의전과장이 ‘각하도 포함되느냐’고 물었고 김재규는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박선호는 청와대 경호원 규모가 많으니 다음 기회로 미루자는 제안을 하지만 김재규는 오늘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암살 계획 유출 우려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김재규는 두 사람에게 “똑똑한 놈 세명만 골라서 나를 지원하라”고 지시했고 이에 이기주·유성옥·김태원이 합류된 것으로 보입니다.

김재규는 재판 과정에서 여러차례 “나는 그들에게 선택의 여유나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생략) 저에게 극형을 내려주시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극형만을 면해 주시기 바란다”고 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김재규와 박선호·이기주·유성옥·김태원은 이날 대법원의 선고 나흘 후인 1980년 5월 24일 사형이 집행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박흥주는 10·26 당시 현역 군인이었기에 1심 선고 만으로 사형이 확정됐고 1980년 3월에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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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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