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화시인상 수상자 이태수 시인과 30년전 시인다방 이야기

물방울 속으로 들어간다. / 이윽고 투명해지는 말들. // 물방울 안에서 바라보면, 길들이 되돌아와 구겨진다. / 발바닥 부르트도록 걷던 / 그 길들 너머 또 다른 길이 열린다. // 알 듯도 모를 듯도 한 나날들, 아득한 곳에서 / 둥글게 그가 미소를 머금고 서 있다. // 그렇게도 꿈꿔왔던 투명한 말들이 / 비로소 물방울 되어 글썽인다, / 햇살은 그 위에 뒹굴다 굴러 떨어진다. // 글썽이며 나는 자꾸만 / 남은 햇살을 끌어당긴다. //-이태수 시집『이슬방울 또는 얼음꽃』중에서 「다시 낮에 꾸는 꿈ㆍ1」전문

올해 제35회 상화시인상 수상자로 이태수 시인이 선정됐다. 수상작은 그의 시집『내가 나에게』이다.

올해 제35회 상화시인상 수상자로 이태수 시인이 선정됐다. 매일신문에 난 수상 소식 기사를 심강우 시인이 읽어주고 있다.
올해 제35회 상화시인상 수상자로 이태수 시인이 선정됐다. 매일신문에 난 수상 소식 기사를 심강우 시인이 읽어주고 있다.

엊그제 대구 수성구 용학로 범물역 1번 출구 부근에 위치한 생맥주 전문점 ‘노가리’에서 이무열, 심강우, 김상연 시인과 함께 이태수 시인을 만났다.

대구 수성구 범물역 1번 출구 부근에 위치한 생맥주 전문점 ‘노가리’에서 (왼쪽부터 시계 방향) 이태수, 이무열, 심강우, 박상봉, 김상연 시인이 만나 문학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구 수성구 범물역 1번 출구 부근에 위치한 생맥주 전문점 ‘노가리’에서 (왼쪽부터 시계 방향) 이태수, 이무열, 심강우, 박상봉, 김상연 시인이 만나 문학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는 이태수 시인과 40년이 넘는 오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34년 전 ‘시인다방’에서 기획하고 진행한 아홉번째 '시인과 독자의 만남'에 이태수 시인을 초대하여 독자와 만나도록 한 적이 있다. 그는 바쁜 기자생활 중에도 ‘시인다방’의 주요 문학행사에는 거의 빠짐없이 참여하였다. 1986년 여름 안동 하회마을 낙동강변에서 열린 ‘제1회 물아래 시인학교’에도 참석해 1박2일 간 독자들과 가깝게 만나 열띤 토론을 벌이며 문학 열정을 불태우던 그 시절의 해맑은 얼굴에 대한 기억이 새롭다.

1986년 여름 안동 하회마을 낙동강변에서 시인다방 주관으로 열린 ‘제1회 물아래 시인학교’에 참석한 이태수 시인(오른쪽)이 독자들과 가깝게 만나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1986년 여름 안동 하회마을 낙동강변에서 시인다방 주관으로 열린 ‘제1회 물아래 시인학교’에 참석한 이태수 시인(오른쪽)이 독자들과 가깝게 만나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이태수 시인은 1947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1974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자유시 동인으로 활동했다. 시집 『그림자의 그늘』, 『우울한 비상의 꿈』, 『물속의 푸른 방』, 『안 보이는 너의 손바닥 위에』, 『꿈속의 사닥다리』등 모두 열여섯 권의 시집을 낸 대구문단의 거봉이다.

등단 이래 대구에서만 활동해온 대구 토박이 시인으로 대구시단의 선구자였던 이상화 선생의 문학적 성과에 버금할 정도로 시의 길을 성실하게 걸어왔다. 이태수 시인은 온유하고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곁에는 늘 사람이 들끓는다. 따로 만나 맥주 한 잔 나누려면 최소 일주일 전에는 예약해야 할 정도다.

시업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지내오는 동안 1979년에 나온 첫 시집  그림자의 그늘 이후 지난 3월에 발행된 유리창 이쪽에 이르기까지 열여섯 권의 시집을 상재하였으며, 한결 같이 높은 시적 성취를 유지해왔다. 서정성을 바탕으로 명상과 관조, 정화와 화해를 노래하는 그의 시세계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성찰, 특히 내면 성찰이 새로운 경지를 이루면서 우리의 뇌리와 인식을 치는 서늘한 깊이에 도달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리창 이쪽』의 해설에서 조창환 시인(아주대 명예교수)은 “그의 시는 자아의 내적 성찰을 바탕으로 멀리 있는 다른 세상을 항한 꿈을 펼쳐 보이는 지성적 관조자의 모습을 띠고 있다. 이태수 시의 초월에 대한 대한 감수성은 현세적 욕망 저편에 자리잡은 신비로운 절대세계가 있음을 긍정하는 자세에서 우러난다. 그것은 현상적 존재자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며 자아와 세계의 조화로운 합일을 꿈꾸는 동양적 정관의 세계와 상통한다”고 말했다.

숨을 들이쉬면 / 바깥이 내 안으로 숨을 내쉰다 / 내가 숨을 내쉬면 / 바깥이 어김없이 나를 들이 쉰다 // 나와 우주는 들숨날숨의 관계, / 이 관계를 모르고 / 나는 속절없이 애태운 것일까 // 우주와 내가 하나인 줄 모르고 / 헤매기만 한 걸까 / 바깥에서도 안에서도 언제나 겉돌아온 걸까 // -이태수 시집『유리창 이쪽』중에서 「우주와 나」전문

“내가 숨을 들이쉬면 바깥이 내 안으로 숨을 내쉬고, 내가 숨을 내쉬면 바깥이 나를 들이 쉬는 관계” “나와 우주가 들숨날숨의 관계”이며, 안과 밖이 구분 없이 하나로 이어진 세계라는 주장을 펼친다. 이는 아난존자의 ‘견성성불(見性成佛)’이나 고려 후기 조계종 창시자 지눌이 말한 ‘돈오점수(頓悟漸修)’의 깨달음에 버금하는 득도(得道)의 경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태수 시인은 그동안 다소 과소평가된 면이 없지않다. (사)이상화기념사업회(이사장 최규목)는 이태수 시인을 올해 상화시인상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그의 시를 새로이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이번 상화시인상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지성적 관조자의 모습’을 지니고 ‘담담하고 담박한 응시자의 시선으로 자신의 내면을 형상화하는 이태수 시인의 귀하고 가치 있는’ 시세계가 이상화를 뛰어넘어 대구뿐 아니라 한국 문단사에 밝은 등불로 환하게 빛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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