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정은미기자] 집값뿐 아니라 서울지역 전셋값이 들썩이고 있다. 정부는 부동산시장 과열현상을 만든 진원지로 서울 강남을 지목하고 집중포화 규제를 가하고 있지만, 8·2부동산대책 이후 잠시 주춤하던 강남 집값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추석 연휴 이후 강남 집값의 향배에 따라 정부가 이달 내놓을 추가대책 수위도 결정될 전망, 재건축 이주 수요가 집중되는 강남권을 중심으로 아파트 전셋값 상승세가 가파르다. 신규 입주 물량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이주 수요가 늘면서 전세 물건이 빠르게 소진되고 가격도 상승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5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달 마지막 주(9월29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보다 0.11% 상승했다. 8·2대책 이후 약세를 보이던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달 들어 계속 오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조합은 지난 1일 대의원회의를 열고 이주 일정을 확정했다.이렇다 보니 강동구 일대 아파트 전셋값이 무섭게 뛰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강동구 아파트의 3.3㎡당 평균 전셋값은 4월 1123만원에서 5월 1189만원으로 한 달 사이 5.82% 올랐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3.3㎡당 평균 0.57%(1337만원→1345만원) 오른 것과 비교하면 10배 넘는 상승세를 보인 것이다. 둔촌동 S공인 관계자는 “둔촌푸르지오 전용면적 84㎡형 전세 시세는 지난 3월만 해도 5억 1000만~5억 3000만원 선에 형성됐으나 지금은 5억 5000만~5억 7000만원을 호가한다”고 말했다.

고덕 래미안힐스테이트(3658가구) 전용 84㎡형 전셋값은 6억원 선으로 지난 2월에 비해 1억 5000만원 정도 뛰었다. 고덕동 E공인 관계자는 ‘강동구에선 올 하반기 8000여가구가 재건축 사업으로 이주하는 반면 입주 물량은 고덕숲아이파크(687가구)와 래미안강동팰리스(999가구) 등 1500여가구에 불과하다”며 “수급(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은 만큼 전세난은 앞으로 더 심화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값을 끌어올린 것은 재건축 단지의 호재성 이슈 영향이 컸다. 송파구 잠실주공 5단지는 지난달 초 ‘50층 재건축’이 사실상 허용되면서 호가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으며, ‘고액 무상 이사비’로 논란을 일으켰던 서초구 반포주공 1단지 시공사 선정도 시장에선 호재로 이슈화되면서 주변 재건축 단지 가격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 1단지는 2000만~2500만원,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1000만원 가량 올랐다.

이에 따라 지난주 서울 재건축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0.07%)보다 0.18%나 올랐다. 8·2대책 이후 가장 높은 상승폭으로, 3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내년 부활하는 초과이익환수제를 앞두고 강남 재건축 단지들이 사업 속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초과이익환수제는 재건축으로 얻은 이익이 조합원 1인당 3000만원을 넘을 경우 초과금액의 최대 50%를 세금으로 부과하는 제도다. 올해 말까지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하지 않은 재건축 단지는 당장 내년부터 초과이익환수제 적용을 받게 된다. 잠실 인근의 공인중개사 이모씨는 “미성·크로바 재건축 조합도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무상 이사비가 문제가 되니까 송파구청에서 제재해 결국 안 받기로 한 것”이라며 “초과이익환수제 적용을 받지 않기 위해서 ‘울며 겨자먹기’로 구청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와 박원순 서울시장 간의 정책 엇박자를 지적하기도 한다. 정부는 들썩이는 집값의 원인으로 강남 재건축을 지속적으로 겨냥하고 있는데 반해 서울시에서 강남의 재건축 사업을 계속 승인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정부에선 부동산 투기를 우려해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는 도시재생 뉴딜 사업지 선정에서 제외한다고 했지만, 서울시에선 도시재생을 재개해달라고 건의했다”며 “한쪽에선 규제하는데, 다른 한쪽에서 (부동산을) 부양하는 듯한 시그널이 반복되면서 중앙정부에서는 집값은 잡으려고 했지만 서울시에선 뉴타운정책을 내놨던 참여정부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여기에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시중에 남아도는 유동성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빚 내서 집 사라’던 초이노믹스 시절은 지났지만 집을 살 때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도 된다는 인식이 퍼져있는 데다, 최근 부동산이 돈을 벌 수 있는 투자처로 각광을 받고 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강력한 규제가 잇따르면서 부동산 시장에도 양극화가 심화됐다”며 “다주택자는 수익성을 더 높이기 위해, 실수요자는 ‘똘똘한 한 채’를 위해 강남에 눈독을 들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추가대책 수위따라 매수세 움직일 것”

지난달 초 분양했던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 센트럴자이’ 청약 경쟁률이 평균 168대 1, 최고 510대 1(전용면적 59㎡ C형)을 기록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 단지의 분양가는 3.3㎡당 4250만원으로, 주변 시세보다 350만원 이상 낮아 ‘로또 청약’이라 불렸다. 이를 반영하듯 당시 평균 당첨 가점은 70점이 넘었다. 서울 신규 아파트 분양시장에서 청약 가능 점수는 알려진 60점보다 월등히 높은 점수대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자문위원은 “청약가점이 높은 장기 무주택자들이 대거 청약시장에 도전한 것일 수 있지만 시세차익으로 수억원을 벌 수 있다니까 ‘일단 당첨되고 보자’는 식의 묻지마 청약도 많았다”며 “아파트를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욕망이 극대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시장의 관심은 이달 나올 추가대책에 쏠리고 있다. 우선 주거복지 로드맵에는 주택임대차시장 정상화가 기조로,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등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또 최근 반포주공 1단지 등 강남 재건축 단지에서 시공사 수주 경쟁이 과열돼 비판을 받았떤 만큼 ‘정비사업 시공사 선정 기준’ 등 관련 규정의 개정 작업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취임 100일을 맞은 기자간담회에서 “8·2 부동산 대책을 통해 주택시장의 국지적 과열을 진정시키고 시장 안정을 위한 주춧돌 정도는 놓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국지적 집값 상승세가 나타나고 있지만 양도소득세 비과세 요건 강화, 청약제도 개편, 자금조달 및 입주계획 신고 의무화 등 8·2 대책의 효과가 발휘되고 있는 만큼 국지적 과열이 확산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강남의 한 공인중개사는 “시장에서는 추가대책에 임대사업자 등록 의무화나 보유세 강화가 나오지 않는 이상 크게 영향이 없다고 본다”며 “이달 나올 대책의 수위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매수세가 다시 움직일지, 계속 관망할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건축발 전세난 조짐…“이주 시기 조정 필요”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강동구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올 하반기에 들어서면 재건축 사업으로 인한 강남발 전세난이 갈수록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유예 기간이 올해 말로 끝날 가능성이 커지면서 주요 재건축 단지들이 올해 안에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신청하고자 사업 속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현재 서울에서 사업시행인가나 관리처분계획 단계에 있어 올해 내 재건축 이주가 예상되는 곳만 2만 2000여가구다. 이 중 80%에 달하는 2만여가구가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에 몰려 있다.

강남구 개포주공4단지(2840가구)가 올여름에 본격 이주에 나서고,강남구 개포주공1단지(5040가구)도 올 하반기 이주가 예정돼 있다. 1074가구 규모의 서초동 무지개아파트도 현재 이주가 진행 중이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재건축 이주 수요자들은 직장 출퇴근과 자녀 교육 문제 등으로 멀리 이사하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며 ““재건축 사업이 완료돼 수급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기 전까지는 전셋값 상승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강남 재건축발(發) 전세난은 강남 지역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의 전셋값도 상승시킬 수밖에 없다”며 “재건축 조합과 서울시 등 지자체가 대규모 재건축 단지의 이주 시기를 조정하는 등 특단의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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