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이후 47년, 우리 곁에 벌어진 일들,.

▲ 청계천 달위에 서 있는 전태일 동상: 1970년 11월 13일 열악한 노동조건에 항거, 분신자살한 평화시장 재단사 출신의 노동자이다. 그의 분신사건을 계기로 11월 27일 청계피복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1964년 17세의 나이로 평화시장 피복공장 미싱사보조로 취직했다. 1969년 재단사들의 친목모임인 '바보회'를 조직하는 한편, 근로기준법을 탐독하면서 평화시장의 노동실태를 철저히 조사, 그 개선방안을 노동청에 제출한 후 해고당했다. 1970년 9월 다시 재단사로 취직해 '삼동친목회'를 결성하고 노동청에 '평화시장 피복제품상 종업원 근로개선 진정서'를 제출한 후 선처를 약속받았다. 하지만 시정약속 기한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자 그는 동료들과 피켓시위를 계획했다. 1970년 11월 13일 경찰이 시위 직전 강제해산하자, 그는 분신을 감행, 화염에 휩싸인 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등을 절규하며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을 거두었다.

“우리는 바보회. 우리는 모였다. 우리는 똑똑해. 사람들이 우리를 바보라고 해도 우린 웃어 버린다. 의리를 알고 정의를 아는 평화시장의 청년들. 노동조합은 아직 잘 모르지만 사람답게 살려고 하네.”(우리는 바보회/ 김현성 작사·곡)

[뉴스프리존=김현태기자] 명절이 긴 여유로 모처럼 청계천을 걷다보니, 멈춰진 곳이 전태일 동상 앞이었다. 1970년 11월13일 오후 2시경, 서울 평화시장 앞길에서 재단사 청년이 스물 둘의 젊은 나이에 몸을 불살라 죽었다. 그 청년의 이름은 전태일. 그는 자신의 몸이 화염에 휩싸여있음에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외쳤다. 다음날 그는 자기가 못다 이룬 일을 꼭 이루어 달라고 어머니와 동료들에게 다짐을 받은 후 명동 성모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전태일은 청계천 동화시장, 평화시장, 통일상가 등 400여 피복제조상의 작업환경을 근로기준법에 맞게 개선해 달라고 주장하며 근로기준법 책자를 불태우며 스스로 몸을 던져 죽은 것이다. 동아일보 1971년 신년호에는 앞에서 소개한 기사 외에도 “6.25가 1950년대를 상징하고, 4.19가 1960년대를 상징하듯이 전태일의 죽음은 1970년대의 한국 사회를 상징한다”고 시대를 예측하기도 했다.

▲ 전태일의 죽음을 기억하기위한 개인의 한 푼씩 모아 건립하게 된것이 동상이다.

전태일은 69년 9월 동료 재단사들과 함께 평화시장 최초의 노동운동 조직인 ‘바보회’를 결성했다. 전태일과 재단사들은 모임의 이름을 왜 ‘바보회’라고 지었을까. “우리는 당당하게 인간적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음에도 기계 취급을 받고 업주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바보처럼 찍소리 한 번 못하고 살아왔다. 그러니 우리 모임은 바보들의 모임이다. 이 현실을 우리가 철저하게 깨달아야 하며 그래야만 언젠가 우리도 바보 신세를 면할 수 있다. (중략) 우리가 바보답게 되건 안 되건 들이받아나 보고 죽자.”

▲ 전태일동상에 함께한 노동단체들이 바닦에 동판이 새겨져있다.

70년 11월13일 전태일은 평화시장 구름다리에서 근로기준법을 가슴에 꼭 안은 채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다. 

전태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이후 47년, 우리 곁에 벌어진 일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미싱하는 기계에서 미소짓는 기계로

“노동자를 혹사시키지 말라”…OECD 노동시간 2위 야근지옥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쌍용차 23인의 죽음, 아직 끝나지 않은 투쟁

여기서 우리들은 점점 더 많은 사회 구성원을 무능하고 쓸모없는 존재로 몰아가는 사회체제라면 그 체제 자체가 쓸모없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던져야 마땅하다. 20대의 아름다운 청춘이라면 더욱 이런 패기에 찬 당돌한 물음이 어울리지 않겠는가? 물론 무한경쟁과 사회적 양극화는 한국이라는 특정한 국가에 국한된 것도 아니요, 전지구적인 대세에서 비롯된 거대한 물결로서 쉽게 거꾸러뜨리기 어려운 것이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지 47주년이 되는 이번 주에는 『전태일 평전』을 한번 펼쳐볼 일이다. 독자는 불쌍한 사람을 보면 하루 종일 우울해하던 마음 약한 청년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공부를 제대로 해볼 기회는 없었지만 이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애쓰는 과정에서 ‘전태일 사상’이라고 불러 지나치지 않은 ‘깨달음’을 얻은 이를 보게 된다. “누구나 인간이라면 인간의 문제에 대해 외면할 수 없는 인간적 과제를 짊어진다”는 전태일이 남긴 문장은 47년이 지났어도 더욱 빛을 발한다.

대부분의 학생은 『전태일 평전』을 읽고 큰 충격과 감동을 받으면서도 그의 삶이 자신과 거리가 멀다고 느낀다. 이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을 권하고 싶다. 남의 삶을 그린 책을 읽으며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그 삶에 자신을 대입하여 이런저런 궁리를 하게 마련인데, 바로 그렇게 전태일의 ‘깨달음’을 힘닿는 데까지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보면 어떨까. 22살의 꽃다운 나이에 자신을 희생한 한 사람의 생애가 차갑고 딱딱한 역사적 기념물의 낯섦이 아니라 나와 함께 강의실에서 공부하는 따뜻한 체온을 지닌 살아있는 인간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가 얻은 깨달음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점령한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비인간적 이념들을 맑은 눈으로 직시하게 할 것이다. 그것은 ‘쓸모없는’ 인간을 양산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쓸모없는’ 사회체제를 조금씩 허물어가면서 새롭고 인간다운 사회의 싹을 키워나가는 사업의 출발점이 된다. 전태일이 바로 그대와 마찬가지로 막막함과 우울에 시달렸던 그대의 벗이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마음깊이 깨우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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