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 장편소설 〖모델하우스〗제69회

방문

애춘이 돌아가고 나자 지선은 문득 은 기자와 남편의 일이 떠올랐다. 애춘에겐 걱정할 것 없고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덮어두었으나 은 기자가 마음에 걸리는 건 사실이었다. 자신보다 젊고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남편을 배웅하면서 보았던 단발머리의 은 기자! 자신의 젊었을 때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자신은 은 기자와 남편사이를 질투나 추호의 의심조차 없었다. 오히려 그런 태도가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따져보았다. 애춘은 남편이 선호하는 여자가 되기 위해 성형을 여러 번 시도했다. 그것은 남편에 대한 사랑이며 열정이 식지 않았기 때문이다. 열정! 아! 나는 애춘처럼 그런 열정이 있단 말인가! 그저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듯했다. 지선은 남편을 존경하고 사랑하며 언제나 그에게 성실하게 대했다. 그러나 요즈음의 생활이 열정이 빠진 밋밋함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왜 우리 부부는 처음부터 다른 연인처럼 열정적이지 못할까! 다들 그렇게 사는 것이 부부인가! 지선은 갑자기 고민의 나락으로 빠져 들었다. 남편은 늘 열정적인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답변했다.

“우리가 사명에 매진하고 있을 때, 그것에 가깝게 다가가면 우리의 사랑도 열정도 깊어지고 가까워지는 법이오.”

지선은 그 말이 매우 서운했다.

“난 당신을 지금도 열렬히 사랑하고 있소!”

지선은 그런 소리를 듣고 싶었다. 남편이 차갑고 냉정한 사람처럼 여겨졌다. 애춘의 문제가 바로 거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애춘은 채성을 너무 사랑해 집착했다. 채성은 그 집착이 부담스러웠는지 모른다. 오히려 그것은 상대방에게 넌더리를 치게 하고 매력을 앗아갈 수도 있다. 인간은 너무 많은 사랑을 받으면 질리는 법이다. 줄을 너무 팽팽하게 잡아당기면 줄이 끊어지는 것과 같다. 어느 한쪽이 느슨하게 놓아주는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열정! 부부사이도 열정이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부부는 너무 좋지도 않고 너무 싫지도 않은 그런 상태가 정상이라고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열정과는 먼 듯했다. 불꽃처럼 영롱하게 사랑을 태우는 열정이기 보다 이미 불꽃이 타고 남은 숯불처럼 은은하게 지속되는 것이 아닐까! 지선은 잠이 오지 않았다. 몸을 뒤척였다. 밖의 공기는 여전히 안개가 섞여 있는 듯 고요하기만 했다.

은 기자와 남편! 그리고 자신을 사모하는 정세원이 떠올랐다. 그가 보내오는 사랑하는 눈빛, 자신을 존중하는 태도, 그와의 마주친 미소, 만나면 외면하면서도 설레던 순간들!

문득 남편과 은기자도 이러한 사랑의 채널로 향하고 있지는 않을까. 지선은 은은한 사랑의 감미로움을 상상 속에서 즐겼다. 그와의 입맞춤과 포옹도 상상해 보았다. 그것은 상상조차도 남편에게 죄악이다. 남편도 은 기자를 떠올리며 이와 같은 사랑의 신선놀음에 잠시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선은 자신과 남편은 이 정도가 최상일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더 진행할 밧데리가 없다. 왜? 우리들에겐 사랑보다 이루어야 할 사명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지선은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뒤척이다가 남편이 아닌 남자를 가슴에 품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다. 순간 그 마음을 차단하려고 의도적으로 처음 만났던 남편의 모습을 떠올렸다. 대학 강의실에서 처음 보았던 그의 청결한 영혼! 설레었던 자신! 그 운명적인 첫 만남! 지선은 미소를 지으며 남편의 비젼이 모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가까스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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