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안데레사기자]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업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각종 탈법·편법을 동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여론몰이를 위해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은 물론 친정부 성향의 교수와 국립대 총장·보수단체·언론 등을 적극 동원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청와대의 지시 아래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이 국정화에 반대하는 역사학자를 대상으로 ‘역사학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데 이어, 당·정·청이 함께 여론을 움직이려 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31일(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신동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교육부가 지상파 3사와 협찬을 약정하는 과정에서 국가계약법, 위임전결규정, 정부광고업무 시행지침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청와대와 교육부 등은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국립대 총장을 통해 역사학회 개최를 방해하고 이념적 갈등을 꾀하는 언론 기사 배포 등을 추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가 신동근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역사교육지원팀은 지상파 3사에 ‘올바른 역사교과서 영상캠페인’을 협찬한다는 명목으로 총 10억 4000여만 원 상당의 약정을 체결했다. 교육부는 ‘당·정·청 회의 자료’라는 설명이 붙은 이 보고서에서 국정화 찬성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VIP, 당대표 연설 등을 통한 메시지 전달 △여의도 연구원을 통한 우호적 여론조사 결과 도출 및 확산 △국정화 지지 교수의 지속발굴 및 선언 발표 △10월30일 전국역사학대회 대응 △보수 학부모 단체를 통한 집단행동 추진 등을 꼽았다.   

실제로 교육부는 2015년 10월30일 서울대에서 열린 전국역사학대회와 관련해 “서울대(성낙인) 총장이 행사 주최 측에 집단행동 자제를 요청하고, 집단행동 움직임이 있을 경우 장소 불허를 검토”한다고 보고한 뒤 이를 실행에 옮겼다. 당시 역사학자들은 대회가 열릴 서울대에 모여 국정화 반대 기자회견과 공동성명 발표를 준비했다. 이에 교육부는 보고서에서 “2015년 10월22일 대학정책실장. (성낙인) 서울대 총장에게 역사학대회협의회 회장 양호환 교수에 대한 집단행동 자제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역사교육지원팀장이 협찬약정 공문을 전결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교육부의 위임전결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규정에 따르면 ‘세출예산 집행 원인행위’, 즉 예산집행의 규모가 1억 원 이상일 경우 전결권자는 실·국장이므로, 과장급인 팀장이 전결하는 것은 규정에 어긋난다.   

교육부가 지상파 3사에 협찬하는 대가로 실시한 캠페인의 내용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업을 홍보하는 것으로, 사실상 정부광고를 의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는 한국언론진흥재단에 정부광고를 의뢰하도록 돼 있는 ‘정부광고 시행에 관한 규정’과 ‘정부광고업무 시행지침’을 위반한 것이다. 종편방송에 대해서는 교육부가 한국언론진흥재단에 광고를 의뢰하는 정상적인 절차를 밟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상파 3사에 ‘협찬’ 명목으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홍보를 요청한 것은 의아한 대목이다.

‘성명서를 낭독할 계획이 있느냐’ 묻는 등 간접적인 방식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성낙인 총장은 “당시에 내가 축사도 했고 만찬에 가서 비용도 냈다”며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뿐만 아니라 SBS에 4억원 협찬 약정내역에 광고물 제작비 1억원이 포함돼 있어, 사실상 광고물 제작의뢰를 하는 것인데도 교육부는 이를 일반경쟁 입찰에 부치지 않아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역사학대회 방해를 위해 보수단체도 동원했다. 보고서의 ‘보수단체 집단행동’ 항목에서 교육부는 “대회 현장에서 교과서 정책에 지지하는 보수단체를 통한 대응 집단행동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같은해 10월22일 차관이 단체 대표와 면담해 통합적 대응을 협의한다는 내용도 나왔다. 한편 교육부가 ‘미디어그림’이라는 업체에 광고물 제작을 의뢰한 과정도 의문투성이다. 교육부는 2015년 10월 SBS에 4억원을 협찬 약정하면서 1억원 상당의 광고물을 제작 의뢰한 바 있다. 이어 같은 해 12월, 교육부는 ‘미디어그림’에 ‘교육정책 홍보 영상’ 제작을 의뢰하면서 1900만원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미디어그림’이 제작한 광고물은 SBS에서 제작했던 기존 광고물을 복제한 수준이었다. 광고물 후반 20초 가량은 SBS의 광고물과 거의 동일하고, 전반 20초 가량 역시 바다 수면 영상에 자막을 입힌 정도에 그쳤다. 기존 광고물을 복제해 일부 수정한 광고물에 약 20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한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교육부는 국정화를 지지하는 역사학계 교수진을 발굴한 뒤 이들을 앞세워 교과서 국정화의 필요성을 알리려는 시도에도 적극적이었다. 보고서에서 교육부는 “지지 교수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선언을 발표해 주요 학자들이 국정교과서 편찬에 적극 동참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자고 제안했다. 또한, 이들의 “언론기고 및 인터뷰 등을 적극 추진”하자고도 했다. 역사학대회와 관련해서도 “대회 기간중 ‘올바른 역사교과서 지지 교수 모임’의 3차 성명서 발표를 추진”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게다가 교육부가 ‘미디어그림’에 광고물 제작을 의뢰한 당일에 SBS에도 영상물 추가제작을 의뢰한 것으로 드러나, ‘미디어그림’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의혹도 제기됐다. 통상 광고물의 추가 제작을 의뢰하는 경우, 내용의 연속성이나 저작권 문제 등을 고려해 기존 광고물 제작업체인 SBS에 맡기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SBS에도 추가 제작을 의뢰하고, 동시에 ‘미디어그림’에도 복제 수준의 광고물을 별도로 의뢰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교육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는 당시 청와대와 교육부가 국정화 여론몰이를 위해 보수 단체와 친정부 성향의 교수 등을 동원한 과정의 적절성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신동근 의원은 “시대에 역행하는 역사교과서 강행도 문제지만, 교육부가 온갖 탈법·편법을 감수하며 역사교과서를 홍보한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다”라며 문제제기했다. 이어 “이는 정부기관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금도를 넘어선 국정농단의 한 사례”라고 지적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공정하고 객관적인 진상규명을 통해 정부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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