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우리 덕화만발 카페에 <원산 나환정(경주) 한문 방>이 있습니다. 원산님은 오랜 한문 선생님으로 봉직하셨고, 지금은 우리 덕화만발 카페에서 중추적(中樞的)인 역할을 담당하고 계시지요. 그리고 오늘 <원산 나환정(경주) 한문 방>에 ‘조고각하’를 올려 주셔서 덕화만발에 인용합니다.

사진: 불러그 갈무리

그런데 얼마 전에 제가 카페에 들어온 스팸메일을 정리 하다가 그만 잘못 눌러 원산님을 스팸처리 하는 바람에 한 동안 연락두절이 되고만 만행(蠻行, ?)을 당하셨습니다. 원산님의 지적으로 이를 깨닫고 즉각 원상복구를 하려고 했으나 제가 컴 실력이 서툴러 복구방법을 찾지 못하다가 불과 며칠 전 방법을 찾아 이렇게 새롭게 다시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제가 ‘조고각하’를 하지 못한 탓입니다. 조고각하란 ‘지금에 그 자리를 잘 돌아다보고 살펴보라는 뜻’이지요. 요즘 제 다리를 치료하기 위해 재활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 운동에 구호를 외치며 걸음마를 합니다. “멀리 보고, 허리를 쭉 펴고, 천천히 뒤꿈치부터!”입니다. 그러다가 그만 발가락을 모서리에 부딪쳐 작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멀리만 보았지 ‘다리 아래를 비춰 보고 돌이켜 보지 못한 탓’이지요.

조고각하는 또 회광반조(廻光返照)와 비슷한 말입니다. 회광반조는 선종(禪宗)에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돌이켜 반성하여 진실한 자신, 즉 불성(佛性)을 발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임제선사(臨濟禪師 : ?~866)의 《임제록(臨濟錄)》에 「너는 말이 떨어지면 곧 스스로 회광반조 할 것이며, 다시 다른 데서 구하지 말 것이니, 이러한 신심은 불조(佛祖)와 한 치도 다르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爾言下便自回光返照, 更不別求, 知身心與祖佛不別.)」고 하셨습니다.

‘조고각하’는 삼불야화(三佛夜話)라는 선화(禪話)에 나오는 화두(話頭)로서 원래 불교(佛敎)애서 유래(由來)한 용어이지요. 옛날 송(宋)나라 때, 임제종의 중흥조라고 하는 오조 법연(五祖 法演 : 1024~1104)이라는 선사(禪師)가 있었습니다. 이 오조 법연선사 밑에 삼불(三佛) 제자가 있었는데, 불감(佛鑑)혜근, 불과(佛果)원오, 불안(佛眼)청원스님이었습니다.

어느 날, 법연이 세 명의 제자(弟子)와 밤길을 밝혀 산길을 내려오다 가랑잎이 솟구치는 바람에 그만 등불이 꺼져버렸습니다. 사방이 칠흑 같았고 발밑은 천길 낭떠러지였습니다. 큰 짐승이 있던 시절이라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법연은 제자들의 수행(修行)도 가늠할 겸, 자신의 두려움도 떨칠 겸, “자 이제 어떻게 하여야 하느냐?”라고 어둠 속에서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첫 번째로 불감(佛鑑)혜근이 그들이 처한 상황과 느낌을 말했습니다. “광란(狂亂)하듯 채색(彩色) 바람이 춤을 추니 앞이 온통 붉사옵니다.(彩風舞丹宵)”하였고, 두 번째 불안(佛眼)청원은 “쇠 뱀이 옛길을 가로질러 가는 듯하옵니다.(鐵蛇橫古路)” 하며 뜻 모를 말만 늘어놓았습니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불과(佛果)원오의 말이 걸작(傑作)이었지요. “우선은 불을 비추어 발밑을 봐야 할 것입니다.” 이른바 ‘조고각하(照顧脚下)’의 현답(賢答)을 추려내는 순간(瞬間)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조고각하(照顧脚下)’는 각자 발밑을 조심히 살펴서 걸어가라는 말입니다.

어둔 밤길엔 한발 한발 조심히 살펴 걷는 것이 최상입니다. 한 발 잘못 디디면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항상 저 높은 이상(理想)을 향해 어떤 목표, 종착역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달려갑니다. 그러나 그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내 발밑, 내 주변, 내가 처한 작금(昨今)의 현실을 직시하고 “다시 한 번 뒤돌아 생각해 보라”는 뜻이 조고각하(照顧脚下)입니다.

신발 정돈이 잘 되어 있는 집은 도둑도 그냥 간다고 합니다. 털어 갈 것이 없을 정도로 잘 정돈 된 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고각하가 신발 정돈만 잘하라는 말은 아니지요. 조고각하에 담긴 깊은 뜻은 삶을 통찰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 전체를 살피고 돌아보라는 회광반조의 뜻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대 몸과 마음이 조사님이며 부처님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爾言下便自回光返照, 更不別求, 知身心與祖佛不別)”라고 《임제록》에도 쓰여 있습니다. 빛을 돌이켜 거꾸로 비춘다는 뜻의 ‘회광반조’는 언어나 문자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마음속의 영성(靈性)을 직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기 전에 잠시 온전한 정신을 돌이켜 자신의 지나온 길을 돌이켜 보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이렇게 매순간, 매일,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자신의 행위와 삶을 돌아 비추어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 원불교입니다. 하늘은 드높고 소슬한 바람이 불어 예는 이 가을입니다. 우리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지금의 나, 내가 걸어 온길,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 왔는지, 그리고 나는 누구인지, 나는 어디로 갈 것인지 한번쯤 돌아보는 조고각하의 여유를 가져 보면 어떨 까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9월 25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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