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글, 문자올림픽 금메달 획득>에 이어, 오늘은 국보(國寶) 320호인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에 대해 알아봅니다. 『월인천강지곡』은 조선의 4대 왕인 세종대왕께서 수양대군이 지은 『석보상절(釋譜詳節)』을 본 후, 각 구절마다 찬가찬송(讚歌讚頌)의 형식으로 직접 지은 500여수의 송시(頌詩)들을 첨가한 장편 한글 찬불가. 상중하 3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현존하는 것은 상권뿐이라네요. 현재 ‘한국학 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세종 28년인 1446년에 소헌왕후가 사망하자 어머니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수양대군은 죽은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스스로 불교 서적을 공부한 후, 한글로 석보를 지어 어머니의 영전에 바칩니다.

이를 본 세종이 수양대군에게 이 석보를 개인적인 작품을 넘어 모든 이가 볼 수 있게 완성하라는 명을 내립니다. 이 명을 받은 수양대군은 고승 신미대사(高僧신미((信眉大師 : 1403~1480)와 함께 다른 불경들 또한 모두 완독하여 우리 나라 최초의 한글 불경 언해서(諺解書)를 완성합니다. 이것이 석보상절입니다.

현재 남아있는 『월인천강지곡』 권상(券上)에 수록된 찬가는 총 194곡입니다. 수년 후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합 철(合綴)하여 세조대에 발간한 월인석보에 나오는 찬가의 수는 총 440곡입니다. 이 많은 상‧중‧하 580여곡의 찬가를 세종대왕이 직접 지어 수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 『월인천강지곡』은 한글로 표기된 작품으로, 한글창제 초기의 국어학 연구와 출판 인쇄 사를 연구하는 데에는 용비어천가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역대 최고의 자료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월인천강지곡』은 상권 하나 뿐으로 총 194곡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훗날 세조가 월인천강지곡의 내용을 합 철하여 우리나라 불교계 제일의 ‘강창문학(講唱文學)’으로 손꼽히는 월인석보를 펴낸 관계로 거의 대부분의 내용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월인천강지곡』이라는 말은 ‘부처가 백억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 교화(敎化)를 베푸는 것이 마치 달이 즈믄(千의 옛말) 강에 비치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석가모니의 일대기는 수많은 불교 경전에서 거듭 다루어졌고, 노래로 지어 부르는 전통도 거듭 시도되었습니다. 그러나 『월인천강지곡』은 한시(漢詩)가 아닌 우리말로 창작함으로써 새로운 느낌이 나게 개작되었고, 불교문학이 국문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마련된 것입니다.

『월인천강지곡』은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와 거의 같은 시기에 훈민정음을 사용하여 창작된 문학작품으로 노래의 형식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월인천강지곡』에는 한시가 부기(附記)되어 있지 않고, 국문을 큰 활자로 먼저 적고 한자는 작게 달았으며, 해설에 해당하는 〈석보상절〉도 국문으로 적은 것이 독특합니다. 이렇게 『월인천강지곡』은 국문문학의 영역을 확보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입니다.

〈용비어천가〉에서는 영웅의 세계를 그리기 위해 일상성을 배제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월인천강지곡』에서는 영웅의 세계를 능가하는 상상을 일상생활의 모습과 함께 나타냈습니다. 〈석보상절〉 이후의 문헌에서는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의 특징으로서 음가(音價) 없는 종성(終聲)에 ‘이미지’가 사용되었는데, 이 『월인천강지곡』서는 음가 없는 종성에 ‘이미지’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월인천강지곡』은 가사(歌辭)는 남아있었으나 음정은 전수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영화 <나랏말싸미>에서 곡을 붙인 노래가 나왔습니다.

《가사 해석》

「세존의 일(평생 하신 일)을 여쭈려고 하니/ 만 리 밖의(우리나라에서) 일이시나/ 눈에 보는 듯이 여기시옵소서./ 세존의 말씀을 여쭈려고 하니/ 천 년 전의 말씀이시나/ 귀에 듣는 듯이 여기시옵소서.」

소헌 황후는 시아버지인 태종에 의해 친정이 멸문(滅門)의 화를 입었습니다. 당시 세종은 군권을 쥐고 있던 태종에 맞서지 못하고 처가의 멸문을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음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이후 소헌 황후도 폐위하라는 상소가 빗발쳤으나 세종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소헌 황후가 승하한 후 세종은 창덕궁 곁에 불당을 세우려 했습니다. 그러나 대소신료들이 강하게 반발하였지요. 하지만 세종은 “나는 어진 임금이 아니니 불당 하나 쯤 지을 수 있는 거 아니냐?” 라며 불당건설을 강행하였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렇게 한글날을 맞아 『월인천강지곡』에 대한 대강의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참으로 그 오랜 옛날에 우리는 세계 제일의 문화와 우리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이런 자부심으로 모두 마음을 합해 코로나 19의 위기를 극복하면 얼마나 좋을 까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10월 15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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