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오랜 동안 잠자고 있던 한국가요가 여러 방송국에서 ‘트롯 경연대회’를 치르면서 대 유행을 몰고 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압권(壓卷)은 아무래도 가황(歌皇)이라고 일컫는 나훈아님의 추석특집 ‘대한민국 어게인’이었을 것입니다.
그 2시간 30분에 걸친 나훈아님의 열연(熱演)가운데 ‘아 테스형!’은 단연 세인(世人)의 화제 거리이었지요. 세계 최초의 흑인 오페라 가수이자 미국의 위대한 여자 성악가 중 한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는 마리안 앤더슨이 있습니다.
그녀는 1925년 28세의 나이에 ‘뉴욕 필하모닉’이 주최하는 신인 콩쿠르에서 많은 경쟁자를 뒤로하고 1등으로 뽑혔습니다. 1935년에는 흑인 최초로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섰고, 이 공연을 본 거장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한 세기에 한 번 나올만한 소리를 가졌다며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39년 워싱턴 링컨 기념관 광장에서 진행한 무료 야외연주회에서는 7만 5천여 명의 청중이 몰릴 정도로 유명해졌습니다. 그런 그녀가 조그만 도시에서 공연을 갖게 되었을 때의 일화입니다. 가난한 한 흑인 소녀가 새벽부터 호텔에서 잡일을 하다가 너무 피곤한 나머지 그만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얼마 후 소녀가 눈을 떴을 때, 그녀 앞에 한 중년이 흑인 여성이 서 있었습니다. 그 여성은 소녀에게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너는 많이 외로워 보이는구나!” 그러자 소녀가 대답했습니다. “네, 오늘 그토록 보고 싶었던 마리안 앤더슨의 공연이 근처에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일을 해야 했기에 갈 수, 없었어요...”
그러자 여성은 소녀의 손을 잡으며 나지막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를 들은 소녀는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아주머니가, 마리안 앤더슨이군요.” 그녀의 노랫소리에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다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박수와 춤으로 화답하는 아름다운 장면이 연출됐지요.
요즘 트롯 스타들이 부르는 노래 한 소절이, 우리가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우리들이 행하는 작은 선행이, 누군가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로와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저마다 가지고 있는 재능을 외롭고 고단한 이웃들에게 보시(布施)하면 어쩌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코로나 19로 인한 암울한 사태에 가수 나훈아님이 출연료 한 푼 받지 않고 우리 국민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주고 용기를 북돋아 둔 것에 감사는 못할지언정 그를 끌어내 말 못할 고통을 주는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가수는 가수일 뿐입니다. 그 특성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그냥 그대로 두고 보는 것이 그에 대한 보답이 아닐 런지요?
가황 나훈아의 공연에 대한 후일담은 단연 뜨거운 감자인 것 같습니다. 나훈아가 일체의 출연료를 받지 않은 이유는 “돈을 받으면 하라는 대로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답니다. 대신 “제작비를 아끼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는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나훈아 급의 톱스타는 수억 원의 출연료가 책정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러한 예상을 뒤엎은 행보는 우리에게 큰 감동이었습니다.
나훈아의 업적을 기념하는 관련 관광사업도 박차를 가한다고 합니다. 그의 고향인 부산 동구 초량천 인근에 ‘나훈아 거리’를 조성해 나훈아를 기념하고 노래를 들을 수 있도록 꾸며질 예정이라네요. 그런데 일부 언론에서는 나훈아의 과거 가정사까지 들춰내며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고 합니다. 언제까지나 우리들은 이런 슬픈 자화상을 보아야 하는지 여간 씁쓸한 것이 아닙니다.
나훈아는 800여 곡의 노래를 직접 작곡, 작사한 진짜 실력파 예술인입니다. 그는 이번 공연의 인터뷰에서 훈장을 거절한 사실을 처음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평양 공연 초청도 거부했고, 심지어 삼성 이건희 회장의 파티 초청도 거절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어떤 권위나 정치적 위압에도 흔들리지 않고 ‘대중과 함께하는 가수’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지키겠다는 일관된 철학이 있는 대자유인으로 살아가기를 원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번 콘서트의 특이점은 기성세대뿐만이 아닌 청년 세대들에게도 파급력을 미쳤다는 사실입니다. 어마어마한 스케일과 섬세한 퍼포먼스가 어우러진 나훈아 씨의 공연은 무려 29%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녹화 당시 2시간 40분 동안 관현악단과 합창단을 포함한 무대인원(언택트 인원 포함)이 500여 명이었으며, 갈아입은 의상만 19벌, 부른 노래만 29곡이었습니다.
KBS와의 공연 계약 당시 약 3시간 동안 한 번의 광고도 넣지 않기로 약속한 후일담도 나훈아씨가 우리 국민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전 세계는 내일을 불안해하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도 우리는 하루하루 삶의 보람과 행복의 조각들을 모아 내일을 준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오늘을 견뎌내는 격려와 용기가 요구됩니다. 이번에 가황 나훈아는 그런 용기와 격려를 우리에게 보낸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아픔을 그 웃음에 묻고 내일이 두려운 일상입니다. 우리도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고’ 희망찬 내일을 바라보면 어떨 까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10월 26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