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인생에 빈틈이 없으면 숨이 막혀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생각에 사전에서 ‘빈틈’을 한 번 찾아보았습니다. ‘물체의 어느 부분이나 물체와 물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비어 있는 비교적 작은 공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허술하고 모자라거나 부족한 점’이라고 쓰여 있네요.

제주도의 돌담이 바람에 무너지지 않는 까닭은 이렇게 틈 때문이라고 합니다. 돌과 돌 사이에 드문드문 나있는 틈이 바람의 길이 되어 주기 때문이지요. 세찬 바람이 시멘트 담장을 무너뜨려도 제주의 돌담을 허물어지지 않는 이유 단 하나입니다. 돌담은 바람의 길을 막아서지 않는 한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런 돌담을 바람도 굳이 허물고 지날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최고급 카페트를 짤 때 아주 작은 흠을 하나 일부러 짜서 넣는다고 합니다. 이를 ‘페르시아의 흠’이라 부릅니다. 완벽한 것은 없다는, 그들의 철학 때문이지요. 미국 인디언도 구슬 목걸이에 흠이 있는 구슬 하나를 일부러 꿰어 넣습니다. 모든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인디언의 지혜라고 하네요. 이들은 그것을 ‘영혼의 구슬’ 이라고 부릅니다.

어떻습니까? 저는 그런 돌담 같은 사람이 좋습니다. 담장처럼 반듯하고 격이 있어 보여도 군데군데 빈틈이 있어 그 사이로 사람냄새가 새나오는 그런 사람이 얼마나 좋은가요? 사람이 꼭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완벽한 사람도 별로 없지요. 인생의 문제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걸림돌만은 아닙니다. 잘 다루면 빈틈이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홈런왕 베이브 루스는 3000개의 삼진을 당했지만 그때마다 홈런 치는 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어머니는 넘어져 울고 있는 아들에게 “오늘의 나쁜 일이 내일은 좋은 일이 될 거야”라며 축복했습니다. 문제는 씁니다. 속에서 쓴물이 올라와 인생을 쓰러뜨리기도 합니다.

우리네 인생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완벽함 따위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흠이 없는 사람은 진정한 인간미를 지닌 사람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흠이 없으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이 아닐 런지요? 사람의 몸도, 영혼도 흠이 없으면 숨조차 쉴 수 없습니다.

인간관계나 남녀 간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물리적 틈새가 아닌 정신적 틈새가 존재할 때에 남녀관계가 유지가 되는 것이지요. 내 마음에 빈틈을 내고 남자의 빈틈을 받아들이는 것이 세상의 고난에도, 어떤 위기에도 무너지지 않는 남녀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인 것입니다. 빈틈을 주고, 좀 부족한 듯 모르는 척해 주는 것이 남자를 살리는 비결이 아닐까요?

이렇듯, 틈이 있어야 햇살도 파고 듭니다. 빈틈없는 사람은 박식하고 논리정연해도 정(情)이 가질 않습니다. 틈이 있어야 다른 사람이 들어갈 여지가 있고, 이미 들어온 사람을 편안하게 합니다. 틈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의 창구입니다. 그래서 굳이 틈을 가리려 애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 열어 놓으면 좋겠습니다.

그 빈틈으로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들이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이렇게 빈틈은 허점(虛點)이 아니라 여유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먼저 적당히 빈틈을 보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그 빈틈으로 소박한 인정이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빈틈이 어쩌면 삶에 활력을 줄 것이 아닌지요?

난득호도(難得糊塗)라는 말이있습니다. 청(靑)나라의 정판교(鄭板橋 : 1693~1765)라는 사람이 ‘난득호도(難得糊塗)’를 삶의 철학으로 삼았다는 것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이 말은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이면서 살기도 힘들다’는 뜻이지요. 그는 자신이 쓴 시(詩)에서 이렇게 읊었습니다.

「총명해 보이기도 어렵지만/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어렵다./ 총명한데 바보처럼 보이기는 더욱 어렵다./ 내 고집을 내려놓고, 일보 뒤로 물러나면/ 하는 일마다 마음이 편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의도하지 않아도 나중에 복이 올 것이다.」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56장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나옵니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는 법이며, (아는 척)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 이목구비를 막고 욕망의 문을 닫으며, 날카로운 기운을 꺾고 혼란함을 풀고, 지혜의 빛을 부드럽게 하여 속세의 티끌과 함께하니 이것을 현동(玄同)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친해질 수도 없고 소원해지지도 않으며, 이롭게 하지도 않고 해롭게도 하지 못하며, 귀하게 할 수도 없고 천하게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천하에 귀한 것이 된다.」

자신의 뛰어난 덕성(德性)을 나타내지 않고, 자기의 지덕(智德)과 재기(才氣)를 감추며, 세상 사람들과 소통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우리 조금 바보 같이 살고, 무조건 베풀며, 세상과 우리 덕화만발 가족을 위하여 맨발로 뛰는 그런 인생을 살면 얼마나 좋을 까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10월 27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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