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도동서원. 은행나무와 토담이 빚어낸 도동서원의 가을풍광

이른 아침 도동서원주차장에서 바라 본 도동서원전경/ 서삼봉 기자
이른 아침 도동서원주차장에서 바라 본 도동서원전경/ ⓒ서삼봉기자

[대구=뉴스프리존] 서삼봉 기자 = 지난 일요일 가을비가 왔다. 오늘은 지인들과 ‘도동서원’으로 가기로 한 날이다. 샛노란 은행나무 잎이 그 새 다 졌으면 어쩌나하고 마음을 졸이며 새로 개통된 다람재터널을 지나 도동서원에 도착했다. 도동서원은 한훤당 김굉필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퇴계 이황은 김굉필을 두고 '동방도학지종(東方道學之宗)'이라고 칭송했다. 1607년 서원을 '도동(道東)'으로 사액한 것도 ‘공자의 도(道)가 동(東)으로 왔다’또는‘성리학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86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에도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로, 병산서원·도산서원·옥산서원·소수서원과 더불어 5대 서원으로 꼽힌다.

450년 된 도동서원 은행나무.  '김굉필 나무'라고도 불린다./  서삼봉기자
450년 된 도동서원 은행나무. '김굉필 나무'라고도 불린다./ ⓒ서삼봉기자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유명한 은행나무이다. 임진왜란으로 불 탄 서원을 중건한 한훤당의 외손 한강 정구선생이 심었다고 하니 400년은 거뜬히 넘었으리라. 가끔씩 떨어지는 은행잎에 맑은 가을햇살이 부딪혀 반짝인다. 도동의 은행나무는 몇 번을 봐도 항상 감탄을 자아낸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교육기관인 향교와 서원에는 대부분 은행나무가 있다. 이처럼 선비들이 학문하는 곳에 은행나무를 심는 것은 유학에서 말하는 행하지교(杏下之敎:은행나무 밑의 가르침)와 관련이 있다. ‘행하지교’란 옛날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말이다. 은행은 가을에 많은 열매를 맺는다. 은행나무가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제자들도 배움의 결실을 많이 맺기를 기원함이다. 은행잎은 벌레가 싫어한다. 책이 귀하던 옛날, 선비들이 가을날 노란 은행잎을 책속에 넣어두면 책벌레가 오지 않는다하니 이 또한 은행의 효용이다.

서원 입구의 수월루.  휴게소 역할 건물로 이 곳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의 풍광은 장관이다./  서삼봉기자
서원 입구의 수월루. 휴게소 역할 건물로 이 곳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의 풍광은 장관이다./ ⓒ서삼봉기자

바닥에 깔린 노란 융단을 밟고 서원 쪽을 바라보면 맨 먼저 보이는 건물이 ‘수월루’다. 문루인 수월루는 고향을 떠나 와 공부하던 유생들이 답답한 마음을 풀던 곳으로 2층 누각의 휴게실이다. 서원이 들어설 때는 없었던 건물로 1855년에 창건되었다가 1888년(고종 25년)에 불타버려서 1973년에 중건되었다.‘물위에 비친 달빛으로 글을 읽는다.’는 뜻으로 난간을 두른 2층 누마루에 오르면 푸른 강물과 서원 주변의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선시대에는 세 가지가 서원내 출입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여자, 사당패, 그리고 술이다. 그런데 이 곳 수월루에는 가끔 술의 반입이 허용되었다고 한다. 서원에서 과거급제자가 나오면 이 곳에서 잔치를 열었다. 축하연이 펼쳐지면 수월루에는 5개의 달이 뜬다. 하늘의 달, 낙동강물의 달, 술잔속의 달, 마주앉은 친구 눈에 어린 달, 그리고 내 마음속에 마지막 달이 뜬다고 한다.

서원 중심건물인 중정당으로 가는 정문.  저절로 겸손과 예의를 갖게 만들었다고 한다./  서삼봉기자
서원 중심건물인 중정당으로 가는 정문. 저절로 겸손과 예의를 갖게 만들었다고 한다./ ⓒ서삼봉기자

수월루를 지나 서원의 중심건물인 강당으로 가려면 내삼문격인 ‘환주문’을 거쳐야 한다. 환주(喚主)는‘내 마음의 주(主)가 되는 근본을 찾아 부른다.’는 뜻을 가졌다. 환주문에는 연꽃이 4송이 있는데 그 중 문지방이 있어야 할 자리에 여닫이문을 고정시키는 꽃 봉우리가 있는 것이 독특하다. 연꽃은 불교를 상징하는 것 뿐 아니라 유교에서는 사색당파에 휩쓸리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는 군자를 뜻하기도 한다. 갓 쓴 유생이라면 반드시 고개를 숙여야 들어설 수 있는 작고 낮은 문과 지붕위의 선비를 상징하는 상투 튼 모양의 절병통은 예를 갖춰서 겸손한 마음으로 들어오라는 깊은 뜻이 담긴 듯하다. 또 절병통은 누수방지용으로 쓰이기도 한다고 한다.

보물로 지정된 도동서원의 강학공간. 높고 다채로운 기단과 기둥 위쪽 흰 창호지(上紙)가 특이하다./
보물로 지정된 도동서원의 강학공간. 높고 다채로운 기단과 기둥 위쪽 흰 창호지(上紙)가 특이하다./ ⓒ서삼봉기자

보물 제350호인 도동서원의 ‘중정당’은 행사와 교육의 중심 건물이다. 중정(中正)은 음과 양이 조금도 지나치거나 모자람 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중용의 상태 즉 ‘중도를 지켜라’는 것을 뜻한다. 중정당에는 도동서원 현판이 두 개 있다. 안에 걸려있는‘도동서원’현판은 조선 선조의 명을 받아 당대의 명필인 배대유가 쓴 글씨라고 한다. 또 강당 처마 아래에 걸려있는 현판은 생전 퇴계 이황이 10개 서원에 현판을 새기고 싶어 하셨던 뜻을 새겨 그 제자들이 선생의 글자를 집자한 것이다.

크기와 모양이 다른 돌들을 아름답고 튼튼하게 쌓은 독특한 모양의 기단. 가운데 용모양 석누조는 건물을 화재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석물이다./ 서삼봉기자
크기와 모양이 다른 돌들을 아름답고 튼튼하게 쌓은 독특한 모양의 기단. 가운데 용모양 석누조는 건물을 화재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석물이다./ ⓒ서삼봉기자

높게 쌓은 중정당의 기단도 특이하다. 쌓은 석재는 크기와 색깔이 다른 것을 조각보처럼 잘 끼워쌓아서 단단하며 큰 건물을 견디기에 충분하고 안정감이 있고 세련되어 보인다. 축대 앞쪽에는 빗물이 흘러내릴 수 있게 용, 거북 모양의 석누조 장식이 있다. 일반 건축물에서 잘 볼 수 없고 궁궐이나 성곽 등에서 볼 수 있다. 용은 출세와 물을 관장하는 것을 의미하고 거북은 장수를 상징하며 서원에 모신 분들의 학문과 사상을 오래도록 이어 받으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또 축대 왼쪽은 다람쥐의 꼬리가 아래로, 오른쪽은 위로 향하는 것이 ‘동입서출’을 상징한다.
중정당 바로 앞의 ‘정료대’는 일종의 조명시설로 제사 때 이 판석 위에 관솔이나 기름통을 올려놓고 불을 밝혔다고 한다. 보통 화재의 위험 때문에 뜰아래 있으나, 이 곳은 뜰 위에 있다는 것이 다른 서원과 다르다. 기단이 높아 뜰아래 불빛으로는 마루를 밝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둥에 흰 창호지를 바른 것은 한훤당 선생의 학통을 이어받은 수위서원임을 표시하는 것으로 전국 650여개 서원 중 이곳이 유일하다. 중정당 서쪽에는 ‘생단’이 있다. 제관들이 직접 향사에 쓰일 제물을 검사하는 곳이다. 다른 곳의 생단과 달리 다리가 있고 판석 전체가 돌아간다.

최초로 보물로 지정된 토담. 돌과 기와로 만들어져 아름다움과 실용성이 조화를 이룬 전통적인 담장이다./  서삼봉기자
최초로 보물로 지정된 토담. 돌과 기와로 만들어져 아름다움과 실용성이 조화를 이룬 전통적인 담장이다./ ⓒ서삼봉기자

강당을 둘러싼 담장은 기와를 이용해 쌓은 맞담으로 구성하여 아름답다. 강당의 흙돌담은 자연석과 암수기와의 조화로 아름다우면서도 간결하다. 수기와의 둥근 막새는 하늘 즉 남자를 상징하고 암기와는 사각으로 땅 즉 여자를 상징하여 생명력과 조화로운 우주를 나타낸다. 우리나라 최초로 토담이 보물로 지정된 전통 깊은 조선 중기 서원의 건축물로 잘 보존해야 할 문화재이다.

암수거북 귀부가 독특한 한훤당 김굉필 신도비. 평상시 공개하고 있지 않다./  서삼봉기자
암수거북 귀부가 독특한 한훤당 김굉필 신도비. 평상시 공개하고 있지 않다./ ⓒ서삼봉기자

내려오는 길에 오늘 안내해주신 해설사선생님의 배려로 환훤당의 신도비를 직접 보는 횡재를 했다. 훼손의 우려로 일반인들에게 공개가 잘 되지 않는다. '신도비(神道碑)'는 임금이나 종2품 이상 고관의 무덤 앞이나 근처 길목에 세워 그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하부의 귀부가 특이하다. 보통 귀부는 한 마리 거북모양인데 한훤당의 신도비 귀부는 자연석으로 암수 거북을 조각하였다. 서원 좌측으로 약 800m 산길을 오르면 선생과 가족들의 묘가 있다. 넷째아들 내외와 둘째 딸, 한훤당, 그리고 손자의 묘가 차례대로 있다. 딸은 출가외인으로 여기던 조선시대에 시집보낸 딸이 선생곁에 묻힌 것을 보면 환훤당의 딸에 대한 마음이 각별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떠나기 전 도동서원 모습. 사진 촬영하는 사람들과 많은 방문객들로 붐빈다./  서삼봉기자
떠나기 전 도동서원 모습. 사진 촬영하는 사람들과 많은 방문객들로 붐빈다./ ⓒ서삼봉기자

정오가 다가오자 서원은 많은 사람들로 훨씬 더 생기가 넘친다. 방금 도착한 노랑버스에서 노란가방을 맨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은행나무 근처로 다가가자 은행잎과 뒤섞여 이채로운 풍광이 만들어진다. 자연과 사람들이 만들어 낸 따사로운 가을을 뒤로 하고 낙동강을 따라 집으로 향한다.

귀가 길 낙동강변의 갈대숲.  갈대는 또 다른 가을정취를 느끼게 한다./  서삼봉기자
귀가 길 낙동강변의 갈대숲. 갈대는 또 다른 가을정취를 느끼게 한다./ 서삼봉기자

낙동강변에 펼쳐진 갈대숲에 또 다시 발길을 멈춘다. 길 가에 차를 멈추고 일렁이는 갈색의 가을강변을 잠시 마음에 담는다. 공자의 도(道)가 동(東)으로 왔다고 했던가. 가을은 도동서원으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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