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은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아픔의 현장인 전남 진도 팽목항을 전격 방문했다. 그러나 팽목항에 머물러 있던 희생·실종자 가족들은 대통령과의 만남을 거부했고, 서울 도심에서는 보수·진보 단체 간 서로 다른 모습의 집회로 충돌했다. 세월호 참사 발생 1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서로 다른 주장과 이해관계로 얼룩져 세월호 참사 1주기는 화해와 치유의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반목과 갈등으로 점철됐다.

[연합통신넷= 이형노, 장동민기자] 박 대통령은 이날 팽목항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국민 발표문을 통해 "이제 선체 인양을 진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필요한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 선체 인양을 신속하게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인양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던 지난 6일 발언에서 보다 진전된 내용으로,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유족들을 적극 보듬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은 "아직도 사고 해역에는 9명의 실종자가 있다. 정부는 실종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다해나갈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정부는 사고 이후 유가족에 대한 긴급 지원을 포함해 다각적인 지원 노력을 기울여왔다"며 "앞으로도 유가족과 피해자들의 고통을 덜어드리기 위해, 피해 배·보상도 제때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팽목항을 지키고 있던 세월호 희생·실종자 가족들은 박 대통령의 방문 소식에도 불구하고 팽목항에서 예정된 '세월호 사고 1주기 추모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들은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폐지, 세월호 인양 등 유가족들의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정부에 대한 항의 표시로 팽목항에 설치된 합동분향소를 폐쇄하고 일찌감치 현장을 떠났다. 박 대통령은 합동분향소 출입구가 막혀 있자 발길을 돌려 일부 유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임시거처를 둘러봤다.

정부합동분향소가 차려진 경기도 안산에서도 반목과 불신의 풍경은 이어졌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오전 합동분향소를 찾았지만 유족들이 거칠게 항의하면서 조문을 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유족 20여 명은 분향소 앞에서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무력화하는 정부시행령 전면 폐기하라", "철저한 진상규명, 온전한 선체 인양, 실종자를 가족품으로" 라고 적은 현수막을 들고 이 총리를 막아섰다.

안산시내에서는 노란 리본을 부착한 택시와 버스 등 2800여 대가 곳곳을 누비며 떠나간 영령을 위로했다.

서울에서는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등이 마련한 범국민 추모제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대규모로 진행됐다. 광화문광장 세월호 농성장은 이른 아침부터 추모객 행렬로 장사진을 이뤘다.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 분향소를 방문한 시민들은 저마다 국화 한 송이씩 헌화하고 향을 피우며 희생자 넋을 기렸다.

이날 오후 분향소를 방문한 회사원 박 모씨(31)는 "매일 이곳을 오가지만 어느 순간부터 외면하기 일쑤였는데, 오늘만큼은 진심어린 마음으로 희생자를 추모하고 싶다"며 고개를 숙였다.

서울 각지 대학생들도 추모행렬에 동참했다. 서울 각지에서 모인 500여 명의 대학생들은 오후 3시 30분 경희대·이화여대 정문을 출발해 3시간가량 청계광장을 향해 행진하며 희생자를 추모했다.

종교계에서도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행사가 열렸다. 이날 오후 6시 염수정 추기경의 집전하는 추모미사에는 1000여 명의 신자들이 명동성당을 가득 메웠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관계자는 "초청에 응해준 유가족 세 분을 모시고 희생자와 실종자의 안식을 기원하는 미사를 집전했다"고 전했다.

오후 7시에는 서울광장에서 범국민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주최로 열린 이 행사에는 세월호 인양 퍼포먼스 등이 진행되는 등 박원순 서울시장도 참석해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이날 서울광장에서 만난 고려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순수하게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목적에서 본교 학생 70명과 참여했다"고 말했다.

순수한 추모 목적을 넘어 정치적 성격이 다분한 집회도 잇따랐다. 이날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은 광화문 일대에서, 보수적 성격의 자유청년연합은 세종로 일대에서 '세월호 유족 빙자 중단 촉구집회'를 열었다.

서울역에서 세월호 참사 플래시몹을 펼친 민주노총은 이날 특별성명서를 통해 "정권은 진실이라도 꺼내달라는 사람들에게 차벽을 세우고 최루액을 뿌려대고 불법 운운하며 유가족과 시민들을 잡아갔다"며 "정권 비판을 막을 속셈으로 보상금으로 유가족을 모욕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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