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圓)의 진리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원의 진리’를 모르면 진리를 모르는 것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원의 진리를 깨쳐야만 합니다. 이 진리를 깨치지 못하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중생(衆生) 탈을 벗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은 말과 글의 분별이 끊어진 자리입니다. 있음과 없음을 초월한 삶, 죽음의 출입문, 즉 궁극의 자리인 바, 천지‧부모‧동포‧법률의 본원(本源)이요, 모든 부처님과 성현, 범부와 중생의 성품(性品)입니다. 그래서 능히 불변(不變)의 진리와 변화의 진리를 이루는 자리이지요.

불변으로 보면 항상 없어지지 아니하는 여여(如如)한 무량세계가 전개됩니다. 변화로 보면 우주의 성주괴공(成住壞空)과, 만물의 생로병사와, 태란습화(胎‧卵‧濕‧化)네 가지 생령(生靈)들의 마음과 몸의 작용을 따라, 여섯 길로 변화를 시킵니다. 그래서 혹은 진급으로, 혹은 강 급(降級)으로, 혹은 은혜로부터 해(害)로, 혹은 해에서 은혜로, 이와 같이 무량세계를 전개합니다.

그래서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이 ‘원의 진리’를 본받아서, 마음과 몸을 원만하게 수호(守護)하는 공부를 하며, 또는 일과 이치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를 하며, 또는 마음과 몸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지성(至誠)으로 하여, 진급이 되고 은혜는 입을지언정, 강 급이 되고 해독은 입지 아니해야 ‘원의 진리’를 깨쳤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의 진리를 증득(證得)하기 위해서는 수행을 통해 알아지는 것이지요. 즉 관조(觀照)하는 것입니다. 설교를 통해 알거나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원의 틀에서 벗어나야 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 경험, 다른 사람의 해석을 가지고는 이 ‘원의 진리’를 분석을 할 수가 없습니다.

직관(直觀)을 해야 됩니다. 생각을 멈추고 보는 것이 직관입니다. 비춰보는 것이지요. 지혜로 증득해야 됩니다. 오직 수행을 통해 스스로 깨쳐야 ‘원의 진리’를 증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의 진리’를 수행할 때에는 어느 일정한 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尺)로 재지 않는 것입니다.

어느 절의 주지스님이 마을로 나가시면서 마당 한 가운데에 큰 원을 그려놓고는 동자승을 불러서 말했습니다.

“내가 마을을 다녀왔을 때, 네가 이 원 안에 있으면 오늘 하루 종일 굶을 것이고, 원 밖에 있으면 이 절에서 내쫓을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동자승은 난감했습니다. ‘원’ 안에 있자니 가뜩이나 배가 고픈데 하루 종일 굶어야 할 것이고, ‘원’ 밖에 있자니 절에서 내쫓김을 당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까요.

여러분은 이런 경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냥 하루 종일 굶는 길을 선택해야 하나요, 아니면 그냥 절을 나가야 할까요? 몇 시간 후 주지스님이 돌아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동자승은 하루 종일 굶을 필요도 없었고, 절에서 내쫓김도 당하지 않았습니다.

과연 동자승은 어떤 선택을 했던 것일까요? 한참을 고민하던 동자승은 마당 한구석에 놓인 빗자루를 가지고 와서는 스님이 그려 놓은 ‘원’을 쓱쓱 지워 버렸습니다. ‘원’이 없어졌으니 ‘원’ 안에 머무는 것도 아니고, ‘원’ 바깥에 머문 것도 아니지요.

그렇습니다. 원을 없앰으로 자유로워진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누구나 이러한 ‘원’을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물질이라는 원, 명예라는 원, 욕심이라는 원, 미움이라는 원, 사랑이라는 원, 그밖에 여러 가지 원으로 인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 ‘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그 ‘원’을 지우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정 관념이라는 ‘원!’ 이 ‘원’을 과감하게 지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변하기 어려운 게 바로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만큼 자신이 살아온 세월동안 자신만의 울타리에 갇혀 생각해온 것들을 바꾸기란 쉽지 않은 것입니다.

나에게도 누가 와서 나의 잘못된 것들을 이야기 한다면 긴장, 거부, 방어, 당황 등의 반응과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나 핑계를 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 부실 수 있는 건 타인이 아닌 바로 자신입니다. 그런 고정관념을 없애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과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 자연스럽게 형성된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에 배움과 수행을 통해 사고의 틀을 넓혀야 합니다.

자! 그럼, 이 순간부터 우리 고정관념을 버리고, ‘원의 진리’를 깨치고 살면 모든 근심 걱정 다 사라지고 행복을 누리고 살 것이 아닌지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11월 1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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