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이 시는 저 유명한 양사언(楊士彦(1517~1584)의 시조입니다. 양사언의 호는 봉래(蓬萊)이지요. 서예가로서 안평대군, 김구, 한석봉과 더불어 조선 전기의 4대 명필로 손꼽히는 분입니다. 지방관을 두루 역임했으며, 자연을 사랑하고 산수를 즐겨 금강산을 자주 왕래하였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의 호가 ‘봉래’인지도 모릅니다.

이 시는 너무도 잘 알려진 시조인 동신에, 격언처럼 교훈적으로 자주 인용되는 시조입니다. 우리가 노력만 하면 안 될 일이 없다는 뜻이지요. 꾸준한 노력을 강조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진리에 합치되는 신념이 있고, 그것을 실천하려는 강인한 의지가 있으면, 이루지 못 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보통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극기, 인내, 감투(敢鬪) 등의 정신력과 아울러 육체적인 건강이 뒷받침 되어야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가 살면서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일은 하나같이 어렵습니다. 이것은 우리 삶에서 불변의 진리이지요.

그래서 우리 대부분은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면서 가끔은 지난 일을 후회하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원망하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나를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소위 금수저들과 견주어 살아가려면 결국은 남다른 공(功)을 투자하는 방법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한 번 할 때 우리는 두 번 하고, 그들이 두 번 할 때 우리는 네 번 하며, 그들이 놀 때, 우리는 조금 더 땀 흘리고, 그들이 잘 때 우리는 조금 더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일찍이 <지성여불(至誠如佛)>의 원칙을 세워 놓고 달려왔습니다.

지성이라 함은 지극한 정성이라는 말입니다. 정성은 처음과 끝이 한결같은 것이지요. 그래서 지성이면 감천(感天)이고, 지성이 곧 부처이며, 지성은 신(神)과 같은 위력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많이 둔하고,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가진 것도 별로 없는 완전 흙 수저이기 때문에 정성으로 승부하는 수밖에 살아 나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무슨 일을 시작하게 되면 처음부터 남들보다 몇 배 더 뛸 각오를 하고 시작합니다. 아예 그렇게 생각하고 무슨 일을 시작하면 마음이 편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비슷비슷한 고비에서 일을 멈춥니다. 우리가 일을 멈추기 전까지는 성공한 사람이나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나 노력하는 량과 진도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과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멈춰야 하는 그 지점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보통사람은 힘들면 그때 멈추거나 포기 합니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은 그때 약간의 괴로움을 더 감내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멈춤이 없습니다. 가다가 못 가면 실패 밖에 오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고난이 있어도 묵묵히 쉼 없이 달려가는 것입니다.

저는 원불교에 입교한지 40년이 가까워 옵니다. 일원대도(一圓大道)에 귀의한 그날부터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법회에 빠져 본 일이 없습니다. 입교 첫해부터 10년간 100일기도에 개근을 했습니다. 원불교의 성경인 《원불교 전서》를 303번 봉독(奉讀)을 마쳤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눈에 이상이 생겨 안타깝게도 이제는 더 이상 읽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원불교 여의도교당 회보>를 창간하고 꼬박 8년 6개월을 혼자 발간했습니다. 또한 『원불교 청운 회』를 비롯한 『원불교 문인협회』 『원불교 모려 회』 등 모든 조직에 봉사하면서도 단 하루도 게으름을 피워 본적이 없습니다. 카페 《덕화만발》을 개설하고 만 12년이 지났습니다. 지금까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다른 분이 재물이나 명예로 조직을 이끌어 왔다면, 저는 온 몸을 던져 일해 왔습니다. 바로 <지성여불>의 정신으로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저의 노력을 밝히는 것은 제 자랑을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지극한 정성을 다해 일을 하면 못 이룰 일이 없음을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무슨 일을 시작하여 한 가지도 그르침이 없을 때에는 그 일을 잘 해보려는 성의가 계속 되지요. 그러다가 중간에 혹 한 두 번 실수를 하고 보면 그만 본래 마음을 다 풀어 버리고 되는 대로 하는 수가 허다합니다.

이것은 마치 새 옷을 입은 사람이 처음에는 그 옷을 조심하여 입다가도 때가 묻고 구김이 지면 그 주의를 놓아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혹 어떠한 실수를 할지라도 그것을 전감 삼아 미래를 더욱 개척은 할지언정 거기에 뜻이 좌절되어 당초의 대중을 놓아 버리면 안 됩니다.

태산이 높다 하되 못 오를리 없습니다. 차라리 작은 실수가 도리어 큰 성공의 바탕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역경을 당하여 좌절 할 때도 <지성여불>의 정신으로 달려가야 하지 않을 까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11월 20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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