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명대 김경일교수는 그의 저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에서 정치인은 ‘요괴인간’이요, 기자들은 ‘고급 룸펜’들이며, 학자들을 ‘저열한 인간’이라고 비판했다. 그렇다고 모든 정치인, 모든 기자, 그리고 모든 학자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말이란 이렇게 거두절미하면 오해를 받기 십상팔구다. 그러나 정치인이, 기자가, 학자가 왜 그런 소리를 듣게 됐으며 수많은 지식인들이 세상을 얼마나 오염시키고 있는지에 대한 냉철한 비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김경일교수의 날선 비판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봄처녀 오시누나 새 풀 옷을 입으셨네/하얀 구름 너울 쓰고 구슬 신을 신으셨네/꽃다발 가슴에 안고 누굴 찾아오시는고.”

노산 이은상이 22살에 쓴 「봄처녀」(1925) 가사이다. 한때 음악 교과서에 실려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작품이다. ‘성불사의 밤’, ‘장안사’, ‘그 집 앞’, ‘옛 동산에 올라’, ‘가고파’ 등 노산의 작품은 하나같이 국민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이런 노산이 4·19의 도화선이 된 3·15의거를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 ‘무모한 흥분’, ‘불합리, 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라며 학생들의 정의로운 외침과 희생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의 공화당 창당선언문을 작성해 주는가 하면 10월유신을 ‘한국적 민주주의’로 박정희를 ‘민족의 영도자’로 비문에 남겼다. 박정희를 ‘이순신과 세종대왕을 합친 위인’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5월 광주를 피로 물들이면서 등장한 살인마 전두환을 ‘한국의 특수상황에서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잡지에 기고까지 했다.

<예술과 외설 어떻게 다른가>

예술과 외설은 어떻게 다른가? 고야의 <나체의 마야>는 예술일까 음란물일까? 파리 오르세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세상의 근원>이나 오르세이 미술관에 전시된 구스타프그루네의 <세상의 기원>은 예술인가 음란물인가? 광주 배이상헌 교사는 자신의 도덕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보여준 ‘억압받는 다수’는 ‘육아를 책임진 남성이 여성들에게 성희롱과 성폭행을 당하고, 여성 경찰관이 가해여성 편에서 수사하는가 하면, 여성 배우들이 상의를 탈의한 채 공공장소를 거니는 모습’ 등이 담겨 있다. 배이상헌교사는 성평등교육인가 아니면 학생들에게 음란물을 보여준 것인가?

사진 : 억압받는 다수의 한 장면
사진 : 억압받는 다수의 한 장면

우리헌법 제 22조는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고 했다. 그런데 충남 서천 비인중학교 미술 교사 김인규씨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생명을 잉태한 여성과 생명을 준 남자의 몸이라며 부부의 누드를 자신의 홈피에 올렸다는 이유로 파면당하기도 했다. 양성평등을 가르치기 위해 전세계에서 1300만명 이상이 보았다는 영화 ‘억압받는 다수’가 음란물이라며 교단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미술교사가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자기 부부가 임신한 모습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게 음란물로 매도당해 법정에서 심판을 받았다. 예술의 가치를 법관의 시각에 따라 제단하고 판단할 수 있는가?

‘누워서 거울을 보고 있는 벗은 몸의 아프로디테와 그 곁에서 시중들고 있는 벗은 몸의 에로스가 그려진 그리스·로마신화에 관한 누드’는 아름답게 보이면서 미국 여배우의 속옷 광고 사진은 왜 야하게 보이는가? 똑같은 누드 그림을 보았는데 왜 한쪽의 그림에서는 아름다움을, 다른 한쪽의 그림에서는 왜 야함과 창피함을 느꼈을까? 예술작품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과 미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지만, 음란물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성적 충동이나 수치심을 일으키게 하기 때문이다. 예술과 외설의 차이다. 한쪽은 ‘미적 표현이나 성평등을 위해서...’이고 다른 한쪽은 돈벌이를 위해서이다. 배이상헌과 김인규 교사는 돈을 벌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학생들에게 성적 충동을 일으키게 하기 위해서인가?

<예술이 권력과 자본에 예속되면...>

우리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시인과 화가, 사진작가, 소설가, 영화인들이 권력의 시녀가 되어 세상을 병들게 했다. 가난과 병고를 견디면서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표현하기 위해 인류에게 감동을 안겨 준 예술가들이 있는가 하면, 권력과 자본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타락한 예술가들의 삶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모윤숙, 최남선, 서정주, 이은상, 유진오, 정비석, 현재명, 홍난파 노천명… 민족을 배신하고 자본과 권력에 타협해 예술을 외설로 타락시키는 사이비 예술인들이 만드는 세상. 이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교육자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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