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이 멀지도 않은 이명박근혜 시절 국정원이 자행한 자신에 대한 사찰파일을 받아냈다.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시민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했던 빅브라더의 존재가 다시금 떠올라 섬뜩하다.

문득 지난 2017년 10월 어느날 곽노현 박재동 명진 등이 백기완 선생 모시고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주최한 ‘열어라 국정원, 내놔라 내파일 시민행동’ 기자회견에 참석해 우렁찬 목소리로 성명서를 낭독하던 기억이 새롭다. (내가 원래 목소리가 좀 크다)

3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곽 교육감은 인권위원회 사무총장으로 재직할 때의 일화들을 회상하며 적어도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에는 자신에 대한 사찰파일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원은 달랐습니다. 당시 국정원장은 유명한 인권변호사 고영구 변호사셨습니다. 지금 이 순간 갑자기 고 원장님을 따로 뵙고 국정원을 직권조사할 계획이니 협력해 주십사 부탁하던 패기만만했던 15년 전의 제가 기억나네요. 그저 웃기만 하시던 온화한 고 원장님도 기억나고요. 당시 노 대통령께서는 인권위발로 시끌벅적한 소식이 들려도 인권위는 본래 그런 일 하라고 만든 기관이라고 인권위를 두둔하는 입장을 견지하셨다고 들었습니다.”라고 회고하고 있다.

또 많은 이들이 이번 사찰파일 공개를 놓고 “박지원 원장 취임 이래 국정원이 여러 가지로 바람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한껏 기대치를 높이고 있다. 

사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많은 조직의 장이 바뀌기 마련인데 특히 권력기관의 장은 정권의 성패 여부를 가릴 만큼 중요하다. 아무리 정권의 성격에 맞지 않는 기관일지라도 장을 바꾸면 기관 자체를 정권의 입맛에 맞게 바꿀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노동부를 없애는 것보다 가장 친기업적이고 반노동적인 인사를 장관에 임명하는 것이다. 그런 예가 무수히 많겠지만 나는 이명박 정권 들어서 국가인권위원장에 임명된 현병철을 최악의 사례로 기억한다. 그런데 국정원 같은 조직은 장이 바뀐다고 그 조직 자체가 바뀌는 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임시방편일 뿐이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 그리고 지금의 국정원을 보면 마치 쇠줄로 목을 매인 사나운 맹수를 연상한다. 지금은 얌전히 있지만 언젠가 저 쇠줄이 풀리면 사납게 뛰쳐나가 온 세상을 휘저으며 사람들을 물어뜯을 맹수 말이다.

그러므로 권력기관은 장을 바꿀 뿐 아니라 법과 제도를 바꾸고 운영시스템을 바꾸고 조직 문화까지 바꿔야 한다. 구성원 전체를 바꿔야 한다. 구성원을 물리적으로 바꿀 수 없으니 그 머릿속을 바꿔야 한다. 맹수를 집 잘 지키는 개로 완전히 순화시켜야 한다.

끝내 그 가축화 작업(늑대를 개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결국 그 맹수를 죽여 후환을 없애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지금 얌전히 있는(척 하는) 국정원이나 군사안보지원사령부(기무사)를 보면 착잡하기 짝이 없다.

쇠사슬에 묶인 채 5년이 아니라 10년, 20년쯤 지나면 저절로 집 잘 지키는 개로 변신할 지는 모르지만 “저것이 언제 목줄이 풀려 뛰쳐 나갈지” 여전히 두려운 마음이 든다.

하기야 지금도 목줄이 풀린 채 아무나 물어뜯을 듯 마당에서 난동을 부리는 또 다른 맹수를 안방에서 조마조마 지켜보고 있는 중이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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