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석촌동 세 모녀 자살사건이나 최근 방배동에서 일어난 고독사 엄마·노숙 장애아들 사건을 접하면 누구나 가슴이 아프다. 그들과 아무 인연이 없는 데도 그렇다. 우물가를 기어가는 아기를 보고 뛰어가 냉큼 안아 드는 사람의 마음과 같다. 측은지심은 사람이 되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2.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일임에도 사회적 정의가 지켜지면 기쁘고 공정하지 않다고 여겨지면 분노한다. 시비지심을 그렇게 이해한다.

3. 공직자(정치인, 검사, 판사 포함)는 일반인들 보다 훨씬 더 높은 도덕성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자신에게 부여된 공적 권한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지 말고 늘 사회의 가난하고 어두운 부분을 비치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살펴야 한다.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써야하고 때로는 자신의 개인적 이익까지 희생하기도 한다.

4. 나는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그를 지지하는 이들에게서 이런 높은 도덕성을 발견한다. 추 장관은 옳은 일에 매진했으며 많은 평범한 시민들 역시 개인적 이해관계가 없는 ‘검찰개혁’이 단지 옳다는 이유만으로 추 장관을 지지했고 외롭고 힘들어 하는 그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5. 추 장관이 사의를 표했다. 공수처 법안이 통과되고 윤석열에 대한 징계 절차가 마무리됐다고는 하지만 이제 겨우 검찰개혁이 첫걸음을 뗐을 뿐이다. 그의 사의 표명이 많이 아쉬운 이유다. 지치기도 했을 것이고 두렵기도 했을 것이다. 최근에는 남편이 몹시 아프다는 말도 들었다. 

6. 그러나 나는 이 역시 그가 대의를 위해 소리를 희생한, 높은 도덕성의 발현이라고 생각한다. 무소불위 검찰을 개혁하는 건곤일척의 싸움이라는 본질은 가려지고 오로지 (언론에 의해) 윤석열과의 개인적 갈등이라는 면만 불거져 국민들의 피로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자신을 던짐으로써 국면 전환을 꾀한 것이다. 큰 꿈을 가진 정치인이라면 완벽한 승리를 얻은 다음에, 좀 더 폼나는 시점에 사퇴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는가. 그럼에도 그는 개인의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대국적 견지에서 과감히 물러서기로 했다. 지금은 자신이 개인적으로 가진 큰 꿈마저 포기한 듯하다. 나는 이를 사양지심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7.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본적인 도덕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 불쌍히 여기고, 옳고 그름을 가리고, 부끄러움을 알고, 양보하고 물러날 줄 아는 마음들이 다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됐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 부끄러움을 모를 리 없으며,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하는 사람이 순순히 양보할 리 없다는 말이다. 다만 어떤 이에게는 이런 도덕성들이 강하게 나타나고 어떤 이들에게는 약하게 나타나는데, 간혹 도덕성이란 것 자체를 아예 찾아 볼 수 없는 사람도 있다.

8. 내가 보기에 불행하게도 윤석열 검찰청장의 경우가 그렇다. 검찰권력의 숱한 희생자들에게 사과 한 마디 없이 ‘검찰권력 수호’만을 외치는 ‘검찰주의자 윤석열’에게서 측은지심을 찾아 볼 수 있는가. 시비지심을 찾아 볼 수 있는가. 추 장관이 사의를 표했음에도 끝까지 징계 불복을 외치며 자리를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그에게서 사양지심을 찾아 볼 수 있는가. 그의 처, 장모에게 쏟아지는 온갖 범죄혐의, 그에 대한 수사를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으면서도 판사를 사찰하고 그로 인해 징계를 받은 검찰 조직의 수장에게서 ‘부끄러움’(수오지심)을 찾을 수 있는가.

9. 도덕성을 잃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그런 것이 아니라 권력과 부를 독차지하면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윤 청장도 처음부터 도덕성이 마비된 인물이 아니라 평생 검찰주의자로 살아오면서 저리 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즉 윤 청장은 검찰 조직이 가진 모든 악(오만 독선 탐욕 등)의 총화가 돼버렸다.

10. 그러므로 추 장관은 윤석열 개인이 아니라 윤석열이 상징하는 ‘검찰의 악’과 싸운 것이다. 무릇 모든 개혁이란 법과 제도의 정비, 인적 청산이란 투 트랙으로 이루어지는 바 윤 청장은 검찰 내의 모든 악한 힘을 동원해 제도개혁에 저항했을 뿐 아니라 그 스스로 인적 청산의 0순위가 돼 버린 것이다.

11. 이치가 이러한데도 언론은 ‘검찰개혁’이라는 이 시대의 명제가 걷는 이 지난한 과정을 추-윤 대결로 축소하다가 이제는 (추 장관 사퇴를 계기로) 대통령과 검찰총장 간 대결로 전환됐다고 설레발을 치고 있다.

12. 수구언론이 그런 구도를 짜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이른바 진보 언론의 일부 기자들도 그러한 듯하다. 이들이 양심불량이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고 다만 사리분별력이 좀 부족한 것 같기는 하다. 맹자는 양심불량인 사람을 ‘사람도 아니다’라고 했지만 차마 이들을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고 다만 ‘짐승같은 놈들’이라고 부르며 도둑놈 강도 살인마 사기꾼 등을 그 범주에 넣는다. (조만간 일부 검사, 기자들도 이 범주에 들어갈 것 같다) 기본적인 도덕성은 갖추었으나 사리판단력이 부족한 이들은 ‘철이 덜 들었다’고 평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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