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국회에서 통과된 신수도행정법을 9명 임명직 헌법재판관이 흔들었다

민주의 근간 삼권분립이 흔들리고 있다

임명직 검찰과 대법원, 헌법재판소가 민의(民意)로 선출된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을 흔들고 있다. 법무부 소속 행정기관인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 장관의 직무정지 처분이, 떨어져 콩고물도 묻기 전에, 바로 입법부 재판소 판사에 의해 도루묵이 되었다. 그 같이 민의가 선출한 행정부의 최고 우두머리 대통령이 재가까지 한 정직 2개월 처분조차 사법부 판사와 9명 헌법재판관이 흔들어버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언제나 그런 것이 아니라 기득권 입맛에 맞지 않는 정권이 들어서면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미 노무현 정부 때 국회에서 다수결로 통과된 신수도행정법이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좌초했다. 민의(民意)가 직접 선출한 거대 국회, 그 국회가 다수결로 통과시킨 신수도행정법이 임명직 9명의 헌법재판관의 입김으로 무너져내려 않은 것이다. 지금 법무부장관에 의한 직무정지 처분이 이삼일만에 바로 묵사발이 되었고, 급기야 대통령의 재가를 거친 2개월 정직 징계 처분이 행정재판소 및 헌법재판소의해 무너져 내려앉을지도 모를 판이 된 것도 그 같은 맥락에 있다.

여기에 윤석열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있을 때 수사를 깔아뭉갠 것이 있다거나, 누구는 선택적으로 집중수사하고 자기 식구 사건은 수사도 하지 않고 무혐의 처분한 사실이 있는지, 또 윤석열에 대한 상급 행정부의 직무정지나 정직 처분이 마땅한 근거 있는 것인지 여부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형식 의전으로서, 검찰총장의 상급감독기관인 법무부장관의 징계처분, 또 행정부의 최고 수장의 재가한 사안에 대해 임명직 사법부 판사들이 냉큼 간섭을 하고 나선다는 사실이다.

단독부 판사 1명, 합의부 판사 3명, 헌법재판소 판사 9명은 소수이다. 이들은 선출직이 아니라 임명직이다. 국민투표를 거쳐 선출되는 거대 국회나 대통령과는 그 위상이 다르고, 무엇보다 소수이다. 이들은 소수이므로 무엇보다도 ‘로비’에 취약하다. 그 ‘로비’는 금력(돈)이 될 수도 있고 또 보이지 않는 기득권력일 수도 있다. 5년 만에 갈아치우는 보이는 권력이 아니라, 식민지배 시기부터 외세에 편승하여 민족을 배반하고, 독재에 편승하여 민중을 배반하면서 돈과 특권에 맛들인 기득권력 말이다.   

사법부 판사나 헌법재판소의 판결도 객관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서로의 영역에 대한 이 같은 월권의 간섭은 더욱 심각한 문제를 노정하게 된다.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정부 헌법재판소의 신수도행정법 위헌결정에서 이미 그 부작용의 선례를 남기고 있다.

최자영(전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최자영(전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9명 임명직 헌법재판관이 민의로 선출된 국회의 결정을 눌러버렸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12월 국회에서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신행정수도법)안’이 압도적 다수로 통과되었다. 재적의원 194명 가운데 찬성 167, 반대 13, 기권 14표였다. 각 정당 당론을 보면, 한나라당은 찬성 권고, 열린우리당은 찬성, 민주당은 자유투표였다.

그런데 이 법안에 기초하여 2004년 5월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가 발족하자 여기에 반대하는 이들이 헌법소송을 제기했다. 수도 이전을 원하지 않는 일부가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원을 했고, 헌법재판소에서는 수도 이전이 ‘관습 헌법’에 위배 된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는 이들의 손을 들어주었다(신행정수도법 위헌확인결정, 2004헌마554, 566. 2004.10.21.). 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이들이 국회 다수 의결을 거부할 수 있는 꼼수를 소수 9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헌법재판소에서 찾았던 것이다. 국회의 결정을 무시하는 것은 국민의 뜻을 무시하는 것이니, 이들 9명의 관료는 또한 국민의 뜻 위에 군림하는 것이 된다.

이 때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건설 특별조치법을 위헌결정하면서 내건 사유도 자못 황당한 것이었다. 한편으로, “수도가 서울이라는 것은 관습헌법이므로 국민투표 없이는 바꿀 수 없다”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관습 헌법 사멸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헌법 72조 국민투표를 통해 알 수가 있지만, 그 국민투표를 하려면 관습헌법이 사멸되어 있어야 한다(사멸된 것이 이미 확인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고 한 것이 그러하다.

문제는 헌법재판소가 내건 이 두 가지 사유가 다 비논리적이라는 데 있다. 백번을 양보하여 ‘수도가 서울이라는 것이 관습헌법’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국민투표와는 무관한 것이다. 애초에 수도를 서울로 정한 것은 국민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수도 서울은 옛날 조선초 ‘나랏님’의 결정에 의한 것이었을 뿐, 백성들이 결정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수도를 다른 곳으로 바꾸는 것도 국민투표와 무관하게 위정자들이 결정하면 된다. 그래서 국회의 결정으로 충분한 것이었다. 더구나 그 국회는 민(民)이 선출한 대의기관이다. 이 때 헌법재판소는 관습의 기원도 여러 가지로 다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지 못했다. 국민의 뜻과 아무 상관없는 수도 정하기를 엉뚱하게 국민들의 투표로 바꾸어야 하는 것이라고 우겼기 때문이다.

생각만 못미치는 것이 아니라 헌법재판소는 심술까지 부렸다. 행여 국민투표를 통해서 행정 수도를 옮기는 일이 일어날까 조바심을 냈던지, 그 국민투표조차 행하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봉쇄조치를 했기 때문이다. “관습 헌법 사멸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헌법 72조 국민투표를 할 수가 있지만, 그 국민투표를 하려면 관습헌법이 사멸되어 있어야 한다”는 취지의 순환논법을 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건의 경우에 “이러한 사멸의 사정은 확인되지 않으므로, 이를 폐지하기 위해서는 국민투표가 아니라 반드시 헌법 개정의 절차에 의하여야 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주장이었다.

“관습헌법의 사멸이 확인되기 전에는” 수도 이전을 위해 국민투표도 실시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는 헌법재판소의 논리는 두 가지 자가당착의 모순을 연출한다. 하나는 아직은 “관습헌법이 사멸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헌법재판소가 예단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헌재 설명대로 국민이 확신하는 관습헌법이 변화·소멸되었음이 확인된 다음에야 국민투표가 가능하다고 한다면, 확인된 마당에 구태여 헌법 72조에 의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필요 자체가 없어지게 된다는 점이다.

“아직은 관습헌법이 사멸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헌재의 판단은 그 자체로서 증거 없는 예단이며, 9명 헌법재판관의 독재적 발상이다. 2004년 수도 이전을 막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의 근거가 바로 이 같은 소수 9명의 독단에 의한 작품이었음을 보게 된다. 이때 헌법재판소는 국회의 결정을 무시했을 뿐 아니라, 국민이 모든 권력의 원천인 것으로도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현재 국회에서만 독점하는 개헌을 감히 국민투표보다 더 상위에 놓고 있기 때문이다.

성문법을 잘 지키라고 헌법재판소를 만들어놓았더니, 그 헌법재판소가 국회와 국민을 무시하고, 급기야 권력의 원천은 성문법뿐 아니라 이른바 ‘관습헌법(혹은 불문법)’까지 포함하는 것이라고 엉뚱한 발상을 해내고 또 그 관습헌법의 지속 여부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독재기관으로 화했다.

독단의 헌법재판소보다 더 큰 문제는 그 권위를 반성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민초들에게 있다. 어떻게 헌법재판소가 성문이 아닌 ‘관습 헌법’의 논리를 들고나오고, 그 관습헌법이 “변화·소멸되었음이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예단하면서 압도적 다수로 통과된 국회의 결정을 무시하는 사태를 보고도, 민초들이 두 눈 뻔히 뜨고 하릴없이 좌시하고 있단 말인지! 이런 민초의 무기력하고 오줄없는 ‘관대함’은 계속될 전망에 있다.  

국회와 행정부에 대한 법원 및 헌법재판소 월권은 지난 이야기가 아니다. 2020년 말, 2021년을 목전에 둔 지금에 이르러서도 지금도 국회를 통과한 법에 기초한 공수처 설치가 위헌이라고 변호사들이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원을 내고, 2개월 정직처분을 받은 윤석열이 행정부 수장 대통령이 재가한 사안에 대해 행정법원 및 헌법재판소에 전방위로 소송과 위헌소원을 제기해놓았기 때문이다.

검찰-법원–돈(자본)-언론 카르텔이 선출직 국회와 행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도 진보성향으로 구성된 민평련(경제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국민연대)이 성명을 내고 “검찰권력을 지키기 위한 항명은 국민과 맞서는 것이고 시대정신과 싸우는 것”이라며 검찰개혁을 막아서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즉각 사퇴할 것을 촉구했다.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겸허하게 검찰을 다시 돌아보아야 할 검찰총장이 무조건 나는 잘못 없다라고 하는 것이 고위공직자의 도리는 아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히 윤석열 개인의 반성이나 사퇴로 해결될 전망이 아니라는 데 있다. 검찰과 사법부 재판소가 결탁하여 행정부 수장의 징계처분을 흔드는 것은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신수도행정법 결의를 위헌 결정하여 막은 것과 같은 판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법부 권력이 국회와 행정부 위에 군림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거기에 검찰은 주구(개) 노릇을 하는 것일 뿐이다. 그뿐 아니다. 그 뒤에는 윤석열이 어느날 밤에 어딘가에서 만났던 홍석현이 있고 방상훈이 있다. 홍석현은 삼성과 연결되고 방상훈은 조선일보의 소유자이다. 검찰의 권력이 어떤 권력과 연동하여 준동하는지 지금 만인의 눈앞에 드러나 밝혀지고 있다.

없는 듯 숨어서 웅크리고 있던 식민지 외세와 안으로 독재 정권의 잔재가 시나브로 그 검은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본이 한국을 지배할 때 검찰과 법원의 권력을 동원했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정권도 사법권력을 독재에 이용했다. 지금 그들 독재의 잔재는 돈(거대자본)과 언론으로 탈바꿈하고는, 여전히 사법권력을 동원하여 결이 다른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막강하고 끈질기고 교체될 일 없이 돈줄을 잡고 있는 이들과 사법시험 통과한 다음 철밥통 조직에 몸담은 검찰과 판사들, 돈과 권력이 이렇듯 맞물려서, 벌집 쑤셔놓은 듯, 5년이면 바뀌는 하루살이 정부를 온통 무차별 사격하고 있다.

눈앞에 보고도 깨닫지 못하면 당달봉사인 것이고, 깨닫고도 침묵하면 벙어리가 된다. 보고도 무서운 줄 모르면, 아니 오히려 무서워서 몸사리고 비겁하게 침묵하는 이는 권력의 주인이 아니라 만년 권력의 노예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윤석열과 대통령이 싸우는 것이 아니다. 검찰 - 법원의 사법권력 – 돈 - 언론이 결탁한 카르텔이 입법부 국회와 행정부 수장 대통령을 겨냥하여 흔들고 있다. 민주의 뿌리 삼권분립이 흔들리고 있다. 윤석열은 보수도 진보도 아닌, 바로 그 독재 기득권의 잔재에 의해 이용되는 한 나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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