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창남, 우종일 작가의 ‘돌의 마술’ ... 고가구와 조선여인 작품으로 탄생

예술의 역할은 새로운 감감과 경험을 제공하는 것...제프 쿤스 연상시켜

고가구 돌조각 작가 권창남
고가구 돌조각 작가 권창남
몽돌 이미지로 한국여인상을 형상화 하고 있는  우종일 작가
몽돌 이미지로 한국여인상을 형상화 하고 있는 우종일 작가

[서울 =뉴스프리존]편완식미술전문기자=12월초 전시가 마무리 된 ‘권창남-우종일’전(마리갤러리)은 무엇보다도 물성이 눈길을 끄는 전시였다. 일반적으로 물성을 다루는 작업들은 그 재료물질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의식이나 믿음에 대해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전통 고가구를 돌로 제작한 권창남의 작품은 보고 있으면 도저히 돌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돌일 수가 없는 고가구가 돌이고 돌로 만든게 분명한데 또 물끄러미 보고있으면 돌이 아닌듯 하다. 우종일의 사진도 마찬가지다. 우아하고 연약한 여성의 신체나 의복이 돌이미지라는 것에 놀라게 된다. 옥돌 등 다양한 색을 지닌 콩알같은 돌이미지로 구성된 신체가 부드러울 수가 없는데 부드럽다. 권창남이나 우종일의 작품은 이렇게 보면 저렇고 저렇게 보면 이렇다. 컴퓨터 명령어를 이루는 이진법처럼 이거면 저거고 저거면 이것인 O,X의 반복적 세계가 끝없이 펼쳐지는 것이다.

예술은 우리의 감각이 뭘 할 수 있고, 뭘 경험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것 이라고 했던 제프 쿤스의 말을 상기하게 된다. 미술이 가벼워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잠재력과 경험을 더 연결해 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원색의 파티용 풍선을 꼬아 만든 듯한 제프 쿤스의 ‘풍선 강아지’는 사실 엄청나게 무거운 스테인리스 스틸로 이뤄진 매끈한 조각이다. 이음새없이 완벽하게 마감처리돼 거울처럼 반짝이는 것이 특징이다. 영원한 사랑을 상징하는 ‘풍선 꽃’,부활절 달걀을 연상시키는 ‘리본 묶은 매끄러운 달걀’ 등 기쁜날 주고받는 사물들을 감각적인 형태로 재현함으로써 즐거운 일상의 단면을 미학적 문맥으로 승화시켰다.

거대한 크기로 스테인리스스틸로 견고하게 만들어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지고 있던 크기와 무게,질감에 대한 고정 관념을 일순간에 무너뜨린다. 권창남 우종일 작가도 돌의 기존 이미지를 전도시키고 있다. 감각의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마술적 작품이라 말하고 싶다. 매체의 순수성을 위해서 환영주의를 제거해야 한다는 그린버그적인 모더니즘은 권창남과 우종일로 인해 완전히 뒤집혀 졌다고 미술평론가 김웅기는 일갈했다. 환영 그 자체가 작품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매체의 순수성, 즉 매체의 물질적 성질 자체가 순수하다는 사실이 다름아닌 믿음이나 취향으로 여기고, 물체에 투영되어 있는 환영성이나 관계성 그 자체는 새로운 미술적 탐구로 복권을 시켰다는 얘기다. 물질의 성질을 의미하는 물성이라는 것도 그 물질을 경험하고 바라보는 사람들의 의식과 감정이 투영될 수 밖에 없다. 물질에 깃들여 있는 의식이나 감정을 극단적으로 제거하여 바라보려던 미술적 시도도 그 감정이나 의식을 극단적으로 확장하여 바라보려는 시도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본질이 현상에 우선된다거나 내용이 형식에 선행한다는 믿음이, 현상이나 표면이 본질에 우선하고, 형식이 본질을 규정한다는 믿음으로 대체된다고 해도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다. 권창남은 돌이라는 매체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작품을, 우종일은 사진이 가지고 있는 다큐적 속성과 완전히 이질적인 작품을 제작한다. 돌이라는 재료의 물성을 권창남은 자기가 만들어 내는 형상으로 대체하는 방식의 작업을 했다. 도저히 돌로써 만들 이유가 없는 전통적 가구를 나무가 아닌 돌로 만든다. 모양은 영락없이 고가구인데 나무가 아니고 돌이다. 당연히 가구인데 가구가 아니다. 가구의 외양을 한 조각이다. 가구의 동상인 것이다. 가구 자체가 그 기능성에서 독립해서 자립적으로 스스로 그 불멸의 존재성을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더니스트들의 가구에 대한 사랑은 가구를 예술 오브제로 사용하여 가구의 기능성을 정지시키며 그용도와 디자인을 가지고 여러 가지 장난을 쳤다. 이사부 노구치 , 윈돌 캐슬, 존 매크랙큰, 엘름그린 & 드라그셋, 아이 웨이웨이, 마크 뉴손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가구같이 않은 가구를 만들기도 하고, 크기나 전형적 디자인을 왜곡하기도 하며, 심지어 전혀 사용하지 않는 재료로 가구를 만들기도 한다.

돌의 물성이 가려진 권창남의 가구조각은 우리의 감각을 착란시켜 끊임없이 바라보게 만든다. 제프 쿤스처럼 권창남은 물성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형태를 통해 끝없이 시험에 들게 한다. 작품이 가구같으면 같을수록 작품의 완성도가 올라가는 것이다. 껍데기가 완벽하다면 그 본질적 속성은 언제나 가려진다는 마술이 펼쳐지는 것이다.

우종일은 돌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회화같은 사진작업을 해 왔다. 다양한 색을 지닌 콩돌(몽동)을 촬영한 이미지를 모자이크처럼 입힌다. 손으로 돌을 하나하나 붙여서 모자이크를 만들듯이 디지털 이미지로 전환된 돌의 이미지를 마우스를 사용하여 하나하나 여성의 육체 이미지에 의복처럼 입히는 것이다. 제 각각의 돌들로 뒤덮힌 여성의 신체 이미지는 고대의 여신을 연상시킨다. 불멸의 여성 초상같다. 여신의 이미지를 한국 여성의 사진으로 구현한 것이다. 빅 뮈닉이나 토마스 디만트처럼 사소한 일상의 오브제나 이미지를 현실에서 구성하여 사진으로 남기는 방식이 아니라 사진으로 재현된 이미지를 자유롭게 소스로 사용해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조각적이라기 보다는 매우 회화적이라 할 수 있다.

돌을 작품의 소재로 사용하는 이 두 아티스트는 돌의 물성을 한 사람은 가리면서, 또 한사람은 증폭해서 사용한다. 권창남은 실재로서 돌을 나무처럼 사용하여 나무로 작품을 한 것같은 돌 조각을 만들어 내고, 우종일은 돌의 물성에 가장 어울리지 않을 것같은 여성의 신체에 피부나 의복처럼 붙이고 입혀서 여성의 신체를 초월적인 이미지로 만들어 냈다.

권창남 작가는 고가구는 보면 어머니를 떠올리게 된다고 했다. 언제나 변함없는 모성을 고가구 돌조각으로 형상화했다고도 볼 수 있다. 오랜 미국생활을 한 우종일 작가는 한국여인의 아름다움이 최고라고 격찬한다. 그러한 미를 돌이미지로 형상화 해 견고히 했다. 서구적 외모를 추구하는 성형공화국에 대한 강력한 일침이기도 한 것이다. 여성초상도 일부러 서구화 이전 조선여인의 모습을 택했다. 최근들어선 조선여인으로 분한 모델들의 작품도 선보이고 있다.

전시주제는 ‘경희궁 현재시대’였다. 궁의 여인과 가구를 현대미술로 끌고 온 것이다. 돌이 불러일으킨 마술이 그것을 가능케 만들었다. 우리가 미쳐 인식하지 못했던 경험을 제공해 주는 것이 예술이라는 것을 다시금 환기시켜준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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